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이 있는 사람끼리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형성된 만남의 장이
교보묵연회다.

회원수는 약 50여명.지난 86년 8월 맺어졌으니 햇수로 9년이 되었다.

그동안 여러가자 어려움도 많았지만 창립기념전까지 모두 다섯차례의
사내 서예전을 가졌다.

처음에는 사우들의 반응이 그다지 좋은편이 아니였으나 해를 거듭할수록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지금은 외부인사들까지도 관심을 갖고 대한교육보험
의 서예전을 곤람할 정도가 되었다.

바로 이같은 공감대형성이야말로 목표인지도 모른다.

사람에는 국경이 업듯이 예술에도 국경은 있을수 없다.

언어와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공유될수 있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이것이 어찌 교보묵연회만의 몫이겠는가.

현대문명의 공해에 지친 임직원들의 마음속에 잠시나마 파고들어 무언의
대화를 통해 정신공간을 가치화하여 조직원의 문화공간을 확대하고 조직에
활력을 불어 넣을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필자가 서와 인연을 맺은지도 10년이 넘는다. 그러나 한일자 한자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 너무나 어렵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사실을 자신의 재능 부족으로 돌리지 않고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섭리로 받아 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사이 젊은이들은
그런 것 같지가 않다.

배우겠다고 찾아온지가 불과 몇달이 않되어 쉽게 포기해 버린다. 자기는
체질이 아니란다.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인내심과 자존심이 부족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혹자는 서를 일컬어 예라고도 하고 또는 도라고도 한다.

그러나 도를 통하지 않고도 예를 완성할수 없다.

습작도중 종이 한장이라도 헛되이 쓰면 연령 고하를 막론하고 불호령이
떨어지는 것도 낭비를 허용할수 없는 도의 한 부분이겠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우리의 민족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

우리의 가락과 창을 모르고서는 바이얼린이나 첼로의 선율이 어색할수
밖에 없을 것이다.

국제화시대의 냉혹한 경쟁에서 우리의 자존심을 지켜낼수 있을까 매우
의심스럽다.

그래서 교보묵연회는 하나의동아리로 안주해서는 않되리라 본다.

서도를 통해서 회사 임직원은 물론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에게 고상한
문화적 소양과 자존심을 불어 넣는데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많은 취미중에서도 심신을 수양하면서 묵과 화선지 안에서 은은한
묵향을 머금으며 여백을 즐길수 있는 서를 권하고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