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자신의 역대 최대 회고전 오프닝에 오지 않았다. 올해 93세. 몇 년 전부터 여행을 멈췄다. 미술관에 가면 기자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거듭 받고, 몇 년 전과 다른 답을 하면 미술사학자들에게 지적을 받는다고 했다.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다며, "남은 시간 동안 그림을 그리겠다"는 게 작가의 입장이다. 대신 아내와 딸이 파리를 찾아 작가의 눈이 되어 270점의 배치를 직접 확인했다.
리히터 재단 학술연구원 케르스틴 퀴스터(Kerstin Küster)는 “리히터는 ‘내 그림이 여기 있으니, 내가 여기 있는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의 작품 세계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퀴스터의 안내로 60년의 궤적을 따라갔다.
전시는 지하 1층에서 시작해 시간순으로 위로 올라간다. 큐레이터 디터 슈바르츠와 니컬러스 세로타가 기획한 이 구성은, 리히터를 구상화가나 추상화가로 분류하기보다 매체와 형식을 넘나드는 변화의 흐름 속에서 읽게 한다. 퀴스터는 작가가 구상에서 추상으로, 다시 풍경과 초상으로 되돌아오는 움직임 자체가 작업의 본질이라고 설명한다.
“사진을 그리는 데 2주가 걸렸다. 그런데 커튼을 그리는 데도 2주가 걸렸다. 그러면 왜 커튼을 안 그리겠는가. 커튼을 그릴 수 있다면, 커튼의 회색만 그릴 수도 있다.” 사진에서 커튼으로, 커튼에서 색면으로. 구상에서 추상으로의 이동은 갑작스러운 전향이 아니라, 회화의 가능성을 하나씩 밀어붙인 결과였다.
추상회화로 넘어가면 작업 방식도 달라진다. 초기 추상이 스케치에 기반한 구축에 가깝다면, 후기 작업에서는 스퀴지가 우연을 끌어들이는 핵심 도구가 된다. 물감을 밀어내며 동시에 긁어내는 이 방식은 작가조차 예상하지 못한 효과를 낳고, 리히터가 추상회화를 통해 회화의 불확실성을 끝까지 밀어붙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흰색 추상회화는 이 위험이 극대화된 경우다. 아래층에 강렬한 색을 여러 겹 쌓은 뒤 맨 위에 흰색을 올리는데, 아래 안료가 위로 번지거나 스퀴지가 너무 깊이 들어가면 캔버스가 망가진다. 실제로 완성 직전 검은 선이 올라와 작품을 폐기한 적도 있다고 했다. 리히터에게 추상회화는 아름다운 결과물이기 이전에 긴장과 판단의 연속이다.
비르케나우, 덧칠한다는 것의 의미
전시의 무게중심은 비르케나우 연작에 놓인다. 출발점은 1944년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에서 수감자들이 몰래 찍은 사진 네 장이다. 가스실과 학살 현장을 담은 현존하는 유일한 은닉 촬영 기록으로, 벌거벗은 사람들이 끌려가는 모습이 남아 있다.
리히터는 처음에 이 사진을 사실적으로 캔버스에 옮겼다. 그리고 거의 완성된 상태에서 전부 덧칠했다. 추상회화와 같은 방식으로. 퀴스터는 그 이유를 이렇게 전했다. “사실적으로 그린 결과물이 희생자들에게 존엄을 돌려주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그것은 범죄의 기록이고, 회화적 재현이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고 느꼈다.”
그가 추상으로 덮어버린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가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비르케나우 연작은 리히터의 회화론이 윤리적 판단과 만나는 지점이다.
유리, 거울,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유리와 거울 작업은 관람객을 전시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리히터는 작품, 보는 사람, 작품이 놓인 공간이 함께 작동해야 회화가 완성된다고 보았고, 거울은 그 관계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다. 유리 앞에 선 관람객은 반사와 투과 사이에서 작품과 자기 자신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리히터의 유리와 거울 작업은 1960년대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뿌리를 둔다. 퀴스터는 리히터가 전시에 거울을 넣는 이유를, 관람객에게 ‘당신은 이 전시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려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작품은 관객 없이 완성되지 않고, 관객 역시 작품의 일부로 편입된다.
맞은편 벽에 걸린 회화가 유리에 비치면, 반사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리히터의 유리와 거울은 회화가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보는 방식 속에서 계속 갱신되는 이미지임을 보여준다.
리히터의 작품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이유도 그의 일관된 태도와 맞닿아 있다. 그는 작품이 완성되면 일찍부터 갤러리와 미술관에 넘겼고, 그 결과 세계 주요 미술관 어디에서나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됐다. 퀴스터는 리히터가 특정한 ‘리히터 미술관’보다 20세기의 목소리 중 하나로 남기를 원했다고 전했다.
이 전시의 의미는 그래서 더 크다. 평소라면 여러 미술관과 개인 소장처에 흩어져 있을 작품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작가의 60여 년 작업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리히터를 처음 만나는 관람객에게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익숙한 관람객에게는 새로운 작품과 배치를 보여주는 전시였다.
이 전시는 큐레이터들이 제안한 구성을 리히터가 받아들인 방식으로 완성됐다. 그는 작품을 과도하게 설명하기보다, 그림 자체가 말하도록 두는 쪽에 가깝다. 2009년 한 인터뷰에서 딸을 그린 방식에 대해 묻자 그는 “나는 화가일 뿐이다. 말로 전하고 싶었다면 작가가 됐을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