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을 꽉 채운 관객들의 모습. / 사진 제공. 류희윤 바이올리니스트
10월 1일 세계 음악의 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아 홀을 꽉 채운 러시아 관객들은 공연이 끝나자 두 명의 한국 음악가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쪽지를 건네는 어르신. / 사진 제공. 류희윤 바이올리니스트
꽃다발을 건네는 관객들 사이에서 한 어르신이 힘들게 앞으로 나와 뮤지션들에게 종이쪽지를 건넸고, 거기엔 공연에 대한 감상문이 시로 정갈하게 적혀있었다.
쪽지에 적힌 시 구절. / 사진 제공. 류희윤 바이올리니스트
“음악가는 본디,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에 스스로를 천사라고 자부할 수 있으며...”
관객이 연주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직접 전하는 모습. 어쩌면 이런 모습이 상트 필하모니아만이 지닌 매력이 아닐까 싶다.
공연 사진. / 사진 제공. 류희윤 바이올리니스트
이날 류희윤 바이올리니스트와 이섬승 피아니스트는 러시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필하모니아 홀에서 듀엣 리사이틀 무대를 장식했다. 이날 공연 프로그램은 브람스, 메시앙, 블로흐, 그리그, 차이콥스키의 곡으로 구성되었다.
류희윤 바이올리니스트. / 사진 제공. 류희윤 바이올리니스트
“(류희윤) 연주 날이 <세계 음악의 날>이라서 그 의미에 걸맞게 프로그램을 구성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무대 자체가 한국과 러시아의 만남인 만큼, 다양한 나라의 음악이 이 시간을 채워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단순히 작품의 나열이 아니라 각 곡이 서로 어우러져 한 무대 안에서 다채로운 문화적 색채가 스며들기를 바랐습니다. 피아니스트와 함께 고민해서 두 달 전쯤 최종적으로 선곡을 마쳤죠.”
공연 포스터. / 사진 제공. 류희윤 바이올리니스트
어린 시절부터 20년 넘게 상트페테르부르크 영재음악원을 거쳐 상트국립음악원 박사과정을 마친 류희윤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있어 이번 음악회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2018년 사라토프 국립음악원 교수로 임용된 후 상트 필하모니아 정규 공연 프로그램을 통해 고향에서 관객들을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커튼콜. / 사진 제공. 류희윤 바이올리니스트
“(류희윤) 이곳은 제 어린 시절의 많은 추억이 쌓인 곳입니다. 필하모니아에서의 첫 연주도 아닌데, 깊은 역사와 권위를 지닌 이곳 관객분들은 직관적이면서도 보수적인 편이라 준비하는 내내 걱정이 앞섰죠.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자 우려와 달리 객석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에너지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연주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신뢰하는 파트너가 함께했던 덕분이기도 했고요.”
필하모니아 스몰 홀에서 리허설 중인 사진. / 사진 제공. 류희윤 바이올리니스트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아 홀의 정식 명칭은 <쇼스타코비치 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믹 필하모니아 홀>로 1,500석 규모의 그랜드 홀과 500석 규모의 스몰 홀로 이루어진, 오랜 역사를 지닌 무대이다. 1802년 이곳에서 전 유럽 최초로 필하모니아협회(음악애호협회)가 결성되어 공연 유치 등 활발한 활동을 했고, 하이든의 천지창조, 베토벤의 장엄미사가 초연된 곳이기도 하며, 리스트, 바그너, 말러, 차이콥스키, 쇼스타코비치 등 유럽과 러시아의 위대한 작곡가들이 처음으로 작품을 선보였던 장소이다. 그랜드 홀에서는 주로 오케스트라 공연 혹은 협연이 이루어지고, 스몰 홀에서는 리사이틀 홀, 독주회 등이 개최된다.
이섬승 피아니스트. / 사진 제공. 류희윤 바이올리니스트
이섬승 피아니스트는 한예종을 졸업, 독일 라이프치히 국립음대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했으며, 현재 국내에서 독주회를 비롯해 활발한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내년 예술의 전당에서는 올해에 이어 <슈만&브람스 시리즈 2> 연주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두 아티스트가 예술의 전당에서 함께했던 첫 무대. / 사진 제공. 류희윤 바이올리니스트
두 아티스트는 약 6년 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첫 무대를 함께한 이후 매년 크고 작은 무대에서 꾸준히 호흡을 맞춰왔다.
리허설 중인 이섬승 피아니스트. / 사진 제공. 류희윤 바이올리니스트
“(이섬승)한국에서의 일상은 너무 빠르게 돌아가다 보니 오롯이 음악에만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내 음악을 어떻게 만들어갈까’보다 ‘지금 해야 할 일들을 어떻게 소화할까’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제 음악을 끝까지 고민하고 관철시키기보다는, 타협하거나 주변 흐름에 순응하게 되는 순간들이 생기곤 합니다.
리허설 중인 사진. / 사진 제공. 류희윤 바이올리니스트
그런데 이번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일주일은 음악에만 완전히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도시의 예술적인 분위기와 차분한 공기가 연습과 공연에 큰 영감을 주었고, 음악적으로도 깊게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희윤님과 함께했던 시간을 통해, ‘이게 바로 음악가로서의 본질적인 순간이구나’라는 감정을 다시 느끼게 해주었죠.
필하모니아 홀을 둘러보는 이섬승 피아니스트. / 사진 제공. 류희윤 바이올리니스트
필하모니아아 홀에 처음 들어섰을 때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압도당했습니다. 이 큰 홀이 매진되었다는 소식에 순간 긴장도 됐죠. 하지만 리히터, 길렐스, 로스트로포비치 같은 대가들이 연주했던 바로 그 무대에 제가 선다는 자체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따뜻한 객석 분위기가 느껴지는 모습들. / 사진 제공. 류희윤 바이올리니스트
“(류희윤) 러시아 관객분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찾아와 주셔서 놀랐습니다. 리허설할 때만 해도 홀의 공기가 차가웠는데, 막상 공연이 시작되니 꽉찬 관객석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시선과 기운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결국 어떤 무대든 그 순간을 나누는 것은 ‘사람’이기에 객석과의 교감이 연주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느꼈습니다. 이번 무대는 그런 의미에서 정말 감사하고, 오래 마음에 남을 벅찬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