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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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이 배우자보다 20배 많다면 집안일을 덜 해도 될까. 반도체 호황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직원들의 성과급이 수억원대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한 직원이 던진 질문이 온라인에서 논쟁으로 번졌다. 가사를 공평하게 나눠야 한다는 인식은 10여 년간 꾸준히 확산했지만 실제 분담은 이에 크게 못 미친다는 조사 결과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연봉 20배 차이 나도 집안일은 반반이야?'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삼성전자 직원으로 표시된 작성자 A씨는 성과급을 포함한 자신의 연봉이 약 8억원, 아내 연봉은 4000만원이라고 밝혔다. A씨가 아내 직업을 특정해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관련 태그로 교육청 등을 연결하며 온라인에서는 A씨 아내가 교육청 소속 공무원일 것이라는 추정도 나왔다. A씨는 "퇴근 시간은 비슷하고 둘 다 바쁘다"며 가사를 절반씩 나누는 게 맞는지 물었다.

A씨는 이후 추가 글에서 "회사가 생산을 최대로 늘리면서 업무량이 많아졌고, 야근 시간을 기준으로 고과를 매기는 분위기 속에 진급을 앞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과에 따라 성과급 차이가 크다"면서 "야근을 많이 해야하는데 아내는 그래도 내가 밀린 집알일 하거나 칼퇴해서 집안일 하기를 바란다"는 점도 덧붙였다.

반응은 엇갈렸다. 다수 이용자는 소득 격차를 가사 분담의 기준으로 삼는 데 반대했다. 한쪽이 더 번다는 이유로 가사에서 빠진다면 결혼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댓글도 달렸다. 반면 배우자가 그만큼 번다면 집안일을 더 맡겠다는 옹호론, 가사도우미를 쓰라는 현실론도 나왔다. 서혜진 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JTBC '사건반장'에서 연봉 차이와 별개로 부부의 업무 강도는 비슷할 수 있다며 연봉만으로 가사를 나누면 배우자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억대 성과급'

논쟁의 배경에는 반도체 호황이 있다. 삼성전자 노사는 올해 임금협상에서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을 유지하면서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사업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하는 특별경영성과급을 신설했다. 지급 상한은 두지 않았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인공지능(AI)용 메모리 수요가 몰리면서 삼성전자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57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56% 늘었고, 이 가운데 93.9%가 반도체에서 나왔다.

삼성전자 초기업노조는 올해 영업이익 컨센서스 370조원을 기준으로 연봉 8000만원대 초반 직원의 OPI 포함 세전 예상 지급액을 메모리사업부 7억5000만원, 공통조직 5억3000만원, 비메모리사업부 2억4000만원으로 추산했다. 지급은 내년 정기 주주총회 등 절차를 거쳐 3월 말~4월 초 이뤄질 예정이다.

다만 노조 추산치는 확정액이 아니어서 A씨의 연봉 주장을 입증하는 근거로 보기는 어렵다. 부부의 근로·통근시간, 자녀 유무 등도 공개되지 않아 실제 가사 부담이 어느 쪽에 더 쏠려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일 일본 요코하마에 위치한 삼성전자 첨단 반도체 패키징 연구거점을 방문해 패키징 요소기술 연구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일 일본 요코하마에 위치한 삼성전자 첨단 반도체 패키징 연구거점을 방문해 패키징 요소기술 연구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삼성전자

◆"공평 분담해야" 두 배로…실천은 20%대

가사 분담을 둘러싼 인식과 현실의 괴리는 정부 통계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는 응답은 2008년 32.4%에서 2014년 47.5%, 2018년 59.1%, 2024년 68.9%로 꾸준히 높아졌다. 같은 기간 '아내가 주도해야 한다'는 응답은 66.5%에서 29.0%로 떨어졌다.

실제 분담률은 인식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실제로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한다는 남편 응답은 2008년 8.7%에서 2014년 17.8%, 2018년 20.2%, 2024년 24.4%로 늘었지만 여전히 4명 중 1명 수준이다. 아내 응답 역시 2024년 23.3%에 그쳤다. 2024년 기준 아내가 가사를 주도하는 가구는 여전히 70%대다.

소득과 가사 분담의 관계를 다룬 분석도 있다.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이 2008년 사회조사를 분석한 결과 월소득 600만원 이상 고소득 가구에서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하는 비율이 가장 낮았다. 생활시간조사 원자료(2004~2019년)를 분석한 한 연구는 아내의 소득기여도와 아내의 가사시간 사이에 U자형 관계가 나타나고 시간이 흐를수록 이 경향이 강해졌다고 밝혔다. 소득 비중만으로 가사 분담이 결정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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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격차는 줄었지만…맞벌이 아내 '더 일하고 덜 쉰다'

시간 사용 측면의 격차는 줄고 있다. 2004년 생활시간조사에서 맞벌이 아내의 하루 가사노동 시간은 3시간28분으로 남편(32분)의 6.5배에 달했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달 19일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자녀가 있는 맞벌이 청년(25~39세) 남성의 하루 가사·돌봄 시간은 2시간17분으로 10년 전(1시간14분)보다 1시간 넘게 늘었고, 여성은 4시간30분에서 4시간으로 줄었다. 격차는 3시간16분에서 1시간43분으로 좁혀졌다.

그러나 같은 집단에서 근로시간은 남편이 하루 1시간 길었던 반면, 근로와 가사·돌봄을 합친 시간은 아내가 8시간20분으로 남편보다 43분 많았다. 여가시간은 아내가 37분 짧았다. 가사 분담은 부부 관계와도 직결된다. 여성가족패널 자료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아내의 가사노동 시간 자체보다 남편과의 가사시간 격차가 커질수록 결혼만족도가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사 분담 실태를 담은 2026년 사회조사 가족 부문 결과는 연내 공개될 예정이다. 반도체 업황에 따라 성과급 규모가 크게 출렁이는 만큼 맞벌이 부부 간 소득 격차와 가사 분담을 둘러싼 논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