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석 < 삼성경제연 소장 sericws@seri21.org >

IMF(국제통화기금) 관리 체제 2년 동안 한국경제가 변한 속도와 모습은 정말
경이롭다.

경제의 거시지표는 외환위기 이전으로 거의 회복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IMF 사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경제와 문제들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97년 외환쇼크와 IMF 관리체제는 한국경제의 틀과 룰(rule)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은 것이다.

오랜 역사와 문화적 전통에도 불구하고 전혀 생소한 문화인 글로벌 스탠더드
가 이렇게 빨리 이식된 예는 역사상 흔치 않다.

그런 변화에의 적응능력이 바로 한국경제의 잠재력이고 기초여건
(Fundamentals)이 아닌가 싶다.

IMF 사태 극복을 1) 위기수습 2) 경제구조의 조정 3) 새로운 성장 활력의
부활이라는 단계로 볼 때 이제 겨우 2단계 중간쯤 와 있다.

이 단계에서 멕시코처럼 다시 제2파를 맞는 경우도 많다.

경제는 활짝 열렸는데 그에 맞는 시스템과 소프트가 엉성하기 때문이다.

외환쇼크를 맞고 정신없이 뛰다 보니 어느새 위기상황에선 벗어났으나 전혀
생소한 경제환경에 와 있는 것이다.

IMF 사태 극복엔 외자와 재정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초 외환위기가 한국경제에 대한 밖의 신뢰 추락에서 생긴 것이므로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많은 것을 내놓아야 했다.

약간 위험스러울 정도로 문을 열었다.

이 때문에 외자가 우리 안방 깊숙이 들어와 있다.

외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국민 경제도 기업 경영도 맞추지 않을 수 없고 그에
따라 한국사람들의 생각이나 생활도 크게 바뀌고 있다.

금융을 비롯해 제지 화학 술 에너지 필름 종자 건전지 등에서 외자가 주도권
을 쥐게 되었으며 손꼽는 우량기업들은 외국 지분이 절반 가까이 된다.

국부 유출도 심하게 일어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두뇌 수준으로서는 외자와의 경쟁에서 계속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제의 글로벌 추세에 따라 어차피 가야할 방향이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여러 시행착오와 문화적 마찰이 일고 있다.

기업들은 변신을 강요당하고 있다.

대기업 체제의 붕괴, 수익성과 현금 흐름(cash flow) 위주의 경영, 가차없는
승패의 가름, 차입 적극경영의 쇠퇴, 급격한 서비스화, 주가와 주주 중시
등이 대표적이다.

경제의 서비스화는 산업 주역의 교체와 금융 정보 통신의 부상, 전통산업의
사양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이런 경제구조의 변화는 한국 사람들의 생활이나 의식도 크게 바꾸고 있다.

시장경제의 확대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와 약육강식, 중산층의
기반침하, 고용시장의 불안, 지식자원의 가치증대가 일어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준비 안된 세대와 빈곤계층의 타격이 가장 심하다.

계층 사이의 단층과 소외층의 확대는 점차 정치적, 사회적 부담으로 현재화
될 것이다.

우선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재정자금의 투입은 국유 부문의 확대와 재정적자
의 누증을 가져왔다.

IMF 체제 2년 동안 민간의 부실이 정부 부실로 이전된 것이다.

금년 재정수지 적자가 16조원 가까이 되어 국가채무(IMF 기준)만도
1백10조원이 넘었다.

이런 재정수지의 확대도 외자유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외자가 들어올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재정에서 금융과 기업 부채를
안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대우사태와 투자신탁회사 처리, 또 중견그룹의 워크아웃에 따라 재정적자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재정자금의 투입에 따라 많은 은행과 기업들이 국유화되었다.

일시적인 현상이라 하지만 국유기업의 증가는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더 많은 재정부담을 강요할지 모른다.

국영기업들을 민영화하는 게 세계적 흐름인데 우리는 이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외자의 영향력 증대와 재정적자의 급증 및 국유 부문의 확대는 외환위기
탈출 과정에서 생긴 부의 자산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앞으로 빚을 갚으면서 경제를 돌려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빚을 우리 세대에서 갚지 못하면 다음 세대가 대신 감당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해결시점을 후대로 미루지 않으려면 더 부가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적절한 고통분담을 해야 한다.

고부가 산업을 일으키려면 지식 기반이 튼튼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지식사회는 아직 꿈을 덜 깬 상태에 있다.

고통분담은 제대로 이뤄질까.

아직 그러고자 하는 마음도, 공평한 잣대도 없다.

오히려 조금 숨쉴 만하니까 집단이기주의만 극성을 부리고 있다.

IMF 사태의 극복은 이제 겨우 가닥을 잡는 단계인데 졸업 잔치부터 하고
있으니 그게 더 걱정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