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킹 오브 킹스'의 한 장면. /모팩스튜디오 제공
영화 '킹 오브 킹스'의 한 장면. /모팩스튜디오 제공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가 한국 극장가에 상륙했다. 국내에서 제작했지만 미국에서 먼저 개봉해 예기치 못한 흥행 돌풍을 일으킨 뒤 금의환향한 독특한 작품이다. 국내 개봉과 동시에 예매율 1위에 오르면서 얼어붙은 극장가에 훈풍을 불어넣을지 관심이 쏠린다. 영화계에선 위기의 극장 애니메이션 시장에 활로를 제시할 ‘게임 체인저’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내놓는다.

16일 영화진흥위원회 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날 개봉한 ‘킹 오브 킹스’는 18.8%(오후 3시 기준)의 예매율을 기록하며 실시간 예매율 1위에 올랐다.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F1: 더 무비’와 하반기 텐트폴 영화로 꼽히는 ‘좀비딸’, ‘전지적 독자시점’(개봉 예정) 등을 제쳤다. 디즈니의 ‘겨울왕국’ 같은 잘 알려진 글로벌 스튜디오의 프랜차이즈 시리즈가 아닌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으로는 이례적인 반응이다.

봉준호 ‘기생충’ 제친 K애니

‘킹 오브 킹스’는 영국의 작가 찰스 디킨스가 막내아들 월터와 2000여년 전으로 떠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부활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여행을 그린 작품이다. 디킨스 소설 ‘예수의 생애’에서 영감을 얻어 예수의 일생을 함께 본 아버지와 아들이 화해하는 이야기를 담은 액자식 구성이 돋보인다. 국내 특수시각효과(VFX) 1세대로 30여년 간 한국과 미국 영화시장에서 작업해 온 장성호 모팩스튜디오 대표가 직접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 '킹 오브 킹스'의 장성호 감독. /모팩스튜디오 제공
영화 '킹 오브 킹스'의 장성호 감독. /모팩스튜디오 제공
영화는 개봉 전부터 화제를 낳았다. 지난 4월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시장에서 개봉하자마자 인기를 끌면서다. 북미에서만 약 6000만 달러(약 822억 원)의 극장 매출을 기록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제치고 한국 영화 사상 북미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낸 작품에 이름을 올렸다. 영화 평가 플랫폼 로튼토마토가 매긴 신선도 지수가 97%에 이를 만큼 현지에서 호평받으면서 오는 연말 재개봉까지 확정 지었다. 최근 만난 장 감독은 “미국 배급사가 크리스마스 재개봉을 결정했다고 들었다”며 “한 작품을 한 해에 두 번 스크린에 거는 이례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할리우드판은 초호화 더빙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케네스 브래너(찰스 디킨스), 오스카 아이작(예수), 디킨스 부인(우마 서먼) 등이 목소리 연기를 펼쳤다. 한국판 역시 이병헌(찰스 디킨스), 진선규(예수), 이하늬(디킨스 부인) 등 유명 배우들이 성우를 맡았다. 종교적 성격이 다소 짙은 콘텐츠라 극장가에선 “흥행 여부에 대한 감을 못 잡겠다”는 조심스러운 반응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배후 관람층이 충분한 데다 작품성도 검증된 만큼 흥행에 성공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위기의 ‘극장 애니’ 전환점 될까

시나리오 구상부터 개봉까지 10년이 걸린 긴 제작기간, 충무로가 아닌 할리우드를 겨냥한 영화의 독특한 성격은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한국은 대규모 제작비가 소요되는 애니메이션 작품이 수익을 거두기 어려운 환경이다. 애니메이션은 티켓 수입보단 IP를 활용한 2차 상품 유통 등을 통해 점진적으로 수익을 내는 구조다. 이 때문에 단기 성과를 원하는 국내 영화 투자시장에서 매력이 떨어지는 장르로 분류된다. 그간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이 ‘뽀로로’, ‘핑크퐁’, ‘하츄핑’ 등 영유아용 애니메이션에 집중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영화 '킹 오브 킹스'의 한 장면. /모팩스튜디오 제공
영화 '킹 오브 킹스'의 한 장면. /모팩스튜디오 제공
‘킹 오브 킹스’ 역시 약 360억 원에 달하는 제작비 조달이 가장 큰 문제였다. 장 감독은 “미국에선 투자를 받으면 창작에 대한 간섭이 시작되는 만큼, 저작권을 지키기 위해 순수 국내 제작비 조달을 원칙으로 삼았다”며 “고난의 시간이라 표현할 정도로 자금 구하는 게 만만치 않았고, 결국 사비까지 털어 넣을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부가판권 시장 규모가 크고, 기독교 콘텐츠에 대한 확실한 수요층이 있는 북미시장을 타깃 삼아 작품을 구상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결과다.

업계에선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의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보다 ‘킹 오브 킹스’가 받아들 성적표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순수 국내 자본으로, 국내 제작진이 완성한 애니메이션이란 점에서다. 이 작품의 성공 여부가 국내 극장용 애니메이션 시장의 성패를 가를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이 정도 제작비 규모로 성공한 국내 애니메이션을 찾기가 어렵다”며 “무엇보다 순수 국내 제작 작품이라 IP 저작권이 한국에 있다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올 초 개봉한 ‘퇴마록’이 50만 관객을 동원하고, 정유미 감독의 ‘안경’이 최근 한국 애니메이션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받는 등 애니메이션 제작 역량이 인정받는 만큼, ‘킹 오브 킹스’가 미국에 이어 국내 흥행을 지속할 경우 얼어붙은 투자 환경도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장 감독은 “박찬욱과 봉준호 감독의 성공이 재능있는 세대를 만든 것처럼 ‘킹 오브 킹스’의 성과로 극장 애니메이션 시장에 대한 관심이 환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