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7층 테라스에서 궂은 날씨에도 포켓몬 카드를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이소이 기자
지난 20일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7층 테라스에서 궂은 날씨에도 포켓몬 카드를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이소이 기자
지난 20일 오전 8시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7층 테라스. 장맛비에도 포켓몬 카드 매장 앞에는 100여 명이 줄을 서 있었다. 돗자리와 간이의자를 펴고 밤을 새운 사람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진모씨(27)는 “전날 오후 11시부터 기다렸다”고 말했다.

포켓몬 카드 중고 거래 가격이 정가의 최대 네 배까지 뛰면서 되팔기 차익을 노린 밤샘 ‘오픈런’이 확산하고 있다. 매장이 1인당 구매량을 제한하자 전문 리셀러들이 여러 사람을 대리 구매에 동원하면서 일반 수집가와 자녀에게 카드를 사주려는 부모들은 제품을 구하기 어려워졌다.

◇접수 대기 낮 12시면 마감

매장에 따르면 하루 대기표 발급 인원은 평균 180~210명이다. 대기 접수는 이르면 낮 12시, 늦어도 오후 1시면 마감된다. 주말에는 평일보다 1.5배 이상 많은 사람이 몰린다. 이 가운데 150명가량은 새벽부터 매장 앞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밤샘 대기자 중 전문 리셀러나 이들이 고용한 대리 구매자는 하루 평균 30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돗자리와 간이의자를 가져와 밤을 보내거나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고 대신 줄을 서게 한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몰리는 것은 높은 되팔기 차익 때문이다. 매장에서 5만원에 판매하는 카드 박스는 당근 등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통상 9만~10만원에 거래된다. 물량이 적거나 선호도가 높은 제품은 가격이 20만원 안팎까지 오르기도 한다.

이날 새벽 2시부터 줄을 섰다는 신주원 씨(25)는 “‘151’ 카드 박스의 정가는 5만원이지만 중고 시장에서는 20만원 정도에 팔린다”며 “공식 매장에서 사지 못하면 큰 웃돈을 줘야 해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라고 했다. 포켓몬 카드 공식 판매 매장은 서울 목동과 용산, 수원, 인천, 부산 등 전국에 다섯 곳뿐이다.

5만원짜리 제품을 10만원에 되팔면 박스당 5만원의 차익을 남길 수 있다. 다섯 박스를 확보하면 한 번에 25만원을 버는 셈이다. 정가 3만원인 제품도 희소성에 따라 1만~10만원의 웃돈이 붙는다. 중고 거래 플랫폼에는 제품을 개봉하지 않고 포장 상태 그대로 내놓은 매물이 잇따르고 있다.

◇노인까지 대리 구매 동원

매장에선 인기 제품을 1인당 종류별 한 박스만 살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리셀러들은 가족이나 지인, 대리 구매자를 동원해 구매 한도를 우회하고 있다.

대기 줄에서는 대학생뿐 아니라 중장년층과 고령층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줄을 서 있던 70대 이모씨는 “보통 오전 9시 전에 와서 기다린다”며 “카드를 산 뒤 현장에서 거래상에게 넘기면 3만원을 받는다”고 했다. 카드를 수집하려는 소비자가 아니라 일정한 대가를 받고 구매에 참여하는 ‘줄서기 아르바이트’다.

밤샘 오픈런이 이어지면서 쇼핑몰 이용자의 불편도 커지고 있다. 대기자들이 가져온 의자와 돗자리, 각종 짐이 통로 주변에 쌓이고 일부가 술을 마시거나 큰 소리를 내는 일도 벌어진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대기 순서를 놓고 이용객끼리 다투는 사례 또한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이파크몰 관계자는 “보안요원들이 야외 흡연과 음주 등을 지속해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상적으로 구매한 물건에 웃돈을 붙여 되파는 행위를 일률적으로 막기는 어렵다. 다만 제품을 반복해서 판매해 사실상 영업을 하면 사업자등록과 세금 신고 의무가 생길 여지가 있다. 밤샘 대기 과정에서 통행을 방해하거나 소란을 피우는 행위도 별도로 제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소비자들은 1인당 구매 제한만으로는 전문 리셀러의 물량 확보를 막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여러 사람을 동원할수록 유리한 선착순 판매 대신 온라인 사전 추첨과 본인 확인, 구매 이력 관리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포켓몬 카드 수집가 이상원 씨(26)는 “돈을 벌려는 업자와 실제 카드를 좋아하는 소비자가 선착순으로 경쟁하면 일반 소비자가 이기기 어렵다”며 “결국 웃돈을 주고 사거나 구매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소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