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추천 뉴스
세 아들과 고향을 두고 온 두 예술가, 태양을 향해 걷다
에텔 아드난&이성자 2인전
‘태양을 만나다(To meet the sun)’
화이트큐브서 3월 7일까지
한국-레바논 동시대 살아간
두 작가의 공통분모 발견하는 기회
‘태양을 만나다(To meet the sun)’
화이트큐브서 3월 7일까지
한국-레바논 동시대 살아간
두 작가의 공통분모 발견하는 기회
두 작가 관통한 상실과 그리움
시대를 초월한 두 작가의 대화가 시작됐다. 서울 강남구 화이트큐브에서 열린 ‘태양을 만나다(To meet the sun)’를 통해서다. 레바논 출신의 시인이자 작가 에텔 아드난(Etel Adnan)과 재불 1세대 추상화가 이성자의 작품을 함께 소개하는 2인전이다. 아드난의 작품은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에 처음 소개된다. 두 작가가 활동하던 시기는 비슷하지만,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은 50년의 격차가 있다. 이성자 작가의 작품은 1960년대, 에텔 아드난의 작품은 2010년대 작업한 것이다. 하지만 전시장에서 어깨를 나란히 한 두 작가의 작품은 이질감 없이 어우러진 모습이다. 작업 연도도, 사는 곳도 다르지만 마치 시공간을 초월해 대화를 나눈 듯 상당 부분에서 공통점을 공유한다.
절망과 상실감을 안은 채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작가는 반 세기동안 무려 4000여점의 작품을 남길만큼 작품 활동에 몰두했다. “붓질 한 번 하면서 이건 우리 아이들 밥 한술 떠 먹이는 것이고, 붓질 한 번 더 하면서 이건 우리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라고 여기며 그렸다”는 생전 작가의 말처럼 그는 씨를 뿌리듯 캔버스에 물감을 입혔고, 밭을 갈듯이 점과 선을 그으며 모정으로 붓질을 이어갔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태피스트리(Tapestry) 작업 역시 레바논에서의 기억이 모티브가 됐다. 전시를 기획한 수잔 메이 화이트큐브 글로벌 아트 디렉터는 “작가가 어린 시절 자란 레바논의 집은 벽에 걸린 그림보다 카페트나 여기저기 걸린 직조물이 더 익숙한 풍경이었다”며 “1960년대부터 태피스트리 작업을 시작하려 했지만 비용 문제로 드로잉만을 남겨두었다가 2000년대 들어서부터 프랑스의 유서 깊은 태피스트리 명가 팽통(Pinton)과 협업해 작품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두 작가가 활동하던 1960년대는 우주에 대한 뜨거운 관심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처음으로 우주에 간 지구인, 지구라는 작은 점 하나로 묶인 세계, 미지의 공간을 향한 호기심과 상상력은 두 작가의 창작 활동에 동력으로 작용했다. 전시 제목 '태양을 만나다(To meet the sun)'는 인류 최초로 달에 간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Yuri Gagarin)을 기리는 아드난의 시에서 따 온 구절이다. 우주로까지 확장된 상상력은 아드난의 글쓰기에 영감을 주었고, 회화와 태피스트리에서는 천체 형상이 점차 두드러져 나타났다. 태양과 달을 연상시키는 원형과 공중에 떠 있는 사각형, 응축된 색면과 간결한 지평선의 띠 등이 반복해 등장한다.
마치 상공에서 너른 들판을 내려다본 듯 선과 색으로 구성된 이성자 작가의 작품은 아드난의 태피스트리 작업에서 나타나는 직조감과 유사한 분위기를 풍기며 조응한다. 수잔 메이 디렉터는 “붓 한 놀림 한 놀림을 쌓아 올려 작업하는 이성자 작가와 한 땀 한 땀 집중해 태피스트리를 만들던 아드난 작가의 행위가 궤를 같이 한다”며 “작품 세계를 통해 두 여성 모두 인간과 세상을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호기심 많은 아티스트였다는 점도 유추해볼 수 있다”고 전했다.
5개 국어를 하지만 모국어는 하지 못한 시인, 세 아들을 두고 떠나야만 살 수 있었던 화가. 세상이 아무리 그들을 절박한 상황으로 밀어붙여도 더 큰 세상을 향한 애정을 잃지 않았던 두 사람. 주저앉기보다는 고개를 들어 우주와 별을 바라보며 걸어 나간 여성들이 남긴 대화는 보는 이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다. 전시는 3월 7일까지.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