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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잘 그린다던 박찬욱 감독의 동생, '헛수고'를 했다
박찬경 개인전 '안구선사'
미디어아트·사진 작업으로 인정받아
형 박찬욱 감독과 영화 작업까지
미술 출발점인 회화로 전시 꾸며
불교벽화 등 전통 미학에서 영감
미디어아트·사진 작업으로 인정받아
형 박찬욱 감독과 영화 작업까지
미술 출발점인 회화로 전시 꾸며
불교벽화 등 전통 미학에서 영감
“아버지가 아마추어 화가라 휴일에 미술 얘기를 나누며 인사동 갤러리를 돌았어요. 외할아버지는 미술품을 사 모으기도 하셨고요.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는데, 동생(박찬경) 솜씨가 뛰어나니 ‘미술은 나의 것이 아니구나’ 여기게 됐죠.”
탐미적 연출로 유명한 박찬욱이 세련된 미적 감각을 캔버스가 아닌 스크린에 펼치게 된 배경에는 그림 솜씨 좋은 동생의 존재가 자리 잡고 있다. 극장은 물론 미술관도 자주 찾는 예술 애호가들이 박찬욱 특유의 미장센을 접할 때마다 한 번쯤 동생의 그림도 직접 보고 싶다는 기대를 품었던 이유다.
지금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 가면 박찬욱에게 영화의 길을 터준 그림을 만나볼 수 있다. K1 전시장에서 박찬경의 개인전 ‘안구선사(眼球禪師)’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갤러리에서 9년 만에 선보이는 박찬경의 전시로, 최근 작업한 회화 20여 점을 중심으로 전시가 구성돼 있다.
박찬경이 최근 그린 회화가 걸렸다는 자체로 적지 않은 미술 애호가들이 전시에 관심을 두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박찬경은 “주로 사진이나 영상, 설치 작업을 해왔는데, 이번엔 오랜 시간 중단해왔던 그림을 그려봤다”며 “미술의 출발이 그림이었기에 내게 회화는 고향”이라고 설명했다.
박찬경이 다시 붓을 든 이유는 전시 주제와 관련 깊다. 그는 대체로 지난 30여년 간 분단과 냉전, 전통과 민간신앙을 아우르는 시도를 통해 한국과 동아시아의 근대성을 살펴왔다. 이른바 ‘전통’으로 뭉뚱그려지는 서구화 과정에서 소외된 문화적 맥락을 미술 언어로 풀어내려 했다.
특히 전통이라는 개념을 비틀어보기 시작한 그는 사찰벽화와 민화에서 관찰되는 ‘그로테스크함’과 ‘해학’에 주목했다. 이를 원초적으로 되살리기 위해 재현에 집중하는 사진 대신 머릿속에 고인 상상력을 고스란히 쏟아낼 수 있는 매체인 붓을 다시 들게 된 것이다.
전시에는 이런 작가의 사고가 반영된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전시 제목과 동명의 작품인 ‘안구선사’가 대표적이다. 한국 사찰 벽화에 흔히 그려지는 ‘구지선사(俱胝禪師)’ 이야기를 차용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스승의 동작을 흉내 내는 동자승의 손가락을 자른 일화를 더 짓궂게 비틀어 손가락 대신 눈알을 뽑는 장면을 그려냈다. 눈이 뽑히고 나서야 비로소 항상 무언가를 모방하느라 급급했던 자신의 모자람을 깨닫게 된다는 다소 자학적인 시각예술가의 선문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도를 얻기 위해 팔을 잘랐다는 혜가의 고사를 그린 ‘혜가단비도’, 화로를 머리에 이고 가 불법을 배우려는 결의를 보인 혜통의 이야기를 그린 ‘혜통선사’ 등도 이런 전통적 사고를 일종의 ‘그로테스크 공상과학(SF)’으로 변형한 작업이다.
다채로운 회화가 걸렸지만, 형이 치켜세웠던 실력을 기대했다면 다소 고개를 갸웃할 수 있다. 회화적 독창성이나 스타일이 엿보이진 않아서다. 익명의 창조성이 켜켜이 쌓여야 전통이라는 문화가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화가 개인의 개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했기 때문이다.
매끈한 테크닉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통에 발칙한 상상력을 덧씌워 입체적으로 설계한 회화로 받아들인다면 박찬욱이 언급한 솜씨의 요체를 느낄 수 있다. 전시는 5월 10일까지.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