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드디어 손에 들었다. 문학 독자를 자처하면서도 방대한 분량과 만연체 문장에 선뜻 시작하지 못했던 책을, 비로소 마음먹고 펼친 것이다. 아르떼 칼럼의 코너명이 ‘시간의 기록’인 만큼 언젠가 꼭 읽고 싶은 소설이었다. 단단히 먹은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약해진다는 걸 알기에 독서 모임을 꾸렸다. 일 년 동안 읽는 장거리 여정이다. 새로운 일을 도모하기 좋은 1월, 함께 읽으면 끝까지 읽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시작했다.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 /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 /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오랜 시간,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왔다.” 소설의 첫 문장이다. 침대에 누워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꿈결처럼 흐르는 화자의 회상이 펼쳐진다. ‘침대에서 뒤척였다’고 간단히 쓸 수 있는 장면이 여러 페이지에 걸쳐 상세하게 묘사된다.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회상을 따라가다 자칫 놓칠 수 있다. 시작부터 독자를 시험한다. 프루스트의 원고를 보고 출간하겠다고 나서는 출판사는 없었다. “자리에 누워 어떤 방식으로 이리 뒤치고 저리 뒤치는지를 묘사하는데 30페이지를 소모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결국 프루스트는 자비로 출간한다. 1913년에 첫 편 『스완네 집 쪽으로』가 세상에 나온다. 앞서 원고를 읽고 출간을 거절했던 앙드레 지드가 자신의 판단을 수정하고 프루스트에게 사과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1919년에 발표된 두 번째 편 『꽃피는 처녀들의 그늘에서』가 공쿠르상을 수상한다. 프루스트가 작품 집필에 착수한 지 10년 만이다. 그러나 그는 작품의 완간을 보지 못하고 1922년 51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프루스트 사후에야 일곱 편으로 완간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훗날 ‘20세기 최고, 최대의 책’으로 현대 문학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1913년 자비로 출간된 초판 이후, 1917년 앙드레 지드가 활동하던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재출간된 『스완네 집 쪽으로』. /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1913년 자비로 출간된 초판 이후, 1917년 앙드레 지드가 활동하던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재출간된 『스완네 집 쪽으로』. /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20세기 대표 ‘시간 소설’이다.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을 기록한다는 불가능한 도전을 프루스트가 시도한 것 아닐까. 몸은 침대 위에 있어도 우리의 의식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유영한다. 마치 떠도는 의식의 흐름을 낱낱이 기록하듯 어린 시절의 기억들과 엄마의 밤 키스를 기다리는 어린 화자의 요동치는 감정의 결이 생생하고도 섬세하게 묘사된다. 독자는 엄마를 향한 아들의 터질듯한 애정을 고스란히 느낀다. 불과 몇 초에 불과할 키스가 화자에게는 마치 삶의 결정적인 기쁨인 듯 그려진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프루스트의 자전적 고백은 아니지만, 엄마와의 일화에는 프루스트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프루스트에게 엄마는 지극한 사랑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명망 높은 의사 아버지와 문학적 소양이 높은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프루스트는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병약했던 프루스트를 극진히 보살폈던 엄마. 그런 엄마가 세상을 떠나자 프루스트는 “나의 삶은 이제 유일한 목적, 유일한 사랑, 유일한 위안을 잃고 말았다”며 정신적 타격을 받는다. 당시 그의 나이 서른넷. 엄마의 죽음 이후 프랑스 사교계 한량 생활을 청산하고 프루스트는 작품 집필에 몰두한다. 네 벽을 코르크로 덧댄 방 안에서 칩거하면서 자신의 인생 마지막을 작품 쓰기에 바친다. 그의 글쓰기는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한 작업이 아니었을까?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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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의 독자가 되려면 먼저 그의 만연체에 익숙해져야 한다. 여러 번 붓칠한 듯 정교하게 세공된 문장을 만난다. “독서가 내게 환기한 추억 하나하나의 도정을 나와 함께 걷는 동안 독자들은 어쩌면 구불구불한 꽃길을 걷는 사람처럼 발걸음을 늦추면서 자신들만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 프루스트가 『독서에 관하여』에서 밝힌 생각이다. 프루스트가 말하는 독서는 목적 지향적이지 않다. 목적지에 빠르게 도달하는 것이 아닌 구불구불한 꽃길에 놓인 꽃에 하나하나 눈 맞추며 느긋하게 걷는 것이다. 떠오르는 추억과 함께. 훗날 독서를 돌이켜 볼 때 추억하는 것은 그 책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때 받은 느낌과 이미지, 그리고 책을 읽었던 나 자신이므로. 독서의 본질은 내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프루스트의 소설은 매끈한 고속도로가 아닌 구불구불한 길이다. 읽으면서 대체 여기는 어딘지, 시간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프루스트가 제안하는 독서는 속도를 지향하는 독서와는 정확히 대치된다. AI의 발전으로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시대, AI는 사용자의 요구에 맞춰 독서 전 배경지식까지 순식간에 정리하고 어떤 질문에도 척척 답한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자료를 찾아 읽고 정리하는 등 10시간 걸릴 일이 1분 안에 해결되니, 마치 시간을 번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AI는 효율을 극대화하고 시간을 압축한다. 시간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독자를 돕는다. AI 효율에 익숙해질수록, 프루스트의 긴 문장을 읽는 일이 점점 힘들어진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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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왜 읽는가. AI로 독서를 대체하면 추억을 음미할 시간을 빼앗긴다. 추억을 음미한다는 것은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본다는 것. 과거를 재료로 작품을 완성한 프루스트에게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올 미래였다. 우리의 마음은 매끈하기보다 구불구불한 길에 가깝다. 사랑, 질투, 불안, 기대, 실망. 변화무쌍한 감정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한다.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감정과 느낌. 그것을 포착하는 세밀한 시선이 프루스트의 책에 있다. 내가 이름 붙이지 못했던 감정과 느낌을 언어로 읽을 때의 쾌감은 AI가 전할 수 없다.

한해를 돌아볼 때면 “시간이 빠르다”는 탄식이 어김없이 따라온다. 시간을 최대한 음미할 수 있다면 내가 무엇을 느끼고 감각하는지, 느끼는 만큼 시간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넌지시 말한다. 시간을 사는 존재인 인간은 감각을 통해 기억하고, 그 기억 속에서 비로소 자신을 다시 만난다고. 독자는 그의 긴 문장에 머물며 추억을 떠올린다. 내가 잃어버렸던 시간을. 프루스트의 구불구불한 문장을 읽으며 떠오를 기억들이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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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