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글렌 혹은 글렌다>에서의 에드 우드 / 출처. IMDb
영화 <글렌 혹은 글렌다>에서의 에드 우드 / 출처. IMDb
에드 우드는 영화사가 숨겨 놓은 일종의 비밀 같은 존재였다. 그는 꼭꼭 숨겨진, 그리고 초라하게 생을 마감한 감독이었지만 팀 버튼, 존 워터스, 롭 좀비 등을 포함한 장르 영화 대가들의 영웅이었다. 뒤늦게 에드 우드의 발자취를 찾아낸 이들은 그의 '거지 같은 영화들 (the worse film ever made)'을 숭배했고, 그의 끈질긴 작가주의에 대해 찬양했다. 팀 버튼의 1994년 작품 <에드 우드>는 감독 에드 우드의 놀랍고도 강렬한 작품 세계, 그리고 할리우드에서의 (미미하지만 독보적인) 그의 위치를 조명하고 헌정한 첫 번째 결과물이었다.
영화 <에드 우드>에서 영화배우 조니 뎁(우측)이 에드 우드 역을 맡아 연기했다. / 사진. © 1994 - Touchstone Pictures, 출처. IMDb
영화 <에드 우드>에서 영화배우 조니 뎁(우측)이 에드 우드 역을 맡아 연기했다. / 사진. © 1994 - Touchstone Pictures, 출처. IMDb
영화 <글렌 혹은 글렌다>에서의 에드 우드(우측) / 출처. IMDb
영화 <글렌 혹은 글렌다>에서의 에드 우드(우측) / 출처. IMDb
에드 우드의 각본, 혹은 영화들은 대부분 사후에 조명이 되었다. 예컨대 우드가 1974년에 쓴 미개봉 스크립트 <I Woke Up Early the Day I Died>는 아리스 일리오풀로스 감독의 연출을 통해 20여년이 지난 1998년에 개봉되었다. 영화는 빌리 제인, 론 펄먼, 그리고 크리스티나 리치를 포함한 90년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대거 참여했다. 에드 우드의 생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호사와 주목이 모두 우드의 죽음 이후에 일어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드는 무엇보다 트렌스베스타이트(여성 옷을 입는 남자)였고 퀴어였다. 그는 여성(들)과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었지만 그의 정체성은 여성에 가까웠거나 여성과 남성 모두가 공존했다. 만약 그가 남성을 사랑하는 게이가 아니었다고 해도 (그의 주장처럼) 적어도 그는 단성애자, 혹은 하나의 젠더로 정의할 수 없는 인물임은 분명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던 1950년대에서는 설명할 수도, 인정될 수도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여성 옷 (특히 앙고라)을 즐겨 입었던 에드 우드 / 출처. IMDb
여성 옷 (특히 앙고라)을 즐겨 입었던 에드 우드 / 출처. IMDb
그의 실제 정체성이 어땠거나 무엇이었든 간에, 우드는 영화에서만큼은 본인의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따라서 그의 첫 영화는 놀랄 것도 없이 트랜스 섹슈얼을 주인공으로 하는 <글렌 혹은 글렌다>(1953, 원제 ‘나는 성을 바꿨다(I changed my sex)')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반쯤 섞어 놓은 <글렌 혹은 글렌다>는 당시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성전환 수술에 성공한 여성, 크리스틴 조겐슨의 실화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야기는 트렌스베스타이트이자 여성을 꿈꾸는 남성 ‘글렌’이 약혼녀와의 결혼을 앞두고 갖는 딜레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글렌을 중심으로 극화된 상황과 실제 뉴스 푸티지나 영상들이 릴레이처럼 병치 되는 이 영화의 형식은 혼란스럽고, 산만하다.

더욱이 <드라큐라>(토드 브라우닝, 1931)를 포함해서 1930년대 유니버설 호러를 상징하는 배우 벨라 루고시의 인트로와 전체 내레이션은 마치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었던 주말 공포극을 연상하게 한다. 다시 말해 <글렌 혹은 글렌다>는 에드 우드의 자의식과 그가 애정해 마지않았던 장르 영화와 그의 상징, 벨라 루고시에 대한 존경, 그리고 퀴어로 할리우드에서 생존해야 했던 아티스트의 불안과 공포가 뒤섞인 형형색색의 ‘선집’ 같은 작품이었던 것이다.

평단과 관객은 작품을 경멸하고 조롱했다. 버라이어티지는 우드의 '값싼 세트, 조악한 이미
지, 그리고 유아적인 강의 수준 (벨라 루고시가 전달하는)'에 대해서 맹렬하게 비판했다. 다
른 평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화는 “10대 아이들이나 좋아할 만한 싸구려 영상”으로 분류되어 그만의 ‘유배’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영화 <글렌 혹은 글렌다>에서의 에드 우드 / 출처. IMDb
영화 <글렌 혹은 글렌다>에서의 에드 우드 / 출처. IMDb
영화가 재평가를 받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에 출판된 책 『골든 터키 어워즈』에서 최악의 감독으로 에드 우드가 선정되면서였다. 독자들은 ‘최악의 감독’이라고 명명된 에드 우드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의 데뷔작이자 역작인 <글렌 혹은 글렌다>가 재발매가 되면서 그의 다른 작품들 역시 조명을 받았다. 이후 그의 작품들은 이제야 전문가들에 의해 진지한 분석과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결국 우드는 미국의 퀴어 문화사, 그리고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재위치 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사에서 에드 우드는 신데렐라 같은 존재다. 우드는 가장 낮은 저변에서 가장 작은 이야기를 하는 1인에 불과했지만 그는 사실상 무도회를 점령할 만한 카리스마와 욕망, 그리고 세계관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저급한 영화’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그가 퀴어 세계의 스케치를 전달하지 않았더라면 현재의 B급 영화, 예컨대 팀 버튼과 존 워터스를 비롯한 마이너 시네마의 철학과 미학 따위는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했을 것이다. 에드 우드는 분명 현시대에서 더 많은 활약을 할 수 있었겠지만, 어쩌면 그의 담대함과 위대함은 세상이 그를 바라봐 주지 않는 데서 기인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세상에서 마땅한 주목을 받지 못하는 모든 존재들이여! 부디 에드 우드의 영화로 봉기하시길!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