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에게 돌은 무척 흔하면서도 영험한 존재다. 굳이 돌로 만든 탑과 미륵불 같은 지정된 문화재를 찾지 않아도 대한민국은 전국 어디나 오랜 돌 조각, 돌탑, 돌로 만든 물건이 흔했다. 어린 시절, 한옥 툇마루 기둥 아래 주초와 신발 벗어둔 댓돌부터 어머니 돌리던 맷돌과 다듬잇돌 등이 돌을 재료로 만든 흔한 일상 사물이다.
한국 전통건축 공법인 ‘덤벙 주초(株礎)’ / 제공. 정명택
대문을 나서면 마을 어귀 서낭당, 일주문 근처에 세워 두었던 장승과 돌탑 그 주위를 친구들과 맴돌며 놀았던 유년의 추억이 있다. 오랜 선돌, 탑, 표지석, 미륵불을 놀이터로, 터전으로 살았던 그리운 경험이 있는 작가들은 자신이 오롯이 몸으로 껴안고 손끝으로 기억하고 있던 돌의 질감, 형태를 되살려 작가 자신 그리고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구현하려는 경향이 짙다. 인간과 자연이라는 소재를 한결같이 묵직한 돌의 무게, 존재감에 투영하면서 한국인의 소박함과 무던함, 그리고 우리만이 표현할 수 있는 조각의 매력을 자기만의 표현 그리고 동시대 미술로 인종해 보려 노력하는 것이다.
정명택(1971- )은 한국 고건축, 특히 초석, 기둥, 마루를 재해석해 아트 퍼니처로 제작하고 있다. 가구와 분리할 수 없는 관계를 맺는 ‘공간’이라는 주제는 정명택 작가에게 오랜 연구 대상이다. 사물이 존재하는 장소인 ‘데’ 그리고 그 장소에서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 ‘둠(두다)’에 주목하며 조각과 가구를 위시한 공예 사물 그리고 공간 사이의 접점과 확장성을 찾는다.
정명택 개인전 <덤벙 주초 : 사물의 궤도>(북촌 지우헌, 2022)에서 함께 전시한 사진 (경주 황룡사지) / 제공. 홍지수
정명택은 개인전 <무위재고: 은일한 사물>(페이지갤러리, 2021)과 <덤벙 주초: 사물의 궤도>(북촌 지우헌, 2022)에서 덤벙 주초에 착안해 마치 조각을 보는 듯한 아트 퍼니처를 제작했다. ‘덤벙 주초(株礎)’는 생긴 그대로 자연석을 건물 기둥 밑에 반석으로 괴고 기둥을 올리는 우리 전통 건축 공법이다. 가구와 같이 전시한 16점의 사진은 2013 여름 황룡사지를 촬영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 광활한 벌판에 덩그러니 뚝뚝 자리한 석물 사이를 홀로 거닐며 작가가 느꼈을 먹먹한 감정이 느껴진다. 돌을 스치고 간 긴 시간이 거기 머물러 있다. 단단한 돌이 오랫동안 마모되고 닳을 동안 세월의 흔적을 눈에 담고 쓰다듬으며 지금 유한한 내가 감지하는 초월성은 마치 세월의 풍상을 겪은 바위나 산을 마주하는 듯한 선험적, 명상적 경험과 유사한, 즉, 가장 근원적이고 정밀(靜謐)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자연 그대로의 돌에서 인위적인 조각으로, 다시 자연의 풍파로 깎여나간 주춧돌은 예술과 일상 사이에 있다. 또한 작가가 도달하고자 하는 한국미술의 특징인 ‘무위(無爲), 무심(無心), 무형(無刑)’의 원형이다. 초석으로 쓰인 덤벙 주초의 납작하면서도 내밀한 볼륨감, 돌가루를 뭉쳐놓은 듯한 소박한 재질감도 매력적이다. 그러나 미술 재료로서 돌에는 무엇보다 최소한의 표현으로 개입해 최대의 효과를 내는 한국인의 원형적 형상이 있다. 한국인은 돌을 의도적으로 다듬지 않고 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정질해 형상을 만들었다. 건물의 기초인 주춧돌뿐 아니라 딱딱한 돌을 쪼아 만든 소박하고 단순한 동자, 동물, 불두의 얼굴이 그러하고, 돌을 네모반듯하고 평평하게 다듬되 자연스러운 곡선을 잃지 않은 다듬이 돌과 댓돌의 형태가 그러하다. 극도로 단순화하고 최소화한 표현 그러나 흙도 나무도 아닌 돌만이 지닌 성질, 물성, 미감 그리고 돌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과의 친연성이야말로 정명택이 자신이 가구에 끌고 가고 잇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한국 고건축의 목재 기둥이 지닌 묵직한 존재감, 자연스러움에 주목해 만든 정명택의 <덤벙 주초>(2023), 브론즈, 스테인리스 스틸, 리벳, 가변설치 / 제공. 정명택
한국 고건축에서 얻은 영감을 새로운 형태와 미감으로 재해석한 정명택의 <덤벙 주초>(2023), 브론즈, 스테인리스 스틸, 리벳, 자연석 (2022 로에베공예상 수상작 전시 풍경) / 제공. 홍지수
그러나 그는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다양한 재료로 바꾼다. 사람의 몸이 직접 닿고 몸을 오래 기대는 ‘의자’는 조형성보다도 중한 것이 기능성이다. 간편한 공간 내 이동성도 고려할 요소다. 그는 건물을 받치는 주춧돌의 기능을 가구의 기능으로 연결해 재해석하고, 브론즈 주조 기법을 사용해 돌의 묵직한 존재론적 형태를 다른 물질 언어로 재현한다. 브론즈 주조 과정에서 생기는 용접 자국이나 작은 기공 등도 그대로 남겨둔다. 브론즈 주조 과정의 ‘흔적’은, 돌을 스치고 긁고 간 비바람이 남긴 흔적이 ‘돌다움’을 드러내는 흔적과 마찬가지로 ‘브론즈다움’이라는 순수함을 최대한 살리는 판단이다. 동시에 석공들이 돌에 최소한의 흔적, 이미지를 남기기 위해 노력한 일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돌이 가공된 돌이 되었다가 다시 돌(자연스러움)로 돌아가는 것처럼 자신이 만든 가구-스툴(stool)과 벤치도 다시 어느 날엔가 자연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돌아가고 하나 되기를 바라며 하는 미학적 선택이기도 하다.
자연에 최소한의 의식적인 간여와 조작을 하되 조형물이자 공간에 놓일 공예 사물로서 기능을 충족시키는 일. 그러면서 옛 한옥이나 박물관에 소장된 석조 조각상들이 가지고 있는 일상적인 생활감정을 자신이 만든 요즘 사물에도 깃들게 하는 일이 요즘 한국 아트 퍼니처 작가가 궁극적으로 하려는 것이 아닐까.
정명택 <마루(Maru)>(2021), 한옥마루(고재), 스테인리스 스틸, 루버, 스크류, 가변 설치 / 제공. 홍지수
홍지수 공예 평론가•미술학 박사•CraftMIX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