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스페셜 리포트 - ESG 법정공시 속도 낸다 ④ ESG 공시 로드맵의 성패는
박상민 IBK기업은행 ESG 경영팀장. 사진=IBK기업은행
박상민 IBK기업은행 ESG 경영팀장. 사진=IBK기업은행
7월 8일 발표된 ‘지속가능성(ESG) 공시 제도화 방안’은 연결기준 자산 10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한 법정공시를 골자로 한다. 올해 2월 로드맵 초안의 30조 원 이상에서 대상을 확대했고, 2030년까지 2조 원 이상 기업으로 단계적으로 넓힐 계획이다. 거래소 공시가 아닌 사업보고서를 통한 자본시장법상 법정공시가 되면서 공시 수단과 형식도 한층 엄격해졌다.

이번 법제화로 지속가능성 공시는 재무정보를 보완하던 2차적 자율공시의 지위에서 벗어나 재무공시와 동일한 위상으로 격상됐다. 정보 이용자는 재무 성과와 기후리스크 정보를 같은 수준의 신뢰성과 접근성 아래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반면 법률적 책임도 강화된다. 정부는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고의적 그린워싱이 아니라면 모든 공시정보에 대해 3년간 한시적 면책을 적용하고, 예측·추정 정보에는 제도적 세이프하버(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법적 책임이나 제재를 면제)를 마련했다. 산출 난도가 높은 스코프3은 3년 유예해 2031년부터 공시한다.

이러한 경감 조치의 근저에는 탄소회계의 특수성이 자리한다. 재무회계가 이미 확정된 화폐 단위를 어떻게 분류하고 배치할 것인가의 문제라면, 탄소회계는 불확실한 현실세계의 물리량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 단위로 변환할 것인가에 집중한다. 전기사용량과 연료소비량 등에 배출계수를 적용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추정하고, 측정·보고·검증(MRV)을 거쳐야 비로소 기본단위인 배출량(tCO2eq)이 확정된다.
연결기준 공시가 원칙인 만큼 주요 종속회사에도 동일한 산정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대형 상장기업은 자율공시 기간에 자체 인프라를 고도화했지만, 추정이 개입된 정보의 법정공시에 법률적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기업들이 세이프하버를 강하게 요구해 온 이유다. 자본시장법을 우회한 민사상 분쟁 가능성도 있는 만큼, ‘선의의 합리적 추정’을 인정하는 정보 이용자의 열린 태도와 사회적 관용도 제도 초기 안정화에 필요하다.

탄소회계는 산업별 배출 특성과 계산 방법론도 다르다. 철강은 용광로 공정배출, 석유화학은 정제 과정의 다중 배출원, 정보기술과 금융은 가치사슬 전반의 스코프3이 핵심이다. 동일 산업 피어그룹 내 상호학습과 정합성이 중요한 이유다. 공시 지원제도도 산업별로 세분화될수록 정책 효과가 커질 수 있다.

가장 어려운 과제는 스코프3이다. 협력사와 고객, 운송 과정 등 기업 경계 밖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을 측정해야 하지만 공급망 데이터 확보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스코프3 공시는 탄소중립을 공급망 전체로 확산시키는 강력한 수단이다. 유예된 3년 동안 표준화된 공급망 정보 플랫폼을 구축하고 중견·중소 협력사에 대한 컨설팅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결국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화의 성공적인 안착은 탄소회계의 특수성을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고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배출권거래제와 함께 지속가능성 공시는 탄소중립을 촉진하는 주요 제도적 수단이다. 탄소회계의 치열한 기술적 고민은 단순한 공시 실무를 넘어 지속가능한 자본주의의 토대를 다지는 과정이다.

박상민 IBK기업은행 ESG경영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