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전력 소비량의 절반 이상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있다. 그러나 햇빛과 바람이 약한 날에는 발전량이 부족해 전력 도매가격이 급등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한경ESG] 글로벌 - 독일
2024년 12월 12일 오후 5시, 독일 전력 선물거래 시장에 이변이 일어났다. 전력 도매가격이 일시적으로 급등해 1MWh당 936유로(약 148만 원)에 달한 것. 이는 2024년 전력 도매시장 평균가격(80유로)의 약 12배다. 가격 급등은 같은 해 11월 6일에도 발생해 1MWh당 820유로까지 치솟았다. 다만 전력 수급이 급박해 전력 계통이 불안정해지거나 정전이 발생하는 등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햇빛과 바람이 약한 날엔 취약
가격 급등 원인은 기후였다. 독일 전역에서 바람이 잔잔하고 두꺼운 구름이 햇빛(태양광)을 차단하는 둥켈플라우테(Dunkelflaute) 현상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풍력·태양광 발전설비의 발전량이 전력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면서 가격이 급등했다. 또 12월에는 맹추위에 일출이 늦는 데다 일몰이 빨라 전력 소비량이 증가하는 것도 한 요인이다.
둥켈플라우테는 주로 겨울에 발생한다. 독일 기상·기후연구센터에 따르면 둥켈플라우테는 매년 평균 2회 발생하며 며칠간 지속된다. 과거에는 8일간 지속된 사례도 있었다. 독일 전력 대기업 EnBW는 “둥켈플라우테는 독일 전력 시스템의 큰 시련”이라고 언급했다. 2024년 독일 국내 전력 소비량 중 재생가능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역대 최고인 55.4%에 달했기 때문이다(발전량 기준 재생에너지 비율은 58.4%).
독일 정부는 2030년까지 전력 소비량 중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을 80%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에 따라 독일 전력 시스템이 날씨에 좌우되는 정도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일부 미디어는 이번 가격 급등을 “바람이 멈추면 정전이 되나” 등 자극적인 제목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전력업계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케르슈틴 안드레에 독일 에너지·수도사업연합회(BDEW) 전무는 “수요와 공급 문제로 인해 이러한 가격 급등이 발생하는 것은 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부분의 전력 소매 사업자와 제조업체는 장기계약을 통해 전력을 구매하기 때문에 도매 가격의 일시적 급등이 소매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EnBW 역시 “이번 둥켈플라우테는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런 경우 발전사업자는 천연가스 및 석탄발전소의 발전량을 늘리고 해외에서 전력 수입을 확대한다. 예컨대 지난해 11월 6일 둥켈플라우테 발생 시 독일은 정오부터 1시 사이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로부터 전력 수입을 늘려 전력 계통의 불안정을 방지했다.
전력 소비 유연화 지연의 원인
발전사업자는 햇빛과 바람이 부족한 날 중단된 석탄·갈탄 화력발전소를 재가동해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부 발전사업자가 추가 가동을 하지 않아 가격 급등을 초래했다. 연방 계통 규제청과 연방 카르텔청은 이번 가격 급등이 가격 조작 때문인지 조사 중이다. 하지만 발전사업자가 공급량을 의도적으로 줄여 도매가격을 올린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재생에너지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시장에서는 전력 소비의 유연성 확보가 필수다. 소비자는 도매시장 가격이 높을 때 소비를 줄이고, 가격이 낮을 때 전력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를 실현하려면 시민과 기업이 스마트미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시장 신호를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독일 전력 시스템에는 스마트미터 보급률이 0.3%에 불과하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이는 유럽연합(EU) 가입국 중 최저 수준으로, 낮은 보급률이 전력 소비의 유연성을 저해한다.
변동성 줄이려면 보조금 정책 바꿔야
가격 급등과 관련해 대규모 수요자를 위한 송배전 요금 할인 제도의 개정 필요성도 제기된다. 2024년 11월과 12월 둥켈플라우테로 인해 도매가격이 급등한 시간대에도 철강 및 화학 제조업체 등 전력 다소비 기업은 전력 소비량을 줄이지 않았다.
이들 기업은 이미 스마트미터를 도입했다. 만약 둥켈플라우테 기간에 생산량을 줄이는 등 전력 소비를 조절했다면 이처럼 급격한 가격 상승은 없었을 것이다. 대규모 수요자가 둥켈플라우테 기간에도 전력 소비를 지속한 이유는 보조금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대규모 수요자를 대상으로 송배전 요금을 약 80% 할인하는 보조금 제도를 운영한다. 단, 할인 조건은 지속적인 전력 소비 유지다. 즉, 소비를 중단하면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없기에 기업들은 전력 소비를 줄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독일 경제학자들은 “보조금을 받기 위해 전력 가격이 급등할 때도 대규모 수요자가 소비를 지속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하며, 정부에 송배전 요금 할인 제도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한편 일본 경제산업성은 2024년 12월 제7차 에너지 기본계획(초안)을 발표하며, 2040년 전원 구성에서 재생에너지 비율을 40~50% 수준으로 설정할 방침을 제시했다. 재생에너지 비율이 높은 독일의 계통 안정화 및 가격 급등 방지 대책은 일본에도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구마가이 도오루 재독 저널리스트
1959년 도쿄 출생. 와세다대 정경학부 졸업 후 NHK 입사. 워싱턴지국 근무 중 베를린 장벽 붕괴, 미·소 정상회담 등을 취재. 1990년부터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독일 뮌헨에 거주하면서 유럽의 정치·경제·사회 이슈 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