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호프' 평론에 성난 사람들
요즘 화제작이자 문제작인 영화 ‘호프’를 봤다. 나홍진 감독의 전작 ‘추격자’와 ‘황해’, ‘곡성’을 모두 재미있게 본 터였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재미있었다. 함께 본 아내는 별로라고 했다. 그러려니 했다. 영화 평가는 자주 엇갈린다. 관객 평점도 갈렸다. 유난히 갈렸다. 호평과 혹평이 양쪽 끝에 몰렸다. 좋은 영화는 대체로 좋다는 쪽으로, 형편없는 영화는 나쁘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인다. ‘호프’처럼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린 한국 영화가 또 있었나 싶다. 그것만으로도 오래 기억될 만한 영화다.

평론 해명한 평론가

이동진 평론가는 호평했다. 별점 5개 중 4개를 줬다. “기괴한 난장판 속에서 대담하게 질주하는, 영화 전체가 거대한 크레센도”라고 했다. 그의 해설도 찾아봤다. 영화를 보며 놓친 장면과 의미를 짚어줬다. 나 감독이 흩뿌린 수많은 ‘떡밥’이 뒤늦게 연결됐다. 때로는 꿈보다 해몽이었다. 그럼 어떤가. 평론가로서 제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닌 모양이다. 온라인상에서 그에게 공격이 쏟아졌다. 나 감독과 친한 것 아니냐, 돈을 받은 것 아니냐, 한국 영화계를 살리려고 점수를 퍼준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왔다. 결국 그는 나 감독과 커피 한 잔 마신 적도 없고 전화번호도 모른다고 해명까지 했다. 이 해명이 못내 불편했다. 그의 평론이 과도하다고 생각하면 다른 논리로 깨면 된다. 해석이 억지라면 반박하면 된다. “나는 재미없었으니 너는 돈을 먹었을 것”이라고 몰아가는 것은 집단 린치에 가깝다.

왜 이렇게 다들 화가 났을까. 평론을 참고 의견이 아니라 증권사의 종목 추천처럼 여겼기 때문일 것 같다. 높은 별점을 믿고 표를 샀는데 재미가 없으니 책임지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표를 산 사람도, 재미없다고 판단한 사람도 자신이다. 평론가에게 평론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순 없다.

입 막을 권리는 없다

영향력이 큰 평론가이니 더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맞는 말이다. 영향력에는 책임이 따른다. 다만 평론가의 책임은 대중과 같은 점수를 주는 데 있지 않다. 평가의 근거를 설명하고, 앞선 평가와 일관성을 지키고, 이해관계를 숨기지 않는 것이 책임이다. 다수의 취향을 미리 헤아려 별점을 조정하는 순간 평론은 의미를 잃는다. 그럴 거라면 평론가는 필요 없다. 포털 평균 점수만 보면 된다.

이런 일은 영화판에만 있는 게 아니다. 마음에 안 드는 식당에는 별점 테러가 쏟아진다. 생각이 다른 사람의 계정에는 좌표가 찍히고 악성 댓글이 달린다. 반박이 아니라 응징을 한다. 토론이 아니라 사냥을 한다. 표적이 된 쪽은 논리가 아니라 숫자에 밀려 입을 닫는다. 다른 의견 하나가 사라질 때마다 우리가 함께 쓸 수 있는 생각의 폭도 그만큼 줄어든다.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은 주차장에서 벌어진 사소한 시비로 시작한다. 두 사람은 분노를 멈추지 못하고 상대의 삶을 무너뜨릴 때까지 복수한다. 요즘 우리 사회도 별점 하나를 그냥 넘기지 못한다. 본인 생각과 다른 감상을 만나면 궁금해하기보다 화부터 낸다. 상대가 사과하거나 입을 다물어야 끝난다. 다른 의견을 반박할 자유는 있다. 그러나 다른 의견을 말하지 못하게 할 권리 같은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