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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언서 보고 사던 시대 끝?…쇼핑할 때 '이것'부터 찾는다 [트렌드+]
"인플루언서보다 신뢰"…'쇼핑 시작점' 된 AI
인공지능(AI)이 소비자를 대신해 상품을 찾고 가격을 비교하는 시대가 열리면서 글로벌 유통·패션업계의 경쟁 구도가 달라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소비자 10명 중 1명이 AI로 쇼핑을 시작하고, 유럽 패션 플랫폼은 다른 쇼핑몰의 상품까지 대신 결제하는 서비스를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네이버가 AI 쇼핑 에이전트를 상용화하는 등 변화가 본격화하면서 광고·인플루언서 마케팅 못지않게 가격과 사이즈, 배송 정보의 정확성이 중요한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5일 글로벌 컨설팅업체 알릭스파트너스가 발표한 '패션 소비자 심리지수 2026(Fashion Consumer Sentiment Index 2026)'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의 10%는 AI를 통해 상품 탐색을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에서는 이 비율이 14%로 높아졌다. 이번 조사는 미국 소비자 9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140개 유통업체에 대한 평가를 분석한 것이다. 상품 탐색 경로뿐 아니라 가격, 상품 품질, 서비스 등 구매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도 조사했다.
조사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AI의 역할 차이다.
응답자의 81%는 최근 1년간 SNS를 통한 구매 경험이 있었지만, SNS에서 상품 탐색을 시작한다는 비율은 6%에 그쳤다. 인플루언서 제휴의 중요도 역시 2024년보다 33% 낮아졌다. SNS가 구매 과정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첫 번째 상품 탐색 경로로서의 영향력은 구매 경험만큼 크지 않다는 의미다. 반면 AI는 아직 이용자가 소수임에도 새로운 상품 탐색 경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이 중시하는 구매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응답자의 88%는 투명한 가격 표시를 중요하게 평가했다. 액티브웨어 구매자 가운데 일관된 핏과 사이즈를 중시한다는 응답은 54%로, 2025년 29%에서 25%포인트 상승했다. 매장 재고 확보와 청결, 직원의 도움 등 기본적인 쇼핑 경험을 우선한다는 응답도 80%를 넘었다.
이런 결과는 패션업계의 마케팅 전략에도 시사점을 준다. 소비자가 인플루언서 콘텐츠를 통해 브랜드를 알게 되더라도 실제 구매 과정에서는 가격과 사이즈, 재고 등 검증 가능한 정보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AI가 상품을 추천하는 환경에서는 정보의 정확성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 AI는 광고 이미지나 브랜드 분위기뿐 아니라 상품명과 소재, 실측 사이즈, 가격, 배송 조건 등 구조화된 정보를 활용해 구매 후보를 추린다. 브랜드 인지도와 함께 AI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상품 정보를 얼마나 확보했는지가 노출 경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아마존은 차단, 월마트는 개방…AI 쇼핑 주도권 경쟁
AI 쇼핑 확산은 글로벌 유통업체의 사업 모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비자가 유통업체 홈페이지를 방문해 상품을 검색하는 대신 AI에 구매를 맡기면 기존 검색광고와 상품 노출 광고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지난 9월 메타의 AI 쇼핑 에이전트 '뮤즈'의 접근을 차단했다. 외부 AI가 고객 접점과 구매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을 경계하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월마트는 지난달 외부 AI가 자사 상품을 검색하고 구매까지 연결할 수 있는 '월마트 에이전트 게이트웨이'를 발표했다. 이용자가 AI별 구매 권한과 지출 한도를 설정하도록 해 결제 통제권은 유지하는 방식이다.
아마존과 월마트의 엇갈린 선택에는 광고 사업을 둘러싼 이해관계도 자리 잡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이마케터에 따르면 올해 미국 리테일 미디어 광고 시장은 744억달러 규모로 추정된다. 아마존과 월마트의 합산 점유율은 88%다. 소비자가 쇼핑몰 검색창 대신 AI에 구매를 맡기면 기존 검색광고와 상품 노출 광고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모건스탠리는 2030년 AI 에이전트가 미국 전자상거래 지출의 10~20%를 처리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럽 패션 플랫폼 잘란도는 한발 더 나아갔다. 지난 3일 다른 온라인 소매업체의 상품까지 자사 앱에서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잘란도 익스텐디드'를 공개했다. 가구·생활용품 플랫폼 웨스트윙과 시범 운영에 들어갔으며 2027년 AI를 통한 결제 기능을 도입할 계획이다. 자사 상품을 판매하는 플랫폼에서 다른 쇼핑몰의 상품까지 연결하는 구매 관문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는 것이다.
