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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동맹이 불구대천의 원수로 바뀐 시발점, 신간 <1979년 이란혁명, 그리고 미국의 오판>
오늘의 위기를 이해하려면 미사일보다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1979년 테헤란이다. 신간 <1979년 이란혁명, 그리고 미국의 오판>은 바로 그 출발점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이 책의 원서 제목은 <King of Kings(킹 오브 킹스)>. 고대 페르시아 제국 이래 이어져 온 최고 군주의 칭호이자, 당시 국왕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 샤가 사용한 '샤한샤(왕중왕)'를 뜻한다. 제목부터 상징적이다. 누구도 흔들 수 없을 것 같았던 절대 권력이 불과 14개월 만에 무너지는 과정을 통해 현대 중동 질서가 어떻게 뒤집혔는지를 추적한다.
1977년의 이란은 혁명이 일어날 나라가 아니었다. 미국의 가장 중요한 중동 동맹국이었고, 석유 수출을 바탕으로 세계 5위 수준의 군사력을 갖췄다.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새해를 앞두고 테헤란에서 이란을 "안정의 섬"이라고 치켜세웠다. 미 중앙정보국(CIA) 역시 샤의 통치는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모든 예측은 처참하게 빗나갔다. 1979년 1월 샤는 망명길에 올랐고, 프랑스 교외에 머물던 성직자 루홀라 호메이니는 혁명의 지도자로 귀국해 이슬람공화국을 세웠다. 이어진 미국 대사관 인질 사태는 양국 관계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적대로 굳혀 놓았다.
이 책은 혁명을 '필연'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혁명은 예정돼 있던 거대한 역사 법칙의 결과가 아니라, 연속된 오판과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사건이라는 것이다. 베테랑 종군기자인 저자 스콧 앤더슨은 8년에 걸쳐 왕비 파라 팔레비를 비롯한 왕실 관계자, 카터 행정부의 백악관·국무부·CIA 인사, 혁명 세력 등을 인터뷰하고 기밀 해제 문서와 회고록, 일기를 종합했다. 그 결과 탄생한 서사는 한 편의 정치 스릴러에 가깝다.
인상적인 것은 미국의 실패를 단순한 정보 부족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본 결과'로 해석하는 대목이다. 테헤란 주재 미국 외교관 가운데 일부는 이미 거리의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보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워싱턴은 샤가 무너질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저자가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은 정보가 없어서가 아니라, 기존 신념과 충돌하는 정보를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권력의 심리다.
샤 역시 다르지 않았다. 궁정에서는 실업률이나 물가상승률 같은 불편한 통계가 축소됐고, 측근들은 군주가 듣고 싶은 말만 했다. 반대 세력은 고립된 소수라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종교인과 상인, 학생, 자유주의자, 좌파가 서로 다른 이유로 반정부 운동에 합류하고 있었다. 누구도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한 채 자신에게 유리한 조각만 붙잡았고, 그 결과는 한 왕조의 붕괴였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호메이니 역시 신화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혁명의 모든 것을 설계한 전지전능한 혁명가가 아니라, 여러 갈래로 흩어진 반정부 운동의 흐름을 누구보다 영리하게 자신의 방향으로 돌려놓은 정치적 승부사로 그려진다.
혁명이 성공한 뒤 자유주의자와 좌파를 차례로 배제하며 신정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 역시 냉정하게 묘사된다. 혁명은 민주주의의 승리도, 종교의 필연적 귀환도 아니었다. 권력 공백을 가장 능숙하게 활용한 인물이 최후의 승자가 된 과정이었다.
책을 읽다 보면 1979년은 이미 끝난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중동을 이해하는 원형으로 느껴진다. 미국은 왜 이란을 반복해서 오독하는가. 이란은 왜 반미주의를 국가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게 됐는가. 호르무즈해협과 걸프 지역을 둘러싼 긴장이 왜 쉽게 해소되지 않는가. 책은 이 모든 질문의 출발점을 혁명에서 찾는다. 제목의 '미국의 오판'은 특정 행정부의 실수가 아니라, 강대국이 동맹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한계도 있다. 저자가 미국인 기자인 만큼 서사는 자연스럽게 미국 외교와 정책 결정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혁명을 경험한 이란 사회 내부의 문화와 사상, 페르시아어 자료에 기반한 분석은 상대적으로 적다. 혁명의 원인을 미국의 오판에 지나치게 집중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저자가 결국 묻는 것은 "왜 아무도 무너질 것을 예상하지 못했는가"이다. 권력자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정보기관이 기존 믿음을 강화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며, 강대국이 동맹국의 겉모습을 현실로 착각하는 순간 역사는 예상 밖의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란혁명을 읽는 책이면서 동시에 오늘의 국제정치를 읽는 책이기도 하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