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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미·중 패권 다툼 시대, 병자호란에 길을 묻다
병자호란-예정된 전쟁
김영진 지음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 960쪽│4만8000원
청의 압박 속 벼랑끝 조선
400년 전 격변기 파헤치며
'오늘의 외교'에 화두 던져
김영진 지음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 960쪽│4만8000원
청의 압박 속 벼랑끝 조선
400년 전 격변기 파헤치며
'오늘의 외교'에 화두 던져
1619년 사르후 전투에서 명나라와 조선 연합군을 격파한 후금의 누르하치는 광해군에게 위압적인 어투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서 누르하치는 조선이 명나라와 후금 중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입장을 분명히 하라고 요구했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견제가 첨예한 오늘날처럼 400년 전 명·청 교체기 조선도 국가의 명운이 걸린 치명적인 양자택일을 강요받았다.
병자호란을 전후했을 때는 기존의 세계관과 문법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대격변의 시기였다. 임진왜란의 충격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조선에 북방에서부터 쏟아진 외교·군사적 과제는 감당하기 버거운 것이었다. 조선은 자신의 빈약한 군사·경제적 역량을 잘 인식하고 있었고, 나름대로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한 현실주의적인 정책을 모색했다. “쥐처럼 양쪽 눈치를 본다”고 명나라가 분통을 터뜨릴 정도였다.
시대적 한계, 정책 실패도 없지 않았다. 조선의 기본 입장은 광해군과 인조 치세를 가릴 것 없이 ‘명나라를 도와 후금·청에 대처한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대응은 기존의 국제질서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책은 단기적 대응에 급급한 수준에 머물렀다. 근본적으로 조선의 국력은 주변국에 비해 미약했다. 한계를 극복하기에 집권층은 이념적으로 경직됐고, 정치는 분열을 거듭했다.
역사의 추를 기울게 하는 어쩔 수 없는 외부 변수도 적지 않았다. 압록강 인근 가도 지역(동강진)에 주둔하며 후금·청을 자극한 모문룡의 명나라 잔존세력은 홍타이지(청태종)의 조선 침략을 부른 직접적인 트리거가 됐다. 기존 병자호란 연구에서 ‘주변적’인 사건으로 여겨졌던 가도의 명나라 세력은 오늘날 시각에서 복기해보면 분쟁을 전쟁으로 비화하는 핵심 요인이었다.
결과적으로 조선이 두 차례 호란을 거쳐 청에 굴복하는 형태로 역사의 흐름이 마무리됐다. 강대국의 패권 교체에 대응하지 못한 조선은 백성의 안전과 국가의 자존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당대의 패전이 부정적인 결과만 낳은 것은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조선은 생존에 성공했고, 내부 결속도 유지했다. 청나라의 지배를 받은 한족처럼 만주족의 지배 질서에 완전히 동화되지도 않았다.
저자는 치밀하게 당대의 사료를 파악해 실제 있었던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중점을 둔다. 책은 섣불리 당대 외교정책의 공과를 따지지 않는다. 논쟁적인 주제에 부나방처럼 뛰어들기보다 차곡차곡 당대의 역사를 복원하는 것을 우선시한다. 척박한 한국학의 현실을 고려할 때 이처럼 사실관계를 상세하고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책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책은 독자에게 끝없는 현재적 질문을 곱씹게 한다. 강대국 간의 대립 구도를 또다시 직면한 오늘날 한국인에게 400년 전의 패권전쟁의 역사가 던지는 화두는 무엇일까.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