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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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정년퇴직자를 촉탁직으로 다시 고용해온 관행이 있다면 명시적인 재고용 의무가 없더라도 근로자에게 '재고용 기대권'이 인정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나주교통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회사 측 손을 들어준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나주교통은 정년을 맞은 기사들을 촉탁직으로 재고용해왔다. 실제로 2021~2022년 정년퇴직한 버스기사 38명 가운데 18명(약 47%)이 재고용됐다. 이는 재고용을 신청한 기사들 중에서는 대부분에 해당한다.

다만 재고용이 거부된 일부 기사들이 회사의 조치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며 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했다.
전남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가 기사들의 손을 들어주자 나주교통은 재심판정을 취소해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2심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취업규칙과 그동안의 재고용 관행 등을 근거로 기사들에게 촉탁직 재고용에 대한 기대권이 있다고 판단했다. 회사가 이들의 재고용을 거절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도 없다고 봤다.

반면 2심은 회사 측 손을 들어줬다. 취업규칙은 일정한 경우 촉탁직으로 '고용할 수 있다'고 규정했을 뿐 회사에 재고용 의무를 부과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기사들이 별도의 채용공고에 응시해 이력서를 제출하는 절차를 거쳐 촉탁직으로 채용됐다는 점도 재고용이 당연히 보장되지 않는다고 본 근거였다. '정년에 도달한 자에 대해서는 노사 합의에 따라 촉탁직으로 근로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했던 2017년 단체협약 역시 이미 효력을 잃은 만큼 재고용 기대권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를 다시 뒤집었다. 재고용 기대권은 단순히 취업규칙이나 과거 단체협약의 문구만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실제 재고용 관행과 노사 사이에 형성된 신뢰 관계를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특히 2021~2022년 촉탁직 재고용을 신청한 버스기사 가운데 일부를 제외하면 예외 없이 재고용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 이전에도 정년퇴직자의 재고용 신청이 거부된 사례가 확인되지 않은 만큼 회사와 기사들 사이에는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정년 이후에도 기간제 근로자로 다시 고용될 수 있다는 신뢰 관계가 형성됐다고 판단했다.

2017년 단체협약의 효력이 사라졌다는 사정도 재고용 기대권을 부정할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봤다. 기사들의 기대권은 단체협약 자체가 아니라 장기간 이어진 실제 재고용 관행을 통해 회사와 근로자 사이에 형성된 신뢰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 같은 사정을 고려하면 회사가 기사들의 촉탁직 재고용을 거부한 데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김유진 기자 magiclam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