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스페셜 리포트 - [긴급 분석]ESG 법정공시 속도 낸다 ③ - 기업의 준비 상황은
이억원 금융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화 방안 관련 당정 협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6. 07. 08. 사진=연합뉴스
이억원 금융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화 방안 관련 당정 협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6. 07. 08. 사진=연합뉴스
국내 코스피 상장사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제3자 검증과 글로벌 보고기준 활용 측면에서 상당한 기반을 갖춘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2028년 사업보고서를 통한 법정공시에 필요한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의 한국형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적용과 연결 범위 데이터 수집, 공시 일정 단축을 위한 준비는 미흡한 것으로 분석됐다.

한경ESG가 2026년 5월 1일부터 7월 17일까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자율공시로 올라온 지속가능경영보고서 208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다. 해당 조사에는 코스피 상장사의 2025년 회계연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현안이 담겼다. 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자율공시는 글로벌지속가능성보고기준기구(GRI, 글로벌리포팅이니셔티브)를 중심으로 기업의 환경·사회적 영향과 이해관계자 소통을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GRI는 98.6%, KSSB는 13.9%

기업이 가장 많이 활용한 기준은 GRI였다. 코스피 상장사 208곳 가운데 205곳이 GRI를 활용해 공시했다. 지속가능성회계기준위원회(SASB)를 적용한 기업은 174곳,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협의체(TCFD)를 활용한 기업은 129곳이었다. 기존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생태계가 GRI를 기본 틀로 삼고 SASB와 TCFD를 보완적으로 활용하는 구조임을 보여준다.

반면 정부 법정공시의 직접적인 기준이 될 KSSB를 작성 기준이나 주요 내용에 반영한 기업은 29곳으로 13.9%에 그쳤다. 한국회계기준원 산하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는 2026년 2월 지속가능성 재무정보 공시를 위한 일반 요구사항(S1)과 기후 공시(S2) 기준을 확정한 바 있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기준을 반영하거나 언급한 기업은 35곳으로 16.8%였다. KSSB나 ISSB 가운데 하나 이상을 언급한 기업은 58곳으로 전체의 27.9%였다. 두 기준을 모두 언급한 곳은 동양, 한국콜마, 삼성바이오로직스, 미스토홀딩스, BNK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등 6곳이다.

일부 선도기업은 법정공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KB금융은 보고서 명칭부터 ‘KSSB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적용’을 내세웠다. 미스토홀딩스는 작성 기준에 GRI와 SASB, TCFD뿐 아니라 국제회계기준(IFRS) S1·S2와 KSSB 제1·2호를 함께 명시했다. 이노션 등 다수 기업은 부록에 KSSB 인덱스를 포함했다. 다만 KSSB 인덱스를 싣거나 기준을 참고했다고 밝히는 것과 KSSB에 따라 완전한 법정공시를 작성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법정공시에서는 기후 위험과 기회의 식별, 재무적 영향, 의사결정 과정, 목표와 실적을 서로 연결해 제시해야 한다.
코스피 자율공시 208건 분석…KSSB 반영은 13.9%
제3자 검증은 사실상 보편화

제3자 검증 기반은 비교적 탄탄했다. 분석 대상 208곳 가운데 207곳이 검증기관을 기재했다. 비율로는 99.5%다. 한국경영인증원과 한국표준협회, 한국품질재단, 한국생산성본부인증원, 영국표준협회(BSI) 등 전문기관뿐 아니라 회계법인도 검증에 참여하고 있었다. 기업들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보고서와 스코프3 배출량 등에 대해 외부 검증을 활용하는 관행은 이미 상당 부분 정착된 셈이다.

