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히든페이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히든페이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조여정은 B급 배우이다. 아니다. 이런 표현은 적절치 않다. 본인이 들으면 기분 나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 그보다는 이런 표현이 맞다. 조여정은 A급 스타는 아니다. 아 근데 이것도 좀 심드렁해하겠다. 내가 하려는 말, 정확한 의미는 이런 것이다. 조여정은 B-무비 스타이다. 굳이 얘기하자면, B급 무비와 B-무비의 어감 차이는 크다. 아주 크다. 예컨대 박찬욱 역시 A급 감독이지만 그의 영화를 두고 B-무비 스타일이라는 얘기를 종종 한다. 조여정은 상업영화 배우이고 출연료나 배역 비중 면에서 모두 A급으로 분류되지만 묘하게도 그녀에게서는 B-무비스러운 냄새가 난다.

조여정은 명성과 인기만큼 많은 영화에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가 과거에 나온 영화의 명성은 다소 수상한 데가 있다. 세 편의 영화가 그녀를 스타덤에 올려놓았는데 그게 다 섹스 코드가 강한 영화이거나 그런 배역, 그런 장면을 지닌 작품들이었다. <방자전>(2010)에서는 춘향 역으로 나오지만, 고전적 의미의 성(聖)춘향이 아니라 성(性)춘향의 이미지였다. 한국에서 늘 야한 생각을 많이 하는 인물로 유명한 김대우 감독의 작품이었고 그의 춘향전에서 춘향은 방자와 이몽룡 사이를 오가며 이중 플레이를 벌이는 팜므 파탈일 뿐이었다. 권력과 섹스는 동전의 앞 뒷면이고 그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려는 여인이 고래(古來)를 불문하고 늘 차고 넘친다는 것을 얘기하는 작품이었다. 조여정은 섹시한 춘향이 역에 제격이었다.
영화 <방자전>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방자전>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여정의 ‘섹스 어필’은 김대승 감독의 <후궁 : 제왕의 첩>(2012)에서 최고조로 구현됐다. <후궁 : 제왕의 첩>은 알고 보면 꽤 ‘휘몰아치는’ 내용의 역사극이다. 노비 권유(김민준)와의 사랑. 그를 살리기 위해 그를 고자로 만들고 자신은 후궁으로 간택되는 여인 화연(조여정). 그 여인을 사랑하는 왕의 이복동생 성원대군(김동욱). 이 모든 것을 질투의 눈으로 바라보는 왕의 동생의 친엄마, 곧 대비(박지영). 왕이 죽자, 이들의 관계는 세자 문제로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특히 성원대군과 형수 왕비인 화연, 이들을 내시로 모시게 된 옛 노비 연인 권유의 삼각관계는 치정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복잡한 얘기이다. 그러나 그 복잡한 관계를 한 눈에 들어오게 만드는 것이 바로 섹스이다. 여인은 노비와의 사랑을 잊지 못한다. 그러나 시동생이 자신의 몸을 탐하는 눈길 역시 싫지만은 않다. 몸이 뜨거워진다. 그러나 한동안은 왕의 손길을 거부하지 못했었다. 결국 왕이 죽은 후 자신과 자신의 아들마저 죽이려는 대비의 음모에 빠진다. 후궁은 살기 위해, 무엇보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새롭게 왕이 된 시동생의 옷을 벗기고 스스로의 옷도 거침없이 벗어 재낀다.
영화 <후궁 : 제왕의 첩>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후궁 : 제왕의 첩>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2010년대 초반대에 왜 이렇게 성과 권력을 주제로 한 역사극이 잇따라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명박 정권 말기였고 당시 정권의 허황된 권력 놀음(부패지수가 치솟았었다)에 영화 작가들의 불만이 금기에 대한 도전 의식으로 나타났었던 모양이다. 금기에 대한 도전에 있어서는 성적 표현의 수위를 높이는 것만 한 게 없다. 감독 김대승의 카메라는 이 영화에서 조여정의 육체를 ‘피핑 톰’의 시선으로 곳곳을 훑는다. 이때의 조여정은 최고의 관능미를 과시했다. 조여정은 그런 면에서 정점을 찍었을 나이이고 시기였다.

