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과세 4번째 유예…"2년 미뤄 2029년 시행"
정부가 내년부터 시행 예정인 가상자산 양도·대여 소득에 대한 과세를 2년 유예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가상자산 소득 과세 유예를 정부에 공식 요청한지 하루 만이다. 정부는 미국과의 가상자산 정보 교환이 2029년부터 이뤄지는 점 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밝혔지만, 가상자산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청년층의 지지율 하락을 고려했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상자산 소득 과세 관련 브리핑을 열고, 과세를 2년 유예하는 방안을 국회와 협의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에는 이미 과세 2년 유예 법안이 발의돼 있다. 최종 유예되면 이번이 네 번째다. 가상자산 소득 과세는 2020년 소득세법 개정으로 처음 제정됐고, 2022년부터 시행하기로 했으나 2023년, 2025년, 2027년으로 세 차례 유예됐다.

정부는 당초 가상자산 양도·대여로 발생하는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하고, 내년 1월 1일부터 과세할 계획이었다. 연간 250만원을 공제한 뒤 20% 소득세율로 분리 과세하는 방식이다. 이 부총리는 후보자 신분이었던 지난 9월 인사청문회를 위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구체적인 과세 기준은 연내 국세청 고시로 공표할 예정이며, 납세자 신고에 어려움이 없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과세를 재차 유예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내 거래소를 이용하는 투자자와 미국 등 해외 거래소를 거친 투자자 간 과세 형평의 문제다. 내년부터 국제 협정에 따라 가상자산 정보를 국가 간 자동으로 교환하는 제도(CARF)가 시행되는데 미국은 2029년부터 참여한다는 것이 문제다. 당장 내년부터 2년간은 미국 거래소를 이용한 투자자의 과세 정보를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국내 거래소 이용자만 세금을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는 가상자산 거래 방식이 다양해진 것도 유예 이유로 꼽았다. 양도·대여 중심의 과세 체계로는 스테이킹 보상, 탈중앙화금융(DeFi)을 통한 수익, 가상자산 간 교환 등 새로운 거래 구조를 반영하기 힘들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 부총리는 “디지털자산법 제정에 따라 디지털자산의 법적 정의와 사업자 규율체계가 변화할 것”이라며 “새로운 시장 변화에 맞춰 과세 제도를 합리화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2년의 추가 준비 기간에 손실 이월공제를 3년간 허용하는 방안도 국회와 협의해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는 같은 해 발생한 이익과 손실은 합산하지만, 손실을 다음 해로 넘길 수는 없다. 가상자산 투자로 첫해 1억원을 잃고, 다음 해 5000만원을 벌었다면 2년간 5000만원 손실을 봤지만 두 번째 해 소득에는 세금을 내야하는 구조다. 정부는 미국, 영국 등 주요 국가가 손실 이월공제를 인정하고 있는 점, 가상자산의 높은 가격 변동성을 고려할 때 일정 기간 손익을 통산해 과세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지적 등을 감안하기로 했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해 2027년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2028년 상반기 세부 과세 기준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 부총리는 “‘소득 있는 곳에 과세’라는 조세의 기본 원칙을 견지하되, 국내외 거래에 대한 과세 실효성과 납세자 간 형평성을 높여 신뢰할 수 있고 안정적인 과세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이번 유예의 진짜 이유는 여론 반발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 5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가상자산 과세 유예 또는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 올라왔고, 두 건 모두 5만 명 이상 동의를 얻어 국회 심사 요건을 충족했다. 특히 가상자산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청년층의 지지율 하락을 고려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김일규/남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