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스 위시먼(1912~2002)은 세계 최초의 여성 성인 영화감독이다. 성인 영화라고는 하지만 포르노 영화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위시먼은 1970년대에 포르노 영화산업이 탄생하기 이전 ‘누디 큐티스’(nudie cuties)’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던 나체 영화들로 연출 커리어를 시작했다. 누디 큐티스는 누드가 등장하지만 성행위는 등장하지 않는, ‘건전한’ 성인 영화의 한 범주였다. 이른바 ‘하드코어’ 성인 영화들이 제작되기 이전, 일련의 영화들은 누드의 남녀가 비치 발리볼을 하거나 누드촌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실제 히피들이 그랬던 것처럼) 장면들이 담긴 성인 영화로 소비되었던 것이다. 도리스 위시먼이 언니에게 10,000달러를 빌려서 만든 데뷔작 <태양의 은신처>(1958년 제작, 1961년 개봉)는 나체주의자들의 생활을 담은 그녀의 첫 누디 큐티스였다.
누드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를 배경으로 한 <태양의 은신처>는 대성공이었다. 그녀는 흥행에 힘입어 1958년부터 1964년까지 무려 여덟 개의 누드 영화를 만들었다. 이제 위시먼은 명실상부, 섹스플로이테이션(성 착취 영화: 성적인 수위가 높은 B, C급 영화) 산업의 탑 티어를 차지하는 유일한 여성 감독이 된 것이다. 위시먼은 누디 큐티스로 나름의 유명세를 얻은 이후 섹스플로이테이션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하드코어 영화들, 그리고 퀴어 다큐멘터리와 에로틱 호러까지 다양한 성인 영화들을 연출·제작하며 장르적 확장을 시도했다.
도리스 위시먼의 데뷔작 '태양의 은신처'. / 사진 출처. 프라임 비디오 홈페이지
위시먼의 성인 영화에는 눈에 띄는, 어쩌면 괴상한 특징이 있었다. 엄연히 성인 영화산업에서 (주로) 남성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인·섹스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녀의 영화에는 에로티시즘이 존재하지 않았다. 캐릭터의 누드는 성행위를 위한 누드가 아닌 샤워 장면이나 옷을 갈아입는 등 지극히 일상의 단면들이거나, 극 중 성행위가 등장한다 해도 그것은 암시만 될 뿐 직접적인 성묘사는 생략되거나 전혀 무관한 물체의 클로즈업으로 대체되었다.
예컨대 위시먼의 대표작 <더블 에이전트 73>의 주인공 ‘제인’은 무려 73인치의 가슴을 가진 여성 스파이다 (제인 역은 스트립댄서로 활약하던 ‘체스티 모건’이 맡았다). 범상치 않은 신체를 가진 ‘체스티 모건’이라는 인물, 그리고 그녀의 캐릭터, 제인은 물론 이 영화가 속해 있는 산업, 그리고 관객층의 구미를 위해 선택되고 만들어진 것이지만 위시먼은 모건의 가슴을 일종의 ‘티저’로만 사용하고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는 선택을 한다. 극 중에서 비밀 요원 제인은 맨 가슴을 드러내고 범인들을 유혹한 후 침대로 끌어들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서 섹스신은 생략되고, 예측 가능한 에로티시즘은 산산이 분해된다. 시퀀스 전체의 생략이 아니라면 섹스 신은 화분이나 그림 같은 주변 물체의 클로즈업으로 대체되었다. 최악의 경우(?), 상대가 독약을 먹었다거나, 술에 취해 있다는 설정으로 시퀀스 전체가 뿌옇게 처리되기도 했다.
위시먼의 이러한 수법은 명백히 의도적인 것이고, 선택된 것이다. 그녀는 남성 관객들의 음탕한 기대를 부수는 것을 즐겼다. 혹은 반대로 그녀 자체가 동시대 남성 감독들이 만든 (성인) 영화 속 뻔하고 흔한 섹스신에 이력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더블 에이전트 73' 포스터. /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영화 '더블 에이전트 73' 주연배우 체스티 모건. / 필자 제공
위시먼의 경향은 성인 영화의 센터 피스라고도 할 수 있는 여성의 신체/나체를 재현하는 방식에서도 비슷하게 발견된다. 무엇보다 위시먼의 여성 주인공들은 미녀도, 멋진 몸을 가진 인물도 아니었다. 영화들에 등장하는 여배우, 혹은 여성 캐릭터의 몸은 그저 평범한 (다소 풍만한) 몸집에 주름이 적당히 잡힌 현실의 몸이었다. ‘현실의 몸’은 조명이나 편집으로 미화되지 않은 채 원생의 그것대로 등장했다. 따라서 그녀의 영화는 극사실주의적인 육체가 등장하는 전위 영화로도 접근이 가능하다. 현시대에 와서 위시먼이 아방가르드 혹은 ‘전복의 영화(Cinema of Transgression)’ 학자들에 의해 재발견 및 재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바로 그런 특징들 때문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위시먼은 영화사에서 가장 역설적인 행보를 실천한 인물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성 영화 산업에 뛰어들긴 했으나 성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선언을 던진 인물. 그리고 가장 활동 수명이 짧은 산업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인물. 그녀는 사망 전까지 총 31편의 (섹스플로이테이션) 장편 영화를 제작하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화를 연출한 여성 감독으로 기록되었다. 소수에서 아이콘으로, 아이콘에서 전통으로 등극한 위시먼의 영화들은 산업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럼에도 소신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 생존의 기록물이자 여성 작가주의 영화에서 가장 흥미롭고 전복적인 레퍼런스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