이 기사는 9월 15일 오후 3시43분 한국경제신문의 투자 정보 유료 플랫폼인 '한경 프리미엄9'(www.hankyung.com/premium9)에 게재됐습니다. 한경 프리미엄9을 구독하시면 더 많은 단독 기사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국내 첨단소재 기업 A사는 최근 잇달아 긴급회의를 열고 있다. 두 달간 뚝 떨어진 원·달러 환율 때문이다. 당초 A사는 원·달러 환율을 1400원대로 가정해 올해 사업계획을 짰다. 하지만 최근 환율이 1300원대로 내려오면서 원재료 조달 비용부터 제품 가격·매출 전망까지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환율 때문에 비상인 기업은 A사뿐만이 아니다. 환율 하락으로 업종마다 희비가 엇갈리면서 기업마다 셈법을 따지느라 분주해졌다.

◇반도체·조선업계 ‘비상등’

[단독] 10원 하락에 140억 '날벼락'…환율 역습에 발칵 뒤집힌 곳
1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오후 3시30분 기준 1359.4원에 마감했다. 지난 7월 2일 1555.8원까지 올랐던 것과 비교하면 두 달여 만에 200원 가까이 떨어졌다. 원화 강세에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곳은 반도체 기업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를 수출할 때 상당 부분을 달러로 거래한다. 제품 가격이 같아도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면 이를 원화로 환산한 매출과 영업이익이 감소한다.

인공지능(AI) 기반 투자정보 플랫폼 에픽AI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해 합산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두 달 전 656조397억원에서 최근 647조4123억원으로 약 8조6274억원 감소했다. AI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사상 초유의 메모리 공급 부족 현상은 변함이 없지만, 환율 하락으로 연간 실적 전망치가 갑자기 확 쪼그라든 것이다.

수출 비중이 큰 자동차 업체도 타격이 크다. 현대자동차의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두 달 전 11조7600억원에서 11조4400억원으로 줄었다.

올 상반기 선박 수주 증가에 강달러 효과까지 누렸던 조선업계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해외 선주와의 거래 대부분이 달러로 이뤄지는 만큼 환율이 하락하면 같은 금액을 수주해도 원화로 환산했을 때 매출이 깎이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은 환율이 10원 떨어질 때마다 HD현대중공업의 영업이익이 141억원, HD현대삼호가 66억원, 한화오션이 177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만약 이 가정대로 원·달러 환율이 기존 1500원에서 1300원대로 하락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이들 3개 조선사의 3분기 영업이익은 약 7680억원 줄어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항공·정유는 원화 강세로 ‘숨통’

환율 상승으로 수혜를 보는 기업도 있다. 항공업계가 대표적이다.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면 외화부채의 원화 환산액과 항공유 구매 부담이 동시에 줄어들기 때문이다. 최근 유가가 급등하는 가운데 환율 하락은 항공업계에 단비로 여겨지고 있다. 대한항공의 연간 유류 소모량은 약 3050만 배럴이다. 단순 계산으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르면 연간 회사가 부담해야 할 기름값은 3050만달러(약 414억원)가량 늘어나게 된다. 반면 원·달러 환율이 10원 하락하면 장부상 외화평가이익은 약 560억원씩 잡힌다. 유가가 1달러 올라도 환율이 10원만 내리면 150억원가량을 방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유업계도 원화 강세의 수혜를 보고 있다. 국내 정유사는 원유 대부분을 달러로 결제한 뒤 수입한다. 같은 양의 원유를 들여오더라도 환율이 하락하면 필요한 원화가 줄어들어 원가 부담이 낮아진다. 상반기 강달러 기조는 정유사 실적의 부담으로 작용했다. 에쓰오일의 상반기 외환·환산 순손실은 약 3950억원, GS칼텍스는 1363억원에 달했을 정도다. 하지만 환율이 내리면 부담이 해소된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반기보고서를 통해 원·달러 환율이 10% 하락하면 연결 기준 세전이익이 2921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당분간 1300원대를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달러가 힘을 받으면서 환율이 다시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업종별, 기업별로 환 노출 구조를 얼마나 정교하게 파악하고 있느냐에 따라 실적이 갈릴 수 있다”고 말했다.

강해령/신정은 기자 hr.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