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덕분에 저희는 잘 지냅니다
추석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도란도란 함께한 시간을 추억한다. 함께한 분들도 떠올린다. 성묘도 간다. 잡초를 뽑고 비석에 묻은 먼지와 흙을 털어낸다. 옷고름을 펴 드리며 대화를 나누는 듯, 못다 한 감사함까지 전한다.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과 자녀의 추억은 내리사랑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명절의 풍성함 속에서,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선 분들, 특히 시대를 건너 오늘의 우리를 만든 분들에 대한 기억은 옅어진다.

지난 2021년, 매주 토요일 진행하는 민원인 행사 ‘국쫌만(국회의원 쫌 만납시다)’에 노부부가 찾아오셨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인연을 맺어온 안성녀 여사의 후손이었다. ‘안성녀 여사’.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사살한 안중근 의사의 여동생이다. 1910년대부터 광복 즈음까지 황해도와 중국 만주 등에서 독립군복을 제작·수선하고 군자금을 지원하며 독립을 위해 싸웠다. 광복 이후 6·25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란했다.

국내에는 공적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했다. 어려운 삶을 이어가다가 1954년 별세하셨다. 지금은 부산 남구 천주교 묘역에 잠들어 계신다. 노부부가 호소했다. “독립유공자가 아니어서인지, 예산 확보도 어렵고 묘소를 제대로 관리하기 어렵습니다.”

묘소를 직접 찾았다. 풀이 우거져 진입로부터 길이 잘 안 보일 정도였다. 봉분과 주변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유족에게만 미룬 채, 우리 모두 관심이 부족했던 탓이다. 부산 남구청은 물론 지역 사회와 기업, 주민이 함께 뜻을 모았다. 몇 년에 걸쳐 길을 정비하고 묘역을 단장했다. 석축과 둘레석을 손보고 봉분과 주변도 말끔하게 가꿨다. 부모님 묘소를 보듬듯 정성을 다했다.

기억에도 손길이 필요하다. 찾아오는 발길도 하나둘 늘었다. 낯설던 이름과 잊혀가던 삶도 다시 알려졌다. 정성을 다해 묘역을 가꾸며 세상의 기억을 되살린 것이다. 매년 3.1절과 4월 안 여사님의 기일, 광복절 즈음에 반듯해진 묘역에 참배를 드린다. 조금이나마 마음 한구석이 놓이고 후손으로서 도리를 하는 듯하지만, 부족하다. 서둘러 독립유공자로 선정하고, 그 삶과 용기를 더 오래도록 전해야 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역사책에 실리는 호국영웅뿐 아니라, 그 뒤에 선 수많은 헌신이 함께 이뤄냈다. 누군가는 총칼을 들고, 누군가는 붓을 들었다. 누군가는 쌈짓돈을 털었고, 누군가는 군복을 바느질하고 비밀문서를 날랐다. 안성녀 여사처럼, 기록은 희미해도 기억 속에는 선명히 남겨야 할 우리 모두의 할머니, 할아버지다. 넉넉해진 마음만큼, 차오른 보름달만큼 풍성해지는 이번 추석, 마음의 자리를 조금만 넓혀보면 어떨까. 이름조차 알지 못하지만,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우리 모두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마음속으로라도 감사의 안부 인사를 한마디 건네보자. “그곳은 어떠신가요? 저희는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