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8년부터 연결자산총액 10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를 의무화한다. 당초 30조 원 이상 기업부터 시작하려던 계획보다 대상을 크게 넓혔다.
[한경ESG] 스페셜 리포트 - [긴급 분석]ESG 법정공시 속도 낸다 ① ESG 공시 로드맵 내용은
금융위원회 /사진=뉴스1
정부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로드맵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지난 2월 발표한 초안과 비교하면 공시대상, 공시채널, 인증제도 세 축에서 뚜렷하게 강화된 모습이다. 거래소 의무공시를 거쳐 법정공시로 전환하는 단계 없이 사업보고서를 통한 법정공시로 곧바로 시작한다. 공시 여건이 무르익기를 기다리기보다 제도 도입을 통해 시장의 변화를 이끌겠다는 게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2028년 자산 10조 원 이상 107곳 첫 적용
금융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이 7월 8일 ‘ESG 공시 제도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28년 사업보고서부터 연결자산총액 10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107개사가 2027회계연도 ESG 정보를 공시해야 한다. 2029년에는 5조 원 이상 157개사로 대상을 확대한다. 정부는 2028~2029년 운영 상황을 평가해 2030년부터 2조 원 이상 259개사까지 넓히는 방안을 검토한다.
연결공시 대상인 주요 종속회사까지 합치면 공시 체계에 편입되는 기업은 2028년 291개사, 2029년 3171개사로 늘어난다. 다만 기업이 종속회사 전반의 기후 데이터를 취합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공시 첫해에는 자산과 매출이 모두 연결 기준 10% 미만인 종속회사를 공시 범위에서 제외한다.
이번 최종안은 지난 2월 공개한 초안보다 강도가 높아졌다. 초안은 2028년 연결자산총액 30조 원 이상 기업부터 거래소 의무공시를 시행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법정공시로 전환하는 내용이었다. 의견수렴 과정에서 글로벌 국부펀드와 기관투자자는 코스피200 주요 기업을 조기에 공시 대상에 포함하고, ESG 정보를 재무보고서와 같은 채널과 시점에 제공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소 거치지 않고 사업보고서에 바로 공시
정부는 연내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2028년부터 ESG 공시를 3월 말 사업보고서에 담을 계획이다. 재무제표와 지속가능성 정보를 같은 시점과 채널에서 제공해 투자자가 기업의 기후 리스크와 재무적 영향을 함께 판단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온실가스 배출량도 배출권거래제 검증기관의 검증 수치를 3월 말 공시하고, 이후 수치가 바뀌면 정정 공시하도록 한다.
법정공시가 곧바로 도입되는 만큼 초기 3년간은 공시 정보 전체에 포괄적 면책을 적용한다. 기업 자체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기후 관련 거버넌스 등 과거 사실 정보도 손해배상과 행정제재,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한다. 다만 고의적인 그린워싱은 손해배상과 행정제재 면책 대상에서 제외한다.
3년 뒤부터는 미래예측·추정치와 협력업체·해외 종속회사 등 기업이 통제하기 어려운 제3자 정보에 기반한 공시의 경우에도 면책을 적용한다. 관련 가정과 판단의 근거를 밝히고 합리적 근거에 따라 성실하게 작성한 경우 고의나 중과실이 없으면 책임을 묻지 않는 방식이다.
공시 정보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제3자 인증은 2030년부터 의무화한다. 초기에는 스코프1·2 배출량과 거버넌스, 위험관리 등 일부 정보에 제한적 인증을 적용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인증 기준과 품질관리 기준은 국제표준을 고려해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마련한다.
제3자 인증 2030년부터…스코프3은 3년 유예
가치사슬 전반의 온실가스 배출량인 스코프3 공시는 기업별 의무공시 시작 시점부터 3년간 유예한다. 연결자산총액 10조 원 이상 기업은 2031년, 5조 원 이상 기업은 2032년, 2조 원 이상 기업은 2033년부터 적용받는다. 중소기업기본법상 소기업이면서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적용 업종 등 고탄소 업종에 해당하지 않는 협력사는 산정 범위에서 제외한다.
공시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기준과 정합성을 갖춘 한국회계기준원 산하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 기준에 따라 기후 분야부터 시작한다. 기업은 기후 관련 위험과 기회를 감독하는 거버넌스, 전략과 재무적 영향, 위험관리 절차, 온실가스 배출량과 목표 등을 공개해야 한다. 기후 외 환경·사회·지배구조 부문은 기업이 선택적으로 공시할 수 있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내 산업 여건을 고려해 내부탄소가격과 산업별 지표는 선택 공시를 허용한다. 의무공시 대상이 아닌 기업도 거래소를 통해 KSSB나 유럽지속가능성공시기준(ESRS), 글로벌 지속가능성보고기준기구(GRI) 기준에 따라 자율적으로 공시할 수 있다. 자율공시 우수기업에는 상장수수료 면제와 불성실 공시법인 지정 유예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정부는 기업의 준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기전자, 운송장비·부품, 금융, 화학 등 7개 산업군을 대상으로 KSSB 파일럿 테스트를 진행한다. 2028년에는 사업장 위치와 에너지 사용량 등을 토대로 홍수, 산불 등 물리적 위험과 탄소규제에 따른 전환 위험을 분석하는 한국형 기후리스크 통합플랫폼을 공개한다.
정부는 2028년까지 주요 수출 15개 업종의 스코프3 산정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제품 전 과정의 탄소배출 정보를 담은 데이터베이스 1000개를 구축한다. 협력사가 정보를 한 번 입력하면 여러 원청기업에 제출할 수 있는 공급망 ESG 플랫폼도 2029년까지 마련한다.
공시 정보는 투자와 금융에도 직접 활용된다. 국민연금은 책임투자와 기업과의 대화에 ESG 공시 정보를 반영한다. 정부는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 책임원칙) 이행 점검 때 운용사의 기후·ESG 요소 반영 여부를 확인해 공개하기로 했다. 2026~2035년 790조 원 규모로 공급할 기후금융 가운데 전환금융 심사에도 공시보고서를 활용해 기업의 전환계획과 이행 가능성을 확인한다. ESG 공시가 보고서 작성 업무를 넘어 자본 배분과 기업 경영을 바꾸는 기반으로 작동하게 되는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7월 중 공시 의무화와 인증제도 도입을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해 연내 통과를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법령 정비와 인증제도, 공시 이행지원, 금융지원 등 4개 분과로 실무 워킹그룹을 구성해 세부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속가능성 공시는 기업의 의사결정과 리스크 관리 체계를 새롭게 구성하는 경영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