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싱크탱크 리포트 16 - 영국 재무보고위원회(FRC)
사진=영국 재무보고위원회(FRC)
사진=영국 재무보고위원회(FRC)
공시에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기업이 빠르게 늘고 있다. 초안 작성과 오탈자 교정, 데이터 검증 같은 반복 업무를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챗GPT 같은 공개형 AI를 쓰는 기업도 늘면서 기밀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위험도 함께 커지고 있다. AI의 환각 등으로 잘못 생성된 정보가 공시에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영국 재무보고위원회(FRC)가 지난 7월 발간한 <기업 공시에서의 AI> 보고서에 따르면 공시에 생성형 AI를 도입했거나 시험 운영 중인 기업은 70%에 달했다. 39%는 이미 생성형 AI를 도입했고 31%는 시험 운영 중이다. 앞으로 1년 안에 도입을 검토하기로 한 기업도 18%였다. AI가 기업 공시 업무의 주요 도구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 70%, 공시에 AI 활용…기밀 유출 우려는 커져

공개형 AI 24% 사용…기밀 유출 우려

기업들은 생성형 AI 활용에 따른 가장 큰 위험으로 데이터 보안과 기밀 유출을 꼽았다. 생성형 AI를 도입했거나 시험 중인 기업의 91%는 회사 내부에서 관리할 수 있는 기업용 생성형 AI를 사용했다. 제3자 소프트웨어에 포함된 AI를 사용하는 비율은 37%, 자체 구축한 거대언어모델(LLM)을 사용하는 비율은 33%였다. 챗GPT 같은 공개형 AI를 사용하는 기업도 24%에 달했다. 보고서는 공개형 AI 사용이 기업의 데이터 유출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 공시에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재무정보와 사업계획, 투자정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데이터 등 민감한 정보가 담긴다. 이런 자료를 생성형 AI에 입력했다가 외부로 노출되거나 기업이 통제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처리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에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판단 부담이 적고 위험이 낮은 업무를 중심으로 AI를 활용하고 있다.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기업의 61%는 보고서 서술 부분의 초안 작성에 AI를 활용했다. 문안 교정에는 57%, 다른 기업의 공시 동향 파악에는 56%, 공시 내용의 일관성 검토에는 44%의 기업이 생성형 AI를 사용했다. 연구진은 AI가 주로 전년도 문안을 고치거나 표와 그래프를 설명하고, 규정에 맞는 문구의 초안을 만드는 데 쓰였다고 설명했다. 반면 경영진 논평이나 미래 전망, 실적의 원인처럼 판단, 추정이 필요한 내용은 사람이 직접 작성하고 검토하는 경우가 많았다.

AI를 실제로 사용한 응답자의 89%는 반복 업무를 줄이는 데 일부 또는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고 답했다. 고부가가치 업무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됐다는 응답도 84%에 달했다. 문안이 더 명확해졌다는 응답 역시 46%였다. AI가 반복 업무를 줄여 공시 담당자가 분석과 검토 등 부가가치가 높은 업무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한 것이다.

AI 도입, 공시 품질 개선에 도움

연구진은 AI로 줄인 업무시간이 단순한 인력 감축이나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기보다 공시 품질을 높이는 데 활용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데이터 검토와 비교기업 분석, 오류 점검 등 그동안 시간이 부족해 충분히 하지 못했던 업무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성형 AI는 공시 담당자를 대신해 결과물을 만드는 ‘공동 창작자’라기보다 사람의 작성과 검토를 돕는 ‘동료’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생성형 AI보다 먼저 기업 공시에 도입된 로봇프로세스자동화(RPA), 머신러닝(ML), 자연어처리(NLP) 등 자동화 기술은 주로 데이터 처리와 검증에 쓰였다. 자동화 기술을 사용하는 응답자의 68%는 재무 데이터 추출에 활용했고, 이상 징후 탐지는 50%, 공시 일관성 확인은 46%, ESG 데이터 수집은 44%였다. 생성형 AI가 문안 작성과 요약 등 비정형 업무로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면 기존 자동화 기술은 정형화된 데이터 처리와 검증에 주로 활용되고 있었다.
기업 70%, 공시에 AI 활용…기밀 유출 우려는 커져

사람의 의무 검토는 47% 그쳐

다만 사람의 검토와 책임 체계는 AI 활용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생성형 AI를 도입하거나 시험 운영 중인 기업 가운데 AI 결과물을 사람이 반드시 검토하도록 한 곳은 47%에 그쳤다. AI를 활용해 만든 공시 내용의 최종 책임자를 명확히 정한 기업도 40%였다. 내부감사인과 AI 활용 방안을 논의하거나 시험한 기업은 33%, 외부감사인과 협의한 기업은 21%에 불과했다.

이에 AI 사용을 관리하기 위한 준비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생성형 AI 사용 기업의 73%는 안전하고 책임 있는 사용을 위한 정책을 마련했고 71%는 직원들이 사용할 수 있는 AI 도구를 따로 지정했다. AI 사용 과정과 결과물을 기록하도록 한 기업도 61%였다.

이 같은 관리 체계가 중요한 이유는 AI 활용에 따른 위험이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응답자의 50%는 데이터 보안과 기밀 유지를 생성형 AI 활용의 ‘매우 큰’ 장벽으로 꼽았다. ‘보통 수준’의 장벽이라는 응답까지 합치면 88%에 달한다. AI의 오류와 환각을 매우 큰 장벽으로 본 비율은 48%, 미흡한 거버넌스와 불분명한 책임을 지적한 비율은 45%였다. AI가 어떤 과정을 거쳐 결과를 만들었는지 설명하거나 감사하기 어렵다는 점도 위험 요인으로 꼽혔다.

보고서는 AI를 기업 공시에 제대로 활용하려면 사용 범위뿐 아니라 결과물을 누가 검토하고 책임질지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공시는 작은 오류만 발생해도 기업과 경영진의 신뢰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AI가 공시 작성 시간을 얼마나 줄이는지 못지않게 결과물의 검증과 책임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스티븐 영 랭커스터대 교수 등 연구진은 “기업 보고는 높은 정확성과 신뢰, 책임성이 요구되는 만큼 AI는 주로 처리량이 많고 위험이 낮은 업무에 활용되고 있다”며 “판단이 필요하고 중요한 내용을 서술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이 맡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AI의 장점을 살리면서 기업 보고의 품질과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한 감독 체계를 함께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사는 FRC가 랭커스터대에 의뢰해 진행했다. 연구진은 2026년 2~4월 기업 공시와 기업설명회(IR) 담당자, 감사인 등을 대상으로 39건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기업 공시 담당자 103명을 대상으로 별도 설문조사도 했다. 조사 대상에는 사업보고서의 서술 정보와 재무제표, 지속가능성 공시 등이 포함됐다.

영국 재무보고위원회(FRC)는 기업의 회계·공시와 감사, 지배구조 등을 감독하는 독립 규제기관이다. 회계감사인과 회계사 등을 감독하고 영국 기업 지배구조 원칙과 수탁자 책임 원칙을 제정한다. 기업 공시와 감사의 품질을 높여 투자자와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주요 역할이다.

이승균 기자 cs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