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국립국악관현악단 소속 연주자 A씨가 대학생 제자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약식기소됐다. 검찰은 벌금 300만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했다. A씨는 지난해 12월 제자들과의 송년 회식 자리와 인근 골목길에서 학생의 몸을 만지고 볼에 입을 맞춘 혐의를 받는다.

피해 학생은 미성년자였던 중학교 2학년 때부터 A씨에게 실기 수업을 받았다.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해당 대학에 강사로 출강한 A씨의 수업을 듣고 평가를 받았다. 학생은 경찰 조사에서 "A씨가 회식 자리에서 술을 얼마나 마시느냐에 따라 너의 성적이 달라진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사제 관계로 얽혀 있어 문제를 제기하면 향후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까 신고를 망설였다는 설명도 했다.

기술 전수의 개념과 전통적 도제식 교육 시스템이 남아 있는 예술교육 현장에서 스승은 특별한 존재다. 오랜 시간 함께 소리를 다듬고 무대를 준비한다. 학생의 재능과 약점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때로는 학생 자신보다 먼저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러나 가르치는 사람이 성적을 매기고 진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관계의 정의는 달라진다. 학생에게 스승의 판단은 한 학기의 점수를 넘어 미래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부당한 일을 겪더라도 관계가 틀어진 뒤 감당해야 할 일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권력은 반드시 노골적인 협박의 형태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상대가 자신의 앞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사람은 압도된다. 부당한 요구를 거절한 뒤 불이익을 받지 않을지, 문제를 제기하면 자신이 속한 리그에서 밀려나지 않을지 계산하게 된다.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3막의 배경이 되는 로마 산탄젤로성. 알렉산더 브률로프가 1820년대 그린 수채화. /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3막의 배경이 되는 로마 산탄젤로성. 알렉산더 브률로프가 1820년대 그린 수채화. /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1900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초연된 푸치니의 사실주의 오페라 '토스카'는 이런 압박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보여준다. 주인공 토스카는 이름난 가수다. 그의 연인 화가 카바라도씨는 친구이자 탈옥한 정치범, 안젤로티를 도왔다는 이유로 경찰에 붙잡힌다.

평소 토스카에게 흑심을 품은 경찰서장 스카르피아는 토스카에게 연인 카바라도씨를 고문하는 소리를 듣게 한다. 그리고 그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가로 성관계를 요구한다. 스카르피아는 토스카에게 선택권을 주는 듯 행동한다. 그러나 거절의 대가가 연인의 죽음이라면, 그것은 선택을 가장한 강요일 뿐이다.

토스카에게는 스카르피아의 요구를 한번만 받아들이면 사랑하는 카바라도시와 재회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라도 있다. 잔혹한 권력자가 내민 거짓 약속이지만, 절박한 순간 붙잡을 여지가 있었다.

반면 우리의 현실 속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알린 뒤 자신의 앞날부터 걱정해야 했다. 스승에게 입은 피해에 더해, 그 사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그들만의 리그에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감당해야 했다.

경찰서장 스카르피아의 공력과 스승의 제자 평가 권한은 막강한 권력이다. 우리는 오페라 '토스카' 속 이야기를 통해 상대의 삶을 좌우할 수 있는 권력에 성적 욕망에 동원될 때 어떤 비극이 초래되는지를 볼 수 있다.
2025년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SAC 오페라갈라' 공연에서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노래하는 소프라노 서선영 / 예술의전당 제공.
2025년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SAC 오페라갈라' 공연에서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를 노래하는 소프라노 서선영 / 예술의전당 제공.
푸치니는 자신이 쓴 '토스카'에서 현실의 폭력과 음악적 아름다움을 극단적으로 충돌시킨다. 작품 첫머리부터 불길하게 울리는 이른바 '스카르피아 화음'은 경찰권력과 폭력의 기운을 각인시킨다. 이후 스카르피아가 등장하거나 그의 영향력이 드리울 때마다 유도 동기처럼 반복된다. 그는 로마라는 실제 도시의 소리를 오페라 무대 위에 옮기기 위해 노력했다. 교회의 종소리와 새벽의 소리, 군중과 의식의 음악을 실제 로마의 것처럼 배치한다.

특히 1막 마지막 '테 데움(Te Deum)'에서는 성대한 종교 의식과 합창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스카르피아가 토스카를 향한 욕망과 음모를 드러낸다. 가장 성스러운 음악과 가장 세속적이고 폭력적인 권력자의 욕망을 한 장면 안에 겹쳐놓았다.
아돌포 호엔슈타인이 1899년 제작한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초판 피아노 악보 표지. Wikimedia Commons
아돌포 호엔슈타인이 1899년 제작한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 초판 피아노 악보 표지. Wikimedia Commons
2막에서는 카바라도시의 고문과 스카르피아의 협박으로 숨 가쁘게 달리던 음악이 토스카의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Vissi d'arte, vissi d'amore)' 앞에서 갑자기 멈춘다. 권력자의 요구에 쫓기던 여성이 비로소 자신의 삶과 억울함을 말할 시간을 얻는 순간이다.

스카르피아의 요구에 궁지에 몰린 장면에서 토스카는 이 아리아를 부른다. 제목처럼 예술과 사랑을 위해 살아온 자신에게 왜 이런 고통이 돌아오는지 신에게 묻는 아리아다. 푸치니는 작품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그녀에게 잠시 말할 시간을 허락한다.

토스카는 신에게 답을 구하는 이 아리아를 부른 뒤, 자신에게 달려드는 스카르피아를 칼로 찔러 살해한다. 그러나 현실의 학생들에게 이러한 선택은 불가능하다. 현실의 피해 학생에게 필요한 건 무기가 아니다. 피해를 신고한 후에도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신고할 용기를 피해자에게 요구하기에 앞서, 신고 이후에도 안전하게 배우고 활동할 수 있는 보호환경을 보장해야 한다.
오페라 '토스카'에서 카바라도씨 역으로 노래하는 테너 백석종 / 아티스트 제공.
오페라 '토스카'에서 카바라도씨 역으로 노래하는 테너 백석종 / 아티스트 제공.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1일부터 데이비드 맥비커가 연출한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를 공연중이다. 한국의 테너 백석종이 카바라도씨 역을 맡았다. 이 작품은 6일·9일·14일·17일·20일에도 공연된다.

오페라 속에서 등장할만한 권력형 성범죄 사건은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다. '토스카'는 우리에게 한가지 질문을 남긴다. "교육 현장 속 권력형 성범죄 피해자가 'NO'를 말한 뒤에도 자신의 미래를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은 가능한가."

조동균 기자

100~200년 전 탄생한 명작 오페라에는 오늘의 사건사고를 보는 듯한 비극이 담겨 있습니다. 스토킹과 교제살인, 빈곤과 계급 갈등, 가짜뉴스와 권력 남용까지. <오페라 사회학>은 시대를 넘어 반복되는 인간 사회의 비극과 모순을 오페라로 읽어봅니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