김대우의 또 다른 영화 <인간중독>에서 조여정은 섹스신의 상당수를 당시 신인이었던 임지연에게 양보한다. 그러나 <방자전>에서 시작돼 <후궁 : 제왕의 첩>과 <인간중독>까지 이어지면서 조여정에게는 과감하고 파격적인 여배우의 이미지가 따라붙었다. 그 절정이 기이하게도 봉준호의 <기생충>이다. <기생충>의 조여정 하면 대개 다 이선균과 소파에서 벌였던 ‘소파 섹스신’을 얘기할 것이다. 이선균에게 요구하는, 그의 손짓이 향하게 했던 조여정의 신체 부위를 상상할 것이다. 그러나 <기생충>에서 조여정이 ‘야했던’ 진짜 이유는 ‘사모님’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기생충>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부유한 사모님은 늘 누군가에게 관음의 대상이다. 그런 시선의 주체는 그 집 운전기사였던 송강호일 수도 있고 그 둘을 바라보는 관객일 수도 있다. 조여정은 그런 강탈의 시선의 대상이 되는 역할을 가장 잘 이해하고 가장 잘 표현하는 배우이다. 그건 뛰어난 연기 혼이 없으면 제대로 해내지 못하거나, 거부하거나, 까탈스럽게 굴기 마련인 배역이다. 그런 면에서 매우 놀라운 연기자가 바로 조여정이다. 아마도 조여정은, 이탈리아 리나 베르트뮬러가 1974년에 만든 <귀부인과 승무원(영어 제목 ‘스웹트 어웨이’로 가이 리치가 마돈나와 살 때인 2002년에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한국 비디오 출시 제목은 ‘무인도의 열정’이었다)>을 한국에서 만든다면 귀부인인 라파엘로 역으로 최적의 배우가 될 것이다.

섹스를 무기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조여정은 경기도 분당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중상(中上)층 집안의 자녀였고 동국대 영화과에서 유현목의 제자였던 만큼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성장 환경을 지녔다. 그 점이 더 놀랍다. 조여정은 최근 들어 섹스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위치에서 그 희생자가 되는 배역으로 다소 변신을 꾀하고 있는 듯 느껴진다. 지난해 나왔던, 콜롬비아 영화 리메이크작 <히든페이스>에서 조여정은 밀실에 갇힌 채 연인의 뜨거운 애정행각을 눈뜨고 바라만 봐야 하는 역할로 나온다. 물론 나중에는 그 입장이 뒤바뀌긴 한다. 복수 애정극이 펼쳐진다.
영화 <히든페이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히든페이스>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예상보다 훨씬 관객을 모아 온 <좀비딸>에서 조여정은 다른 이미지를 선보인다. 튼튼하고 씩씩한 여자 좀비 사냥꾼으로 나온다.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온 옛사랑의 딸이 좀비가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의 주역으로 활약한다. 앳된 얼굴에 맞는, 귀여운 배역이다. 이게 어쩌면 원래의 조여정에게 맞는 캐릭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곧 공개될 소니 픽처스의 한국 제작 영화 <살인자 리포트>는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이다. 연쇄살인마를 인터뷰하게 되는 여기자 이야기다. 마치 한니발 렉터를 인터뷰하는 클라리스 스탈링의 이야기와 같다. 아니, 다르다. 아주 다르다. 훨씬 댄디하다. 호텔 스위트 룸에서 의사 살인자와 마주 앉은 모던한 여기자의 모습이다. 입술은 짙게 발랐고 머리는 숏커트 단발이다. 바지와 블라우스로 현대 여성의 완벽한 이미지를 연기한다. 조여정이 몸의 연기만이 아니라 심리의 내밀한 부분을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는 여자 연기자라는 것을 스스럼없이 보여준다, 고 한다. 기대된다.
영화 <살인자 리포트>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살인자 리포트>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조여정은 B-무비 스타이다. 모든 영화는 B-무비에서 비롯된다. 미국의 평론가 출신 감독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1976년 영화 <서푼짜리 극장>(Nickelodeon)처럼 모든 영화는 서푼의 가치에서 시작하며 결국 서푼의 가치를 지향해야 막대한 가치(의미)를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조여정은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서푼짜리’ 배우이다. 그 놀라운 가치를 선보일 것이다. 아직 젊다. 81년생이다. 40대 때 가장 매력적이었던 킴 베이싱어처럼 될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의 킴 베이싱어가 될 것이다. 이건 극찬이다. 이건 좀 B-무비스러운 여배우 열전의 글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