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민예원
사진. © 민예원
예술이란 타협하지 않는 것. 그 단단함이 광화문 한복판에서 울려 퍼진다. ‘한국 재즈의 역사’ 속에서 강렬한 연주를 선보인 ‘말로 밴드’다.
사진. © 민예원
사진. © 민예원
1978년, 한국인이 개관한 첫 한국 재즈 클럽인 ‘야누스’. 47년간 신촌, 대학로, 청담동, 서초동, 압구정 등을 거치다 올해 10월 광화문 시대의 막을 열었다.

국내에 재즈 음악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도 전, ‘실컷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마음으로 전 재산을 투자해 야누스를 개장한 고(故) 박성연. 그녀는 한국 재즈 보컬 1세대 뮤지션으로서 수차례 이어진 클럽 이전과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한국의 재즈 신을 굳건히 지켜온 전설적 뮤지션이다. 2018년 건강 악화로 클럽 운영에서 물러났지만, 투병 중에도 야누스 4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에 오를 만큼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남달랐다.

박성연 사후 후배 재즈 보컬리스트인 말로가 사명감을 갖고 운영을 이어오고 있으며, 그녀는 말로 밴드로서 매주 야누스의 정기 공연까지 도맡고 있다. 태초부터 단단한 심지를 지닌 공간답게 그곳을 지키는 안방 주인의 음악은 역시나 옹골참이 남달랐다.
그림. © 민예원
그림. © 민예원
잔잔한 연주로 시작된 무대. 말로의 등장과 함께 무대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보사노바부터 스윙, 블루스까지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신기 어린 보컬과 스캣을 선보이던 말로. 그녀는 무대 위를 날아다니며 다양한 제스쳐와 감정 표현을 통해 음악을 온몸으로 표현해냈다. 5분 남짓한 하나의 곡이 뮤지컬처럼 느껴질 정도로 모든 것이 풍부했다. 또, 그녀의 완전한 몰입이 돋보이는 순간이 남달랐다. 그 자신 스스로가 악기가 되어, 음악만 생각하고 음악과 하나 되어, 스스로가 음악 그 자체가 된 모습이었다.
그림. © 민예원
그림. © 민예원
그림. © 민예원
그림. © 민예원
그림. © 민예원
그림. © 민예원
그림. © 민예원
그림. © 민예원
말로의 강렬한 진두지휘 아래, 연륜이 느껴지는 밴드 멤버 (이명건(피아노), 황이현(기타), 김영후(베이스), 곽지웅(드럼))들의 연주 또한 하나의 큰 물줄기처럼 흘러갔다. 기교를 선보이겠다는 욕심이나 잘해 보이겠단 조급함 없이 여유가 넘치는 솔로가 이어졌다. 각 솔로마다는 기승전결이 완벽히 드러나서 음악적 연주를 넘어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그림. © 민예원
그림. © 민예원
무대 후반부로 갈수록 야누스의 객석은 점점 북적임으로 가득 찼다. 북적임을 음악으로 잠재우려는 듯 말로 밴드의 연주는 더욱 강렬하게 커져갔고, 마지막 블루스 곡에서는 그녀의 강렬한 기세가 터지듯이 분출되었다.

말로의 목소리엔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스스로를 감추거나 부끄러워하거나 가식을 떠는 법이 없이 완전한 솔직함 뿐이었다. 그녀는 무대 위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보였다. 그녀는 자신만의 목소리로 자신의 음악을 단단히 지켜냈다. 마치 내일이 없을 것처럼 자기 자신을 쏟아붓는 영혼의 블루스. 통곡하듯 켜켜이 쌓이는 감정들에, 와인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던 이들까지도 무대 위 음악에 빨려 들어갔다.

그날의 밤, 그날의 야누스에는 네 명의 뮤지션이 아닌 오로지 하나의 음악만이 남아 있었다.
공연 <디바 야누스> 포스터 / 출처. 로그 필름
공연 <디바 야누스> 포스터 / 출처. 로그 필름
말로의 단단한 음악은 그녀가 지켜온 재즈 클럽 야누스의 심지를 닮아 있었다. 오로지 자신만의 음악, 예술을 지키겠다는 철학. 재즈의 불모지에서 첫 번째 재즈 클럽을 차리겠단 무모한 외골수의 길은, 상상도 못 하게 번성한 한국 재즈 신의 시작이자 기둥이 되어주었다.

47년이란 시간 동안 부닥쳐오는 현실적 어려움에 야누스를 포기했더라면, 야누스를 야누스가 아니게 타협했더라면. 야누스, 그리고 더 나아가 한국의 재즈 신은 어느 순간 그 명맥을 달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야누스는 하나의 유산으로서 지켜져 왔고, 단순한 공간을 넘어 예술과 정신을 통해 기나긴 수직선을 이어주는 전설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말로는, 그 전설 속에서, 그 전설을 닮은 아름다운 고집을 노래하고 있다.

대중이 등을 돌리고, 인기 없는 음악으로 외면받던 시절에마저도 스스로에 대한 진솔함을 지켰던 야누스와 박성연. 그녀의 깊은 의지를 잇는 말로의 진심은 앞으로의 한국 재즈계를 더 단단한 음색으로 굳건히 만들 것이다.

민예원 '스튜디오 파도나무' 대표•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