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ESG Now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간담회에서 논의된 의견을 바탕으로 국내 ESG 공시기준 공개초안을 3~4월 중 발표하고 이에 대한 추가 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사진=연합뉴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간담회에서 논의된 의견을 바탕으로 국내 ESG 공시기준 공개초안을 3~4월 중 발표하고 이에 대한 추가 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사진=연합뉴스
금융당국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에 ‘스코프 3(총외부배출량)’를 적용하더라도 제도 도입 후 3년 동안은 면제해주는 방안을 검토한다. 공시 도입 시점은 대략 2026년 이후로 알려졌다. 스코프 3는 해외 법인을 비롯해 기업의 공급망 전체로 범위를 확장한 가장 강력한 온실가스배출 규제다. 공시 대상 범위와 관련해서도 기업의 자율성에 무게를 두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연결 기준으로 공시를 작성하되, 종속 기업 중 어떤 곳을 포함할지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스코프 3’ 3년 면제…ESG 공시 가이드라인 윤곽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ESG 공시제도 초안을 이르면 3월 중 발표한다. 그간 기업이 각기 다른 기준에 따라 자율적으로 공개한 ESG 관련 사안을 공시기준에 맞춰 비교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금융당국은 제도 도입 이후 최초 3년간은 협력사까지 포함한 스코프 3 온실가스배출량 공시를 면제할 것으로 알려졌다. 도입 첫해에만 공시 요건에서 빼주는 국제 기준안에 비하면 어느 정도 완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외에 여러 제조 시설을 거느린 만큼 준비 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국내 대기업의 요구를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스코프 3 범위는 국내외 생산기지와 제품 유통망, 협력업체까지 아우른다. 온실가스배출량의 측정 기준은 국제표준인 GHG 프로토콜을 원칙으로 삼을 전망이다.

비주요 종속 기업 뺄 수 있게 돼

금융당국은 ESG 공시를 의무화하더라도 기후, 생물다양성, 인권 등 주요 분야 중 기후 관련 내용만 우선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다. 기후 요인이 기업의 재무·실적 전망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투자자에게 알리는 것이 골자다. 기후변화에 따라 특정 지역에서 제품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거나, 친환경 사업을 늘리는 등 사업모델을 일부 변경할 예정이라면 이를 주주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당국은 기업의 재무 상태·성과 등이 기후 요인과 별 관계가 없는 경우엔 기후 영향 예상에 대한 공시를 생략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당초엔 공시를 생략하기로 한 근거까지는 기업이 기술하도록 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생략 사실만 명시하면 되도록 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ESG 공시기준은 재무제표 보고 기업과 동일하게 규정하기로 했다.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는 지배기업의 경우엔 자사와 종속 기업에 대해 공시를 해야 하는 식이다. 금융당국은 종속 기업마다 중요도를 따져 공시 포함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도록 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엔 기업이 자발적으로 보고 범위를 선택한다. 대부분 해외 법인 등을 제외하고 모기업 중심으로 기재하고 있다.

내부 탄소가격 등도 따져야

당국은 기업이 ESG 성과 등 경영진 성과지표를 포함한 경영진 보상 정책을 ESG 공시 서식에 넣을 전망이다. 경영진이 ESG에 중점을 두고 경영활동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에 대해 자체적으로 가격을 책정한 금액인 ‘내부 탄소가격’도 공시하게 할 예정이다.

이를 두고 기업들은 난색을 표한다. 일단 임원 성과 지표를 공시에 구체적으로 나열하는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입장이다. 기존 국내 기업은 사업보고서에 임원 보수 한도를 공시하고 있다. 특정 성과 지표를 연동했다는 내용 등은 공개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내부 탄소가격 공시도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미래 탄소가격이 어떻게 변할지까지 예상치를 반영해 가격을 책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ESG 공시는 거래소 공시로 먼저 도입된 이후 차차 법정 공시로 확대될 전망이다. 기업이 ESG와 관련해 허위로 공시할 경우 자본시장법 위반을 근거로 제재 조치가 부과될 수 있다. 당국은 도입 초기엔 제도 안착을 위해 제재 수준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지만, 기업들은 문제 소지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명확하고 상세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금융위는 일단 데이터 인프라 구축 등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도입에 앞서 세부 가이드라인과 인센티브 제도를 내놓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입 시점이 관건

산업계의 가장 큰 관심은 ESG 공시 도입 시점이다. 당국은 당초 2025년이던 도입 시점을 2026년 이후로 미룬 바 있다. 국내 기업은 2029년 도입을 희망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EU에 진출한 역외 국가 기업에 ESG 공시를 의무화하는 해가 이때여서다. 2029년 이전까지는 국내에서 별도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ESG 관련 데이터 취합·검증, 대응 체계 마련 등을 위해 시간을 달라는 의미다.

EU보다 먼저 규제 조치를 취할 경우 이로 인한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8월 과학 분야 학술지인 사이언스는 기후 공시 의무화가 이뤄지면 기업 이익이 평균 44% 줄어들 것이라는 논문을 게재했다.

국가별로는 러시아가 가장 많은 130%의 이익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의 이익 감소 예상치는 46%로 인도네시아(90%), 인도(79%), 멕시코(67%), 중국(56%), 남아프리카공화국(51%)이 뒤를 이었다. 선진국 중에선 기후 공시로 인한 손실 가능성이 가장 큰 셈이다. 저자는 세계 1만5000여 개 상장사를 조사했는데 탄소가격을 톤당 190달러, 기업의 ‘스코프 1(직접배출)’을 토대로 산출한 결과다. 공시의무를 스코프 3로 확대한다면 이익 감소액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반면 금융투자업계와 회계법인, 법조계 등은 빠를수록 좋다는 입장이다. ESG 투자를 늘리고 있는 자산운용사 등은 ESG 공시를 투자 지표로 활용할 수 있도록 조속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회계법인과 법조계는 신속한 ESG 공시의무화와 함께 ESG 공시 외부 인증제 도입도 주장한다. 이들 업계엔 ESG 공시 감사·인증 사업이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어서다.

선한결·김익환 한국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