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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그날 샌프란시스코에선 'K-AI'의 무대가 열렸다
韓, 실리콘밸리서 AI 비전 선언
메모리·전력 병목 해결 열쇠로
윤성희 에루디오바이오코리아 대표
메모리·전력 병목 해결 열쇠로
윤성희 에루디오바이오코리아 대표
오랫동안 실리콘밸리에서 한국은 메모리 가격을 얘기할 때 등장하는 ‘훌륭한 공급자’ 정도였다. 그런데 공기가 달라졌다. 요즘 저녁 자리에서는 ‘메모리가 병목이고 전력이 모자란다’는 얘기가 화두다. 추론의 시대에 병목이 연산에서 메모리·에너지로 옮겨 온 것이다. 그 병목의 열쇠를 쥔 나라가 한국이며, 이는 우리 기업들이 수십 년 축적으로 벼려 낸 성취다. 한국은 이제 공급망 조연이 아니라 AI 혁명의 속도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다. 남은 과제는 이 우위를 국가의 지속적 경쟁력으로 바꾸는 일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과감한 투자가 이어지고 그 곁에서 스타트업이 자라나도록, 정부가 인허가·인재의 토양을 다져줘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다음 승부처다. 챗GPT가 연 첫 막이 ‘말하는 AI’였다면 실리콘밸리의 관심은 이미 피지컬 AI, 즉 ‘일하는 AI’로 옮겨 가고 있다. 이 승부는 최고의 모델을 넘어, 그것을 훈련시키고 검증할 현실의 제조 현장을 갖췄느냐에서 갈린다. 자동차·조선·배터리·로봇을 아우르는 한국의 밀집된 제조 생태계는 세계가 쉽게 복제할 수 없는 거대한 학습장이다.
바이오 AI의 잠재력도 크다. 임상에 들어간 신약 후보는 ‘십중팔구’가 실패하는데, 한국은 남다른 조건을 지녔다. 전 국민 건강보험으로 축적한 데이터가 있고, 건강검진이 일상으로 자리 잡은 덕에 국가 단위로 쌓인 건강한 사람들의 데이터까지 있다. 무엇이 건강한 상태인지 AI가 배울 수 있다는 뜻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바이오 의약품 생산 능력에 이 데이터가 더해지면 ‘신약 발굴 엔진’의 마지막 조각이 채워진다.
샌프란시스코 AI 선언은 시작일 뿐이다. 자본의 깊이, 심사의 전문성,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도 숙제로 남는다. 다행히 그 연결은 이미 시작됐다. 실리콘밸리의 한인 전문가들이 한국의 기업·연구기관·정부와 교류하며 통로를 만들어 왔고, 이번 선언은 여기에 정부의 무게를 더했다. 앞으로 정부의 꾸준한 관심과 실리콘밸리의 뜨거운 의지가 오랫동안 지속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