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교훈
1969년 석유를 발견한 것은 행운이었다. 하지만 그 돈을 미래 세대의 몫으로 남긴 것은 정치의 선택이었다. 이달 중순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만난 국부펀드 관계자가 공통으로 강조한 대목이다. 노르웨이 정치권은 재정준칙을 마련해 석유 관련 수입의 지출을 통제했고, 운용 기관에는 독립성을 보장했다. 그 결과 인구 560만 명의 작은 나라는 3000조원 규모가 넘는 국부펀드를 일궜다. 해운과 어업에 의지하던 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 10만달러에 육박하는 세계 최상위권 부국으로 도약한 것이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국민연금이 떠올랐다. 세계 최대 연기금 중 하나로 성장한 국민연금은 노르웨이 국부펀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큰손이다. 하지만 주어진 상황이 다르다. 지난해 연금 개혁으로 보험료율을 13%까지 높이기로 했지만 기금은 2070년 전후에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 기술 발달로 기대수명이 예상보다 더 길어진다면 연금 지급 부담은 한층 커질 수 있다.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려면 여러 주체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가입자는 보험료 부담을 늘리기로 했고, 기금운용본부는 장기 수익률 제고에 나섰다. 그러나 나머지 축인 정부와 정치권이 어떤 재정적 책임을 질 것인지에 대해선 논의만 분분하다.

반도체 호황으로 세수가 불어나면서 국회 안팎에서 제기된 선제적 재정 지원 논의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부터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1%를 국민연금에 투입하면 기금 소진 시점을 2069년에서 2100년으로 늦출 수 있다. 이에 비해 기금이 소진되는 2069년부터 같은 규모의 재정을 지원하면 소진 시점은 불과 1년 늦춰지는 데 그친다.

물론 재정 지원이 만능열쇠는 아니다. 보험료를 더 내고 급여 수준을 조정하는 구조개혁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어느 하나 쉬운 선택은 아니다. 국가 재정에는 한계가 있고, 당장의 부담을 늘리는 연금 개혁은 정치적으로 환영받기 어렵다. 하지만 어렵다는 이유로 미룬다면 미래에는 더 비싼 청구서가 날아온다. 국가의 연금급여 지급 보장 의무가 법제화한 만큼 정부의 책임을 구체화할 때도 됐다.

결국 정치의 몫이다.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성장기를 이끈 외위스테인 올센 전 중앙은행 총재는 재정준칙을 지탱하는 힘이 법적 강제력이 아니라 정치권의 자발적인 절제에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의 단기 수익률에 일희일비하거나 정치적 쟁점으로 삼는 데 그쳐서는 곤란하다. 정부와 정치권은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덜기 위해 무엇을 양보할 것인가. 국민연금을 영속하는 국부로 만드는 첫걸음은 이 질문에 답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