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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지 대신 남은 잉크와 흑연…지우니 드러난 예술의 본질
페로탕 서울 새해 첫 전시
故최병소 작가 ‘Untitled’
3월 7일까지
2015년작부터 2024년작까지
작가 생애 마지막 10여 년
작품 세계 집중 조망
故최병소 작가 ‘Untitled’
3월 7일까지
2015년작부터 2024년작까지
작가 생애 마지막 10여 년
작품 세계 집중 조망
붓과 캔버스를 뒤로하고, 작가의 시선은 종이와 펜에 머물렀다. 여기에는 대구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유년 시절의 기억이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다. 제지 기술이 발달한 지금, 글씨를 쓰다 종이가 찢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1950년대 작가의 학창 시절에는 우리가 흔히 ‘갱지’라 부르는 누런 빛의 거친 종이를 사용해 교과서를 만들었다. 얇고 연약한 이 종이는 필기만으로도 너덜너덜해지거나 찢어지곤 했다. 작가는 이를 모티프로 신문지나 잡지 위에 연필과 볼펜으로 반복적으로 선을 긋는 작업을 시작한다. 1970년 중반부터 선보인 ‘신문 지우기 연작’이다.
작가는 작업 초창기 볼펜이나 연필만 단독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작품 세계가 자리 잡으면서부터 작가는 늘 볼펜과 연필을 함께 사용했다. 볼펜은 꼭 모나미 153을 고수했다. 작업에 열중하는 기간에는 일주일에 100개 정도의 볼펜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작가의 이러한 시도는 경북 상주 출신 한국 실험미술의 선두자 김구림 작가로부터 받은 영향도 적지 않다. 김 작가의 파격적인 행보는 최병소 작가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마른걸레로 바닥을 닦은 자리를 작품화해 비어 있는 전시장 한 켠에 붙은 김 작가의 이름을 본 최 작가는 그리지 않아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전까지 자연의 현상을 주제로 캔버스와 물감으로 표현하던 작품을 두고 일상의 재료로 눈을 돌린 것도 이 무렵이다. ‘그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린 작가가 한국 현대미술사에 남긴 새로운 궤적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외에도 신문의 상단 부분은 남기고 지워낸 작품과, 동그라미 등의 모양을 남긴 작업, 뉴욕타임즈나 타임지, 라이프지 등에서 오려낸 페이지 위에 작업한 작품 등이 소개된다. 전시는 3월 7일까지.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