오픈AI도 지난해 9월 미국에서 챗GPT 대화 중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인스턴트 체크아웃'을 선보였다. AI가 상품 추천을 넘어 거래 중개자로 진입하면서 기존 쇼핑몰과 AI 플랫폼 간 수수료 배분, 고객 데이터 소유권이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네이버 거래액 82% 증가…무신사·에이블리도 AI 경쟁
국내에서는 네이버가 AI 쇼핑 에이전트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2월 네이버플러스 스토어에 대화형 쇼핑 AI를 도입한 데 이어 선물 추천과 실시간 배송 정보까지 기능을 확대했다. 이용자가 "내일까지 도착하는 캠핑용 밀키트"를 요청하면 배송지와 주문 마감 시간 등을 고려해 상품을 추천하는 방식이다. 네이버가 9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AI 쇼핑 에이전트를 통한 대화 수는 6월 대비 약 60%, 거래액은 82% 증가했다.
패션 플랫폼에서는 AI를 활용한 상품 추천과 외부 AI에서의 브랜드 노출 경쟁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에이블리는 이용자의 클릭·구매 이력 등을 분석해 취향에 맞는 상품을 추천하는 개인화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무신사와 지그재그 등에도 외부 AI 검색 환경에서 브랜드 노출도를 높이는 일이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AI 검색 분석업체 에이아이빅스랩이 지난 9~10월 챗GPT·제미나이·클로드·퍼플렉시티의 답변을 분석한 결과, 국내 패션 플랫폼 26개 가운데 무신사가 종합 70.1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지그재그(53.7점), 에이블리(43.3점)가 뒤를 이었다. 무신사는 전체 AI 답변의 80%에 등장했지만 퍼플렉시티에서는 에이블리가 앞섰다. 특정 조사 조건에서 측정한 노출도라는 한계는 있지만 AI 서비스에 따라 추천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광고보다 정확한 상품 정보…다음 승부는 결제
AI 쇼핑 확산은 패션 브랜드의 상품 정보 관리에도 변화를 요구한다. 같은 M 사이즈라도 브랜드마다 실제 치수가 다르고 소재와 재단에 따라 착용감이 달라진다. AI가 소비자에게 적합한 상품을 추천하려면 실측 사이즈와 소재, 착용 후기, 재고 정보 등이 표준화돼야 한다. 수많은 입점 브랜드를 보유한 무신사·지그재그·에이블리에도 상품 데이터의 정확성을 높이는 일이 중요한 과제가 되는 셈이다.
광고 시장의 변화도 예상된다. 지금까지 판매자가 검색 결과 상단에 상품을 노출하기 위해 광고비를 지출했다면 AI 쇼핑에서는 가격과 배송 조건, 상품 적합도가 추천 결과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새로운 광고 모델도 등장하고 있다. 아마존은 자체 쇼핑 AI에 광고를 도입했고 월마트도 AI 쇼핑 챗봇 '스파키'에서 광고를 시험하고 있다. AI 추천 결과에서 광고와 일반 상품을 어떻게 구분할지가 새로운 경쟁 요소가 될 전망이다.
다만 미국에서도 AI로 쇼핑을 시작하는 소비자는 아직 10%에 불과하다. AI 쇼핑이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로 자리 잡으려면 실제 구매 전환율과 반품률, 광고 수익 등을 통해 사업성을 입증해야 한다. AI가 얼마나 많은 소비자를 끌어들이느냐보다 실제 구매와 수익으로 얼마나 연결하느냐가 향후 경쟁력을 가를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AI를 통한 쇼핑의 흐름과 광고 효율, 고객당 매출의 연결성이 향후 사업 발전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는 트래픽 중심의 수익 구조가 상품 데이터와 독점 상품, 풀필먼트(물류 일괄 대행), 고객 경험 자산을 보유한 사업자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전망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