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나 이용객들이 뜨겁게 달궈진 나무 벤치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아더십
사우나 이용객들이 뜨겁게 달궈진 나무 벤치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아더십
세계로 웰니스 열풍이 이어지면서 뜨거워진 키워드 중 하나는 ‘사우나’다. 땀을 빼고 몸을 씻는 데 그치던 공간이 이제는 사람과 어울리고 휴식을 취하며 취향을 공유하는 장소로 변모하고 있다. 뷰티와 헬스케어는 물론 호텔, 부동산업계까지 사우나를 새로운 브랜드 경험으로 활용하는 추세다.

오랜 목욕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한국에 선 낯선 얘기가 아니다. 널찍한 온탕과 냉탕, 건식·습식 한증막은 익숙한 풍경이다. 소금·옥·열 사우나처럼 다양한 시설이 일찍부터 발달했다. 한국 목욕탕이 청결과 위생을 중심으로 발전했다면 해외에서는 익숙한 사우나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즐긴다는 점이 흥미롭다.

목욕탕에서 소셜 클럽으로

한국 목욕탕의 특징은 대중성이다. 남녀 공간을 분리하고 수영복 없이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냉탕 온도는 대체로 17~20도다. 서울에서는 호텔 회원제 사우나가 고급화된 시장을 형성하지만 지방에는 여전히 대규모 전통 목욕탕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강원 태백호텔 태백사우나는 좌식 세신 공간 약 50석, 샤워 부스 20여 개에 보석·소금 사우나 등 40~90도의 다양한 시설을 갖췄다.
냉수욕을 즐기는 사람들.
냉수욕을 즐기는 사람들.
유럽과 미국에서는 사우나를 사교 활동으로 즐기는 ‘소셜 사우나’가 확산하고 있다. 낯선 사람들이 함께 땀을 흘리고 가이드 진행에 따라 호흡과 명상, 냉수욕을 경험한다. 프랑스 파리의 ‘상 로크(SANT ROCH)’는 지난 10년간 찾은 전 세계 사우나 중 가장 난도가 높으면서도 소셜 사우나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사우나 가이드 구호에 맞춰 극한의 고온을 마치 혹독한 운동을 하듯 참아낸 뒤 순서대로 야외로 나가 4~5도의 극저온 콜드플런지에 몸을 담그고 3분간 버텨냈다. 뜨거움과 차가움이 교차하는 강렬한 감각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반면 영국 런던의 ‘아크 커뮤니티(ARC COMMUNITY)’는 한층 캐주얼하고 활기찬 분위기에서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미국 소셜 사우나 '아더십'.
미국 소셜 사우나 '아더십'.
미국으로 눈을 돌리면 소셜 사우나 대명사인 뉴욕의 ‘아더십(Othership)’이 있다. 나이, 인종, 언어를 초월한 사람들로 북적여 처음엔 고막이 울릴 정도지만 가이드 사우나가 시작되는 순간 거짓말처럼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정적에 휩싸인다. 냉탕 시스템 역시 유럽과 비슷한 극저온을 유지한다. 피트니스 브랜드 에퀴녹스도 운동 후 회복을 강조하며 사우나와 콜드플런지, 테라피 시설을 결합하고 있다.

같은 사우나, 다른 휴식

챗GPT
챗GPT
현대적인 소셜 사우나가 확산하는 가운데 유럽의 전통적인 목욕 문화도 여전하다. 스위스에서는 5성급 호텔에서도 남녀가 수영복을 착용하지 않고 함께 사우나를 이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달궈진 돌에 물을 끼얹어 증기와 열기를 발생시키는 핀란드의 전통 ‘뢰일리’ 방식도 널리 활용된다. 여기에 수건과 부채로 뜨거운 공기를 퍼뜨리는 ‘아우프구스(Aufguss)’ 퍼포먼스가 더해진다.
휴식하는 사우나 이용객들.
휴식하는 사우나 이용객들.
호주에서는 여러 사람과 어울리기보다 프라이버시를 강조한 공간이 눈에 띄었다. 특히 ‘엑스트라클럽(XTRA CLUB)’은 혼자보다 2인이 방문하길 추천하는 곳이다. 무인 시스템으로 운영돼 완벽한 휴식을 보장하며 뛰어난 청결도와 조용한 환경이 인상적이었다. 프라이빗 인프라레드(적외선) 사우나가 잘 갖춰져 있어 지인과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기에 최적이다. 냉탕도 4~5도와 10도 두 종류로 3개씩 마련돼 있다. 소셜 사우나가 사람과의 교류를 상품으로 만든다면 이곳은 방해받지 않는 휴식을 판매한다.

옆 나라 일본에서는 사우나가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로 진화하고 있다. 팬데믹을 거치며 프라이빗 사우나가 주목받았고 사우나를 소재로 한 만화 ‘사도(サ道)’도 젊은 층의 관심을 높였다. 일본 사우나 문화의 핵심은 ‘도토노우(ととのう)’다. 고온 사우나와 냉탕, 외기욕을 반복한 뒤 느끼는 상쾌하고 이완된 상태를 뜻한다. 오사카의 ‘데세(DESSE)’와 도쿄의 ‘사우나 도쿄(SAUNA TOKYO)’는 도토노우를 위해 다양한 온도의 시설과 시간제 이용 방식을 결합해 감각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SOAK 방콕 내부. /©김한균
SOAK 방콕 내부. /©김한균
여러 나라의 사우나를 경험하며 가장 흥미로웠던 건 같은 시설을 즐기는 방식이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유럽·미국에서는 사교와 집단 리추얼을, 호주에서는 프라이버시를, 일본에서는 감각적 체험을 강조한다. 뜨거운 사우나와 차가운 냉탕이라는 기본 구조는 비슷하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경험은 제각각이다.

한국에서도 사우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뷰티·헬스케어를 결합한 웰니스 시설부터 독자적 프로그램을 내세운 브랜드형 사우나, 호텔과 주거시설 가치를 높이는 공간 전략까지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오래된 동네 목욕탕의 가치를 잊을 필요는 없다. 넓은 탕과 다양한 한증막, 세신 문화, 이웃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분위기는 한국만의 자산이다. 해외에서는 새로운 사교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프로그램과 커뮤니티를 설계하지만 한국의 동네 목욕탕은 오래전부터 그런 역할을 했다. 어쩌면 한국 사우나의 미래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데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 미처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못한 목욕탕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김한균 웰니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Wave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