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공대 실리콘밸리 창업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이 지난 1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벌링게임 알토스벤처스를 방문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서울대 공대 제공
서울대 공대 실리콘밸리 창업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이 지난 1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벌링게임 알토스벤처스를 방문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서울대 공대 제공
“실리콘밸리에서는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는 사실이 있습니다. 스타트업 열 곳 중 아홉 곳은 망한다는 겁니다.”

지난 12일 미국 캘리포니아 모건힐의 한 목장. 실리콘밸리에서 유명한 액셀러레이터인 제프 월리스가 이렇게 운을 떼자 강의실에 둘러앉은 23명의 눈빛이 달라졌다. ‘성공하는 스타트업의 아홉 가지 핵심 신호’를 하나라도 놓칠세라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기 바빴다.

이들은 10일부터 11일간 열린 ‘서울대 공대 실리콘밸리 창업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부생이다. 서울대 공대가 처음으로 학부생들을 이끌고 실리콘밸리에 온 행사다. 창업반으로 선별된 이들은 글로벌 스타트업의 중심지 실리콘밸리에서 창업 과정을 체험하며 경험을 쌓는 기회를 얻었다.

일정은 도착 첫날부터 빡빡했다. 공항에서 짐을 풀기도 전에 학생들은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에 있는 몰로코 사무실로 향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박세혁 몰로코 공동창업자의 창업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열흘간 이어진 ‘기업 탐방’의 시작이었다.

이튿날부터는 윤성희 AI넥서스 공동창업자를 필두로 한 멘토단 6명이 팀별로 배정돼 팀 프로젝트를 매일 밤 이어갔다. 문제를 찾아내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설계, 검증하는 스타트업의 사이클을 경험해본 것이다.

학부생은 동문 창업가와 만나 실마리를 찾았다. 한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실리콘밸리에서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사)을 일군 김동신 센드버드 대표, 에릭 김 그루매틱 대표가 창업 일화를 소개했다. 기계공학부 박도연 씨(25)는 “성공 스토리보다 ‘그때 진짜 망하는 줄 알았다’는 이야기를 더 자주 들었다”며 “역경을 견딘 시간이 결국 그 회사의 진짜 자산이라는 걸 느꼈다”고 했다.

마지막 날인 19일 대망의 최종 발표가 이뤄졌다. 실리콘밸리 엔젤투자자와 멘토들 앞에서 5분간 발표한 뒤 5분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화학생명공학부 채민규 씨(24)는 “많이 긴장됐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내 아이디어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직접 부딪치며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방문은 올해 봄학기부터 서울대가 운영하는 ‘창업반’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스탠퍼드대 메이필드 펠로십을 벤치마킹해 창업에 전념하는 학부생을 정예로 선발해 1년간 학점, 숙소, 멘토링을 통합 지원한다. 메이필드 펠로십은 1996년 출범해 지금까지 300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하며 인스타그램, 구스토 같은 스타트업을 실리콘밸리 벤처·빅테크 네트워크에서 길러낸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을 이끌고 실리콘밸리를 찾은 김영오 서울대 공과대학장은 “창업 혁신 인재는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하기에 이번 실리콘밸리에서 쌓은 경험과 네트워킹이 매우 값진 자양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김인엽 특파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