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건설이 급증하면서 미국 곳곳에서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데이터센터발 전력비용 상승 압박이 가계를 넘어 제조업으로 확산하고 있다.
[한경ESG] 글로벌 - 데이터센터 규제
미국 버지니아주 애슈번에 위치한 아마존웹서비스(AWS) 데이터센터 전경. 북버지니아는 세계 최대 규모의 데이터센터 밀집 지역으로 꼽힌다. 사진=연합뉴스
인공지능(AI) 산업의 핵심 기반시설인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규제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막대한 전력과 물을 사용하는 데이터센터가 한꺼번에 들어서면서 지역 주민의 부담이 커지고 있어서다. 전력 부족에 따른 전기요금 상승과 수자원 고갈 우려가 커지자 미국 주정부들이 데이터센터 건설 속도를 늦추고 환경 기준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8월 19일 로이터에 따르면 조시 샤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는 18일(현지시간) AI 데이터센터 개발업체에 환경보호와 정보공개 기준을 강화하고 지역사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데이터센터는 주정부가 인허가 절차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패스트 트랙’ 프로그램 대상에서도 제외했다. 주정부 기관이 데이터센터 개발업체와 비밀유지계약(NDA)을 체결하는 것도 금지했다. 주민들이 자신이 사는 지역에 어떤 데이터센터가 들어오는지 더 쉽게 알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펜실베이니아는 데이터센터 기업들이 선호하는 지역이다. 미국 최대 셰일가스 생산지 가운데 하나인 마셀러스 분지가 있어 천연가스를 쉽게 구할 수 있고 발전소와 송전망도 갖추고 있다. 뉴욕과 워싱턴DC 등 미국 동부 주요 도시와도 가깝다. 아마존은 지난해 펜실베이니아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인프라에 200억 달러(28조 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면서 데이터센터가 지역 주민의 전기요금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뉴욕·텍사스, 데이터센터 건설 제동
규제에 나선 곳은 펜실베이니아뿐만이 아니다. 뉴욕주는 지난 7월 전력 소비량이 50메가와트(MW) 이상인 대형 데이터센터의 신규 건설을 1년 동안 중단했다. 미국 주정부가 대형 데이터센터 건설을 일시적으로 막은 첫 사례다. 뉴욕주는 이 기간 데이터센터의 전력·용수 사용과 환경 영향을 점검할 계획이다. 대형 데이터센터에 적용해 온 판매세 면제 혜택을 폐지하는 법안도 추진하고 있다.
텍사스도 8월 초 전력망 연결을 신청한 신규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의 승인을 일시 중단했다.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너무 빠르게 늘어나면 전력망 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에서는 AI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실제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는 지역에서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주민들은 데이터센터가 얼마나 많은 전기와 물을 사용할지,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주목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규제가 확산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전기요금이다. 미국 최대 전력망 운영기관인 PJM인터커넥션은 13개 주와 워싱턴DC의 전력망을 관리한다. PJM이 7월 진행한 2028~2029 공급연도 용량시장 경매에서 총 낙찰액은 164억 달러(23조8400억 원)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독립 시장감시기관 모니터링애널리틱스는 이 가운데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로 발생한 추가 비용을 약 63억 달러(8조7700억 원)로 추정했다. 조지프 보링 모니터링애널리틱스 최고경영자(CEO)는 2025~2026 공급연도부터 2028~2029 공급연도까지 최근 네 차례 경매를 합치면 데이터센터 수요로 인해 늘어난 용량시장 비용이 약 300억 달러(41조8000억 원)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용량시장은 전력 수요가 가장 많은 시기에도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도록 발전사업자의 공급 능력을 미리 확보하는 시장이다. 데이터센터가 늘면 미래 전력 수요가 커져 더 많은 발전용량과 송전망이 필요하다. 그러나 발전소와 전력망을 늘리는 속도가 데이터센터 건설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용량 가격이 오르고, 그 비용이 전기요금에 반영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용량시장 비용은 발전사업자에게 지급된 뒤 전력회사 등 부하공급사업자에게 배분되며 일부는 가정과 기업의 전기요금에 반영된다.
러스트벨트, 전기료 부담 커져
전기요금 상승의 영향은 제조업으로도 번지고 있다. 오하이오주의 벽돌 제조업체 벨든브릭은 지난해 전체 전기요금이 90% 올랐다. 회사가 매달 부담하는 용량요금은 1600달러에서 1만2000달러로 7.5배 뛰었다. PJM 용량시장의 가격도 2024년 1MW당 하루 29달러에서 최근 329달러로 10배 넘게 상승했다. 용량요금은 전력 수요가 급증할 때를 대비해 발전 능력을 확보하는 데 드는 비용으로, 전체 전기요금의 일부다. 특히 전력 사용량이 많은 제조업체는 용량요금 비중이 커 가격 급등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수 있다.
문제는 데이터센터를 겨냥해 대형 전력 사용자의 부담을 높일 경우 비슷한 수준의 전력을 사용하는 공장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센터 증가로 발생한 전력망 확충 비용을 빅테크 기업과 전력회사, 일반 소비자 가운데 누가 얼마나 부담할지를 놓고 논쟁이 커지는 이유다.
지역 주민의 반발도 규제 강화의 배경이 되고 있다. 미시간주 살린타운십에서는 오라클과 오픈AI, 블랙스톤 등이 참여한 160억 달러 규모의 스타게이트 데이터센터 건설을 놓고 주민 반대가 이어지고 있다. 사업 부지는 약 101헥타르로 축구장 140개 정도의 크기다. 개발업체들은 일자리와 지방정부 세수가 늘어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폐쇄형 냉각 시스템과 자체 전력 인프라를 활용해 환경 영향을 줄이겠다는 설명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농지 훼손과 지하수 오염 가능성, 냉각 설비와 발전시설에서 발생하는 소음, 전기요금 상승 등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6월 로이터·입소스 조사에서 현재와 같은 속도로 데이터센터를 계속 건설하는 데 찬성한 미국인은 33%에 그쳤다.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 데이터센터가 들어오는 데 찬성한 응답자는 14%에 불과했다.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논쟁은 AI 산업 육성과 지역사회의 부담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AI 산업 경쟁력과 지역 투자·고용에 기여할 수 있지만 전력망 확충과 용수 사용, 환경 부담을 함께 낳을 수 있다. 미국 각 주가 투자 유치와 주민 보호 사이에서 어떤 기준을 마련할지에 따라 향후 데이터센터의 입지와 투자 전략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