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채무 45조원…재정자립도 악화
정치인, 선거前 선심성 경기 부양 유혹
선거 끝나면 긴축…"유권자 기만" 지적
전북도의 재정자립도는 23.3%로 전국 16개 광역지방자치단체 중 최하위다. 전북도가 내년부터 지급하기로 한 동학농민혁명 유족수당에 비판적인 여론이 많은 이유다. 전남광주 함평은 군민 1인당 50만원, 고흥은 1인당 30만원의 민생회복지원금을 주는데 두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는 각각 8.2%, 6.4%다. 전국 지자체 채무는 작년 말 기준 45조원에 이른다. 돈이 없는데도 돈을 쓰고 빚까지 내서 쓰는 이유가 뭘까.
◇선거 치를 때마다 불어나는 빚
지방 재정이 파탄 난 원인 중 큰 부분이 지자체장의 선심성 돈 풀기다. 현역 단체장은 재선을 위해 돈을 풀고, 도전하는 후보자는 당선되기 위해 더 센 공약을 내놓는다. 기존 지출 사업에 새로운 지출이 더해지면서 선거를 거듭할수록 빚이 쌓여간다.
정치인의 이런 행태를 설명한 이론이 윌리엄 노드하우스 예일대 석좌교수의 ‘정치적 경기 순환’이다. 노드하우스 교수는 정부가 선거 전에는 경기를 띄우기 위해 부양책을 내놓고, 선거가 끝나면 물가를 잡기 위해 긴축 정책을 펼 것으로 봤다. 이 과정에서 경기 변동이 생기는데, 그 배경에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의미에서 정치적 경기 순환이라고 했다. 그가 1947년부터 1972년까지 미국을 비롯한 선진 9개국의 선거 전후 경제 지표를 분석한 결과, 미국 독일(서독) 뉴질랜드에서 선거 직전 실업률이 낮아졌다가 선거 후 상승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관찰됐다.
◇선거 앞둔 정부가 바빠지는 이유
인위적 경기 부양 수단으로는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있다. 이 중 정치인은 재정정책을 선호한다. 이유는 정책 시차에 있다. 정책 시차란 정책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한 뒤 정책이 수립·집행되고,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통화정책은 실물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비교적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에 비해 정부가 직접 돈을 쓰는 재정정책은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효과가 나타난다. 그래서 선거가 있는 해에 정부는 예산을 늘리고, 집행도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 선거 주기에 따라 정부 예산이 변화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경기 순환은 ‘정치적 예산 순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정치인이 선거에 앞서 인위적 경기 부양을 시도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아서 번스 중앙은행(Fed) 의장에게 기준금리를 내리라고 요구했다. 번스는 압박에 못 이겨 금리를 인하했고, 닉슨은 재선했다. 그러나 이후 미국 경제는 오일쇼크와 맞물려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함께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다.
한국에선 카드사태를 낳은 2002년 신용카드 남발, 2020년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이 비슷한 사례다. 정치인은 말로는 ‘경제 회복’을 내세우지만, 속내는 대개 대중인기영합적 정책으로 한 표라도 더 얻으려고 한다.
◇국민을 영원히 속일 수 있을까
정치적 경기 순환에 대해 반론도 제기된다. 합리적 기대 학파의 비판이 대표적이다. 합리적 기대 가설에 따르면 유권자는 정부의 경기 부양책이 물가 상승을 불러올 것이라는 점을 예측한다. 그럴 경우 경기 부양 효과는 줄어들고, 물가만 오른다. 즉 정부가 경기 부양책으로 유권자를 한두 번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최근 한국에선 선거와 무관하게 돈 풀기가 상시화·만성화했다. 선거 전엔 돈을 풀고 선거 후엔 거둬들인다는 원래의 정치적 경기 순환 이론과 다른 점이다.
또한 정치적 경기 순환은 실업률과 물가 사이에 역상관관계가 있다는 필립스 곡선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필립스 곡선은 많이 무력화됐다. 정당 간 이념적 차이도 감안해야 한다. 인위적 경기 부양에 더 적극적인 정당과 덜 적극적인 정당이 있다. 하지만 유권자는 정책의 결과를 완벽하게 예측하기 어렵고, 정부와 정치인보다 정보가 부족한 ‘정보 비대칭’ 상황에 놓인다. 그래서 정치인은 일시적으로 경기를 띄워 유권자를 기만하려는 유인이 있다.
노드하우스는 통화·재정정책의 독립성 확보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오늘날 선진 경제권에서 중앙은행은 꽤 높은 수준의 독립성을 지닌다. 재정정책을 정치에서 떼어놓는 것은 훨씬 더 어렵고 논란의 여지도 많다. 다만 재정준칙 등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