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보기 드물게 4부작인 드라마 <죽음은 섬광처럼>은 몇 가지 점에서 ‘뒤집어서 봐야 하는’ 작품이다. 웬일로 짧은 4부작일까. 제목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왜 이런 얘기를 했을까. 실제로 하고 싶었던 얘기는 무엇일까.
4부작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루는 인물, 다루는 소재가 워낙 짧은 기간에 일어난 사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8부, 10부, 12부로 줄줄 늘려서 잡을 만한 얘기는 아니다. 간결하게 정리하고 가야 할 내용이다. 제작진이 4부작으로 결정한 건 매우 현명한 판단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1880년 미국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된 제임스 가필드에 대한 이야기이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4부를 보고 있으면 이 작품을 만든 맷 로스가 사실은 뭘 얘기하려는지 그 의도가 분명해 보인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연출이 오락가락했다는 얘기이다. 잘못 만들었다는 것이다.
제목인 <죽음은 섬광처럼> 곧 ‘Death by Lightning’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에밀리 디킨슨의 시 『Because I could not stop for Death』에서 모티프를 얻었을 수도 있겠다. 이 시에는 물론 ‘죽음은 섬광처럼’의 시구가 나오지는 않는다. 다만 디킨슨의 시나 맷 로스의 이 4부작 드라마나 모두 1800년대를 살았거나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그 연관성을 추측해 본다.
<죽음은 섬광처럼>이 초반부에 보여주는 공화당 전당대회는 바로 그 과정을 그린 것이다. 급진 공화주의자였으나 온건파로 기울던, 그리하여 중도 보수 성향을 지닌 가필드가 공화당을 통합할 만한 대안으로 갑작스럽게 떠오른다. 36번의 투표 끝에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다. 영화는 역사책이 아니다. 영화가 공화당 전당대회 이면의 여러 정치적 배경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가필드가 매우 드라마틱한 경로로 대통령이 됐고 그래서인지 추후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을 주는 것으로 설정의 합리성 정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죽음은 섬광처럼>의 1부는 나름 흥미진진하다. 미국 현대 의회주의의 시초가 어떠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풀 쇼트로 비추는 공화당 전당대회 장면은 역사적 고증(의상, 스타일, 각종 소품의 배치)을 넘어서서 그 안에서 떠들고 규탄하고 주장해대는 당시 정치인들의 모습을 일군의 엑스트라 연기자의 모브씬으로 그럴듯하게 표현해낸다. 미국, 할리우드는 특히 이런 장면을 잘 찍는데 한 프레임 안에 수십 수백 명의 엑스트라를 배치하고 카메라 렌즈는 맨 앞의 주연급 배우들에게 포커스를 맞추되 저 뒤에 있는 사람들까지 연기를 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런 전당대회를 전체 화면으로 생생하게 찍어 내는 건 아직 할리우드의 솜씨를 따라갈 자들이 없다.
4부작 <죽음은 섬광처럼>은 대통령 가필드가 살해되기까지의 에피소드를 착착 쌓아 나가고 척척 진행해 나간다. 이야기의 축조 방식과 속도, 리듬감이 정통이다. 착실하게 연출을 연마한 솜씨다. 결국 가필드의 짧았던 재임, 미완성의 급진주의자의 삶을 통해 지금의 미국 사회를 은유하고 싶어 했음을 알게 된다. 정치가 돈(뉴욕 세관 수입)에 좌지우지되고 가짜 생각(가짜 뉴스)에 빠진 미치광이가 날뛰면 사회는 결국 퇴보하게 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죽음은 섬광처럼>은 결국 미국 현대 정치를 위한 생생한 역사 교과서 같은 작품이다. 그런데 교과서와 달리 매우 재미있다. 연기들을 너무나 잘한다. 마이클 섀넌은 인생 연기를 선보이고 영부인 역의 베티 길핀(세상에, 2020년 작 <헌트>에서 그 살벌한 킬러 역 여배우)은 모두의 기억에 인장을 찍는 연기를 해낸다. 부통령 아서 체이스 역의 닉 오퍼먼이 기른 그 구레나룻이란.
드라마 <죽음은 섬광처럼>은 미국 현대 정치의 그늘에 얼마나 위대한 모성의 여성성이 자리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바로 그 점이 좋다. 여성성의 복원은, 곧 여성성의 전면 배치는 현대사회를 고쳐가는 신약이 될 수 있다. 가필드가 죽어가는 2개월여의 투병 과정에서 보이는 두 연인의 밀어가 일품이다. 이런 식의 신파도 할리우드가 잘 찍는다. <죽음은 섬광처럼>은 역사 속에서 잊힌 가필드란 인물로 시작해 역사의 유적지에서 새로 발굴된 루크레시아로 끝낸다. 함의하는 바가 크다. 정주행의 시청을 권하는 바이다. 깨달음은 늘, 섬광처럼 오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