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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대출 총량제 손볼 때 됐다
정인설 금융부장
당시에도 은행 대출 증가율을 직접 통제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는 비판이 있었다. 중국 같은 나라야 국가 소유 은행이니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민간 은행이 대부분인 한국에서 이런 극약 처방을 하는 건 말도 안 된다는 주장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산불이 났는데 빨리 불 끄는 게 능사’라는 논리를 이길 수 없었다. 그렇게 초유의 대출 총량 규제는 한국의 스탠더드로 정착했다.
낮아지는 가계부채 비율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일단 100%에 육박하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하락하고 있다. 2021년 99%이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4년 만에 89% 수준으로 낮아졌다. 툭하면 나오던 ‘한국의 최대 리스크는 가계부채’라는 보고서도 자취를 감췄다. 이젠 “2030년까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80%까지 낮추겠다”는 금융당국의 공언이 허언으로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목표를 훨씬 빨리 달성할 공산이 크다. 이미 올해 1분기에 85% 수준으로 잡혔고 반도체 경기가 갑자기 꺼지지 않는다면야 곧 가계부채 비율이 안정적 수준으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더 큰 문제는 총량 규제가 남긴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대출 총량제는 은행별 대출 규모를 정부가 정하는 제도다. 지금처럼 대출 수요가 급증하는 때엔 자금 공급자인 은행이 모든 걸 정한다. 공급자 중심 시장이다 보니 새벽부터 인터넷은행 대출받으러 대기하는 ‘오픈런’과 개인 간 대출이 일반화될 정도다.
공격적 영업을 하려는 은행은 고객을 늘리기 위해 금리를 내려야 하지만 대출 총량제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 자연스레 신규 대출이나 만기 연장 때 가산금리를 올리고 있다. 그래도 대출 신청자는 차고 넘친다. 은행 간 금리 경쟁을 없애고 은행에 가격 독점권을 준 제도가 다름 아닌 대출 총량제다.
DSR 중심으로 재편해야
은행은 아쉬울 게 없다. 높은 이자를 부담하기 싫은 고객에게는 2금융권으로 가라고 권한다. 이 때문에 은행에서 밀려난 고신용자가 받은 저축은행·카드사 대출은 사상 최대 수준으로 증가했다. 2금융권 대출 한도가 줄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저신용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자신의 신용 수준에 맞는 대출처를 찾지 못하는 ‘대출 난민’은 더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다. 집단대출과 일부 실수요자 대출은 총량 관리에서 예외로 두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땜질식 대책으로는 소비자에게 더 높은 금리를 종용하는 총량제의 한계를 해결할 수 없다. 들불처럼 번지던 가계부채를 어느 정도 잡은 만큼 차주 소득에 따라 대출액을 정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중심으로 대출 규제를 재편할 필요가 있다. 한시적 처방인 대출 총량제를 바뀐 상황에 맞게 손질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