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추석의 애플망고, 국경을 넘은 정
명절이 가까워지면 과일 한 상자의 의미도 달라진다. 평소에는 간식이나 후식이지만, 명절에는 자주 만나지 못하는 친지에게 건네는 안부가 되고, 고마운 이에게 마음을 전하는 정성이 된다.

얼마 전 해외 출장길에 들른 미국의 한 대형마트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한국산 신고배였다. 개당 10달러를 넘기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지만, 현지인은 망설임 없이 카트에 담고 있었다. 아삭한 식감과 풍부한 과즙을 자랑하는 우리 배는 현지에서 ‘아시안 페어(Asian Pear)’라는 이름으로 프리미엄 과일 대접을 받는다. 명절마다 가족들과 익숙하게 깎아 먹던 배가 바다 건너 세계인의 식탁에서 특별한 과일이 된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반대로 요즘 우리 명절 선물 상자에는 페루에서 온 애플망고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지구 반대편 남미의 풍부한 햇살 아래서 자란 과일이 한국의 추석 상차림에 오르는 모습을 보면, 한 나라의 식탁이 세계와 얼마나 촘촘히 연결돼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나는 30년 넘게 무역업에 몸담으며 그 연결의 한가운데에서 살아왔다. 한 국적항공사에 쌓인 비행 마일리지가 어느덧 200만 마일을 넘어섰다. 누군가에게는 여행의 흔적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세계 곳곳의 좋은 상품을 찾아다니고 거래처와 가격을 협상하며, 갑작스러운 선적과 통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밤낮없이 오간 시간의 기록이다.

우리 추석이라고 전 세계 무역 시계가 멈추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 송편을 빚고 명절 음식을 준비할 때, 나는 비행기 안에서 시차를 넘나들며 추석을 보낸 적이 많다. 당시에는 그저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에게 없는 좋은 것을 들여오고, 우리가 정성껏 만든 것을 세계로 내보내기 위한 시간이었다.

무역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일이 아니다. 어느 나라의 풍요를 다른 나라와 나누고 서로의 부족한 곳을 채우며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일이다. 좋은 수출이 있으려면 좋은 수입도 있어야 한다. 우리가 전 세계 양질의 상품을 받아들여 각국 생산자의 삶을 풍성하게 해온 것처럼, 우리 농식품도 그 품질을 인정받으며 글로벌 식탁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수출과 수입은 서로 별개로 움직이는 영역이 아니라, 경제와 생활을 움직이는 두 개의 바퀴다.

한국의 배가 미국 소비자의 카트에 실리고, 페루의 애플망고가 우리의 추석 선물 상자에 담기는 시대다. 각자가 지닌 좋은 것을 주고받으며 함께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건넬수록 정이 깊어지는 추석의 마음처럼, 무역도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마음을 잇는 따뜻한 교류가 아닐까. 이번 추석, 우리 배와 빛깔 고운 애플망고가 한 상자에 나란히 담긴 모습을 보며 생각해본다. 국경을 넘어 우리 식탁을 풍성하게 채우는 과일처럼, 우리가 주고받는 마음과 정 또한 더 넓고 따뜻하게 세상으로 이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