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당시 뉴요커는 독자에게 재미를 주는 목적으로 발행됐다. 발행인 해럴드 로스가 친구들과 게임을 하던 중 이 재미를 잡지로 옮겨 재현할 수 있다면 생각한 것이 시초였다. 발행 기조에 변화가 생긴 건 미국의 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였다. 미국 언론은 미국 정부의 암묵적인 규제 속에 승전 소식만 전할 뿐 그 외에는 함구했다.
이에 기자 존 허시는 히로시마 내부의 상황을 전달하고자 현지에서 한 달간 머물며 일본인들이 원폭 투하로 겪은 피해 사례를 무려 3만 단어로 기사화했다. 뉴요커는 잡지 전체를 이 기사에 할애하며 파격적인 구성을 선보였다.
잡지는 발행과 함께 매진되었고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주변에 돌리겠다며 1천 부를 따로 주문하는 등, 존 허시의 히로시마 기사가 미친 파장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뉴요커는 일약 전국지의 위상을 획득하게 됐다.
실제 사실을 소설로 서술한 기사는 ‘논픽션 소설‘의 창조를 불렀다. 다만 앞뒤가 딱 떨어지는 구성과 작가와 범죄자 간의 특별한 관계 묘사는 기사의 신뢰, 그러니까 팩트 부분에 의문을 일으켰고, 작가는 글의 성격에 맞춰 일부 사실을 조작했다고 실토했다.
뼈아픈 실책을 통감한 뉴요커는 이후 팩트 체크를 강화하며 문제의 재발을 방지하려 했고, 현재는 29명의 팩트 체커를 상근으로 고용하여 집요할 정도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뉴요커의 ‘가치’를 이어오고 있다. 대중이 알아야 할 정보라고 판단하면 깊이 있게 조사하고 디테일하게 전달하되 정확성을 기본 전제로 장착하는 언론의 윤리라는 가치. 실제로 뉴요커의 팩트 체커는 기자와 취재원에게서 지나치다 싶을 만큼 사실관계를 전화로 묻고, 다시 걸어 묻고, 따져 물어 정정 기사가 실리지 않도록 하는 데 근무 시간의 전부를 할애한다.
나 또한 잡지 기자 출신으로, 팩트 체크는 기사를 다루는 글쓴이의 생명이라는 걸 절감하면서도 한편으로 쉽지 않다는 걸 체감한 까닭에 <뉴요커, 100년의 이야기>를 보는 내내 부러움과 좌절감의 감정이 좌우 양극단에서 줄다리기하듯 서로를 끌어당겼다. 특히나 부정확한 정보가 난무하는 지금에 잡지란 무엇인가, 언론이란 무엇인가, 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팩트 체크는 돈이 드는 일이다. 뉴요커의 편집장 데이비드 렘닉은 29명의 팩트 체커가 ‘뉴욕타임스’에 비하면 적은 숫자라고 엄살(?)을 피우던데, 한국 잡지와 언론 현실에서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가 다 뭐야 손에 꼽을 정도의 매체만 제외하면 시장에서 살아남는 수준의 운영이 평균값인 상황에서 뉴요커의 100년은 당연한 결과로 느껴진다.
뉴요커처럼 기사를 쓰고 검증한다면 잡지는 한물간 매체도, 끝장난 구시대의 산물도 아니다. <뉴요커: 100년의 이야기>는 불확실한 정보가 뉴스의 탈을 쓰고 언론 생태계를 교란하는 상황에서 팩트를 지켜내는 일, 그것이 잡지가, 언론이 살아남는 길이면서 앞으로 다가올 100년을 이어갈 수 있는 정도라는 생각을 절실하게 들게 한다. 그리고 문화계 뉴스와 칼럼과 평론을 최전선에서 제공하고 있는 ‘아르떼’가 100년 이상 종이 잡지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유지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