그러나 현재의 자율적 검증이 2030년 도입될 법정 인증으로 그대로 인정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업마다 검증 범위와 수준, 적용 기준이 다르고 일부 기업은 특정 지표만 검증한다. 정부가 마련할 인증 및 품질관리 기준에 따라 인증기관의 자격과 검증 절차, 책임도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법정공시 초기 인증 범위에 포함될 예정인 스코프 1·2 배출량 등 핵심 기후 정보는 제3자 검증에 필요한 요건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시 92%가 6월…3월 말까지 석 달 당겨야

기업이 당장 마주할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공시 일정이다. 코스피 상장사 208곳 가운데 192곳인 92.3%가 6월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6월 30일 하루에만 전체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55.3%에 해당하는 115건이 몰렸다. 현재 기업들은 전년도 ESG 데이터를 취합한 뒤 5~6월에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2028년부터는 같은 정보를 3월 말 사업보고서에 담아야 한다. 현재보다 공시 일정을 약 3개월 앞당겨야 하는 셈이다.

이를 위해서는 연말이 지나서야 ESG 데이터를 모으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ESG 컨설팅 업계 관계자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에너지 사용량, 산업안전, 공급망 정보 등을 월별 또는 분기별로 집계하고 재무결산 일정과 연계해야 일정을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또 그는 “온실가스 수치가 이후 변경되면 정정공시를 해야 하는 만큼 잠정치 산정과 수정 절차도 미리 설정해 둬야 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ESG 부서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작성하고 재무·공시 부서가 사업보고서를 작성하는 기존의 분업 구조도 재편이 불가피하다. 법무와 내부감사, 리스크 관리 부서, 이사회까지 참여하는 공시 통제체계 구축이 필요한 상황이다.

연결공시 준비 확인된 기업은 36.1%

보고 범위도 주요 과제로 나타났다. 자회사나 종속회사, 연결기준을 자율공시 본문에 명시한 기업은 75곳으로 36.1%였다. 일부 기업은 비교적 구체적인 보고 경계를 제시했다. 효성은 연결 매출액의 99% 이상을 차지하는 종속기업을 공시에 포함했다고 밝혔다. 한화비전은 본사와 주요 해외법인, 자회사를 포함해 연결조정 전 매출액의 95% 이상을 보고 범위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재무정보는 연결기준으로 작성하면서 환경·사회 정보는 국내 본사나 일부 사업장에 한정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2028년 법정공시에서는 주요 종속회사의 기후 데이터까지 연결해야 하므로 재무정보의 연결 범위와 비재무 데이터의 보고 범위 간 차이를 줄여야 한다.

정부가 공시 첫해에 자산과 매출이 모두 연결기준 10% 미만인 종속회사를 제외할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이는 한시적 조치다. 해외법인과 비상장 자회사의 배출량, 에너지 사용량, 기후 위험 데이터를 동일한 기준으로 수집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으면 공시 범위가 확대될 때 병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스코프3 공시 21.5%…기업 간 데이터 격차 뚜렷

정부는 가치사슬 온실가스 배출량을 의미하는 스코프3 공시에 대해 기업별 의무공시 시작 시점부터 3년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산정 난도가 높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지만 이미 자율적으로 스코프3 정보를 공개하기 시작한 기업도 적지 않았다.

2024년 회계연도를 기준으로 코스피 상장사 841곳의 스코프3 공시 현황을 별도로 조사한 결과, 전체의 21.5%인 181곳이 15개 카테고리 가운데 하나 이상의 배출량 정보를 공개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시 기업 사이에서도 정보의 범위는 크게 달랐다. 삼성전자와 포스코홀딩스, LG, LG이노텍, 넥센타이어, 포스코퓨처엠, KT&G, SK아이이테크놀로지, HL만도, 대한전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11곳은 15개 카테고리를 모두 공개했다. 반면 일부 기업은 구매한 제품과 서비스, 출장, 물류 등 소수 카테고리만 공시했다.

모든 기업이 15개 카테고리를 일률적으로 공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사업모델과 가치사슬, 배출 규모를 고려해 중요한 카테고리를 식별하고 관련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업종에 따라 주요 배출원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공시 카테고리 수만으로 공시 수준을 평가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문제는 일부 선도기업이 가치사슬 전반의 데이터를 구축하는 동안 상당수 기업은 아직 카테고리별 산정에 착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ESG 컨설팅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차이는 공시 항목 수보다 협력사 데이터 수집, 배출계수 관리, 추정 방법론과 내부통제 등 탄소회계 인프라의 격차를 보여준다”고 전했다.

이승균 기자 cs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