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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의 전쟁이 만든 스포츠 제국…아디다스와 푸마의 탄생 [조셉의 패션 알쓸잡썰]
같은 집에서 태어난 두 개의 브랜드
독일 바이에른 주의 작은 마을 헤르초게나우라흐에는 가족들이 아디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아돌프 다슬러가 살고 있었다. 그는 모친이 사용하던 세탁실을 공방으로 만들고 운동화를 생산했다. 아디는 선수의 움직임을 살피고 밑창과 스파이크 같은 신발의 기능적인 부분에 집착했다.
반면 형 루돌프, 즉 루디는 정반대였다. 그는 사람을 만나고 물건을 판매하며 딜을 성사시키는데 능했다. 제품 기획에 미친 동생과 영업에 강한 형이 뭉쳐 1924년 다슬러 형제 신발 공장을 설립했다. 한동안 이들은 완벽한 한 팀처럼 보였다.
다슬러 형제의 성공시대를 보여주는 장면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등장한다. 우리에게는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참나무 묘목으로 가린 채 고개를 숙인 시상식으로 유명한 그 대회 말이다. 당시 미국의 흑인 육상선수 제시 오언스는 다슬러 형제의 스파이크를 신고 네 개의 금메달을 딴 것이다.
전쟁이 끝나자 형제의 전쟁이 시작됐다
다슬러 형제의 사이는 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흔들렸다. 경영 방식으로 자주 충돌했고, 두 가족이 한집에 살면서 갈등은 더 자주 발생했다. 여기에 1943년 형 루디가 군에 징집되고 아디가 공장에 남으면서 두 형제의 의심과 갈등은 심화된다.이들의 갈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야기가 방공호 사건이다. 공습을 피해 집으로 들어온 아디가 “또 왔군”이라고 혼잣말을 했다. 폭격기를 두고 한 말이었지만 루디는 자기 가족을 향한 욕설이라 받아들인 것이다. 물론 이 한마디가 결별의 원인이었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경영권 다툼과, 가족 간 반목이 전시 상황에서도 폭발할 만큼 심화된 상태였다.
전쟁 이후 연합군은 나치 부역자들의 심사를 진행한다. 당시 루디는 미군정에 억류된 적이 있는데, 이것의 배경에는 아디의 밀고가 있었다고 의심했다. 반면 아디가 심사받는 과정에서는 전시 무기 생산의 책임을 둘러싼 형제의 공방이 이어졌다. 실제 밀고가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같은 피를 나눈 형제는 더 이상 함께 회사를 운영할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이다.
이제 전쟁터는 선수들의 발끝이었다
마을 안에서 감정싸움은 스포츠 무대로 옮겨갔다. 두 회사는 훌륭한 성능의 신발을 만드는지로 겨룬 것만이 아니라 누가 더 유명한 선수의 발을 차지하느냐를 두고 싸웠다. 그래서 양 사는 경쟁적으로 당대 최고 스타들과 스폰서십 계약을 맺는다. 1960년대 아디다스가 무하마드 알리를 협찬하며 지금도 회자되는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메시지가 나왔고, 푸마는 1966년 월드컵 때 에우제비우에게 후원했고 그는 득점왕에 등극한다. 이 치열한 경쟁 과정에서 양 사는 이 스포츠 마케팅 비용의 무서움을 깨달았다.그리고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이 찾아온다. 이 대회는 TV 시대의 월드컵이었다. 당시 아디다스는 공인구 텔스타를 만들었다. 검은 오각형과 흰 육각형이 섞인 디자인은 흑백 TV 화면에서 공이 잘 보이도록 디자인한 것이었다. 아디다스가 축구공을 통해 TV 시대를 대비한 것이다.
푸마는 부담되기 시작했다. 라이벌 아디다스에게 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이때 푸마 눈에 띈 선수가 당시 축구 황제 펠레였다. 다만 월드컵 때 양 사가 펠레를 두고 경쟁을 한다면 출혈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됐고, 아디다스와 푸마는 서로 계약하지 말자는 펠레 협정을 맺었다.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는 요한 크루이프가 또 다른 장면을 만들었다. 당시 네덜란드 대표팀은 아디다스의 협찬을 받았지만 크루이프 개인은 푸마와 계약돼 있었다. 결국 다른 선수들이 삼선 유니폼을 입을 때 크루이프만 두 줄짜리 특별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이 한 선수의 개인 스폰서 계약 때문에 국가대표 유니폼의 디자인이 달라진 것이다. 오늘날 선수와 구단, 리그와 브랜드가 초상권과 로고 노출을 두고 벌이는 복잡한 이해관계 간의 갈등이 이때부터 본격화 된 것이다.
형제는 사라졌지만 라이벌은 남았다
1974년 루디가, 1978년 아디가 세상을 떠난다. 끝내 두 사람은 화해하지 않았고 같은 묘지에서도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 묻혔다. 이 형제의 싸움이 현대 스포츠 마케팅의 시초였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확히는 이들의 경쟁이 선수 스폰서쉽을 하나의 산업으로 키웠다고 봐야한다. 제품을 잘 만드는 것만은 부족하고, 누가 그것을 신고 어떤 장면을 남기느냐가 브랜드의 가치가 된 시대. 아디다스와 푸마는 누구보다 빠르고 강하게 그 문법을 밀어붙였다.아이러니하게도 두 회사가 처음으로 공식 공동 행사를 연 것은 결별 후 60여 년이 흐른 2009년이었다. 세계 평화의 날을 맞아 양사 직원들이 섞여 축구 경기를 개최했다. 창업자 형제는 끝내 하지 못한 악수를 후대의 직원들이 대신한 셈이다. 사실 우리가 이 브랜드들의 매장에서 고르는 것은 운동화 한 켤레지만, 그 제품 안에는 올림픽과 전쟁, 가족의 의심, 한 마을의 편 가르기, 그리고 선수의 발끝을 돈과 권력으로 바꿔 놓은 스포츠 비즈니스의 역사가 함께 묶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