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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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시장에 때아닌 복고 바람이 불고 있다. 그 중심에는 11년 만에 부활한 롯데칠성음료의 ‘캪틴큐’(사진)가 있다. 마시면 다음 날 숙취가 없다는 전설의 술. 이유는 다음 날이 아니라 다다음 날 깨어나기 때문이라는 농담까지 따라다녔다. 그 ‘악명’ 덕분인지, 되살아나자마자 전 유통 채널에서 ‘완판’되며 시장에선 웃돈까지 붙었다.

11년 만에 돌아온 '전설의 술'…50년 전 추억까지 깨웠다
사실 캪틴큐는 과거에도 꽤나 인기 있던 제품이다. 1980년 출시 당시 700mL 한 병에 3000원. 소주가 260원이던 시절이니 결코 저렴하지 않았지만 첫해에만 1000만 병이 팔렸다. 이후 1991년 럼 원액을 빼고 향료만 남긴 제품으로 바뀌었고, 가짜 양주 제조에 악용된다는 오명을 쓰며 2015년 단종됐다. 그러나 유튜버들이 옛 캪틴큐를 밈으로 되살리면서 부활의 씨앗이 됐다. 이번에는 카리브해산 럼 원액을 버번·셰리 오크통에서 차례로 숙성한 진짜 럼으로 돌아왔다. 캪틴큐가 부활하자 애주가들은 다른 추억의 양주까지 줄줄이 소환하고 있다. 다시 만나고 싶은 그때 그 시절 술을 되돌아봤다.

50년 전 하이볼 ‘나폴레온’

①  해태주조 ‘나폴레온’
① 해태주조 ‘나폴레온’
캪틴큐와 쌍벽을 이룬 술이 1976년 해태주조가 출시한 ‘나폴레온’이다. 캪틴큐가 럼을 지향했다면 나폴레온은 프랑스 코냑을 꿈꿨다. 코냑은 와인을 증류해 오크통에서 숙성한 브랜디로, 나폴레옹은 6년 이상 숙성한 코냑의 등급을 뜻하기도 한다. 나폴레온은 원액 함량 20% 미만의 유사 양주였지만, 초기에는 프랑스 헤네시의 코냑 원액을 사용했다. 1980년대에는 국산 청포도를 증류·숙성한 원액을 넣어 ‘고급 포도원액 20% 함유’를 내세웠다. 이름에도 시대상이 담겼다. ‘캡틴큐’가 ‘캪틴큐’인 것처럼 ‘나폴레옹’ 대신 ‘나폴레온’으로 불렸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이 제정된 1986년 이전의 이름으로, 일본식 발음의 영향을 받았다는 해석도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당시 광고다. 진저에일과 1 대 3으로 섞고 얼음을 넣어 마시라는 레시피를 소개했다. 요즘 유행하는 하이볼을 이미 50년 전에 제안한 셈이다. 이후 국순당으로 넘어가 2009년 ‘나폴레온 로얄’로 재출시됐지만 2010년대 후반 다시 사라졌다.

성공의 상징 ‘베리나인 골드’

②  백화양조 ‘베리나인 골드’
② 백화양조 ‘베리나인 골드’
나폴레온보다 한층 고급스러운 양주로 기억되는 술은 ‘베리나인 골드’다. 전북 군산에 뿌리를 둔 백화양조의 대표 제품으로, 시작은 1976년 출시한 ‘죠지 드레이크’였다. 스카치 원액을 19.9% 넣은 제품이었는데, 위스키 명칭 사용이 문제가 되자 원액을 25%로 높인 ‘베리나인’이 등장했다. 이어 원액 30%를 담은 고급판 베리나인 골드가 나왔다.

당시 원액 30% 이상은 ‘특급 위스키’로 불렸다. 베리나인 골드는 1980년대 초반 특급 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인기를 누렸다. 1980년 8월 가격은 700mL에 1만5650원. 소주 약 60병 값이었다. 캪틴큐가 젊은이들의 작은 사치였다면 베리나인 골드는 아버지 세대의 성공을 상징하는 술이었다. 백화양조는 이후 원액 100%의 ‘베리나인 골드 킹’까지 내놨지만 OB씨그램의 ‘패스포트’에 밀렸다. 회사는 1985년 말 두산에 인수됐고, 주류 사업은 2009년 롯데로 넘어갔다.

이름과 다른 ‘도라지 위스키’

③  국제양조장 ‘도라지 위스키’
③ 국제양조장 ‘도라지 위스키’
최백호의 노래 ‘낭만에 대하여’에 등장하는 술도 있다. 비 오는 날 옛날식 다방에서 마시던 ‘도라지 위스키’다. 이름과 달리 도라지도, 위스키 원액도 들어가지 않았다. 뿌리는 일본 산토리의 저가 위스키 ‘토리스(Torys)’다. 1950년대 주한미군 배급품을 통해 알려진 뒤 부산 국제양조장이 1956년 ‘도리스 위스키’를 내놨다. 1960년 상표 도용 논란으로 사장이 구속되자 이름을 ‘도라지(Torage)’로 바꿨는데 오히려 더 인기를 끌었다.

주정에 일본산 위스키 향료와 색소를 섞은 술이었다. 그래도 ‘문화인의 양주’라는 광고와 함께 큰 병 170원, 작은 병 100원에 팔렸다. 다방에서는 차에 몇 방울을 떨어뜨린 ‘위티(whisky tea)’가 고급 메뉴로 통했다. 원액이 들어간 위스키에 밀려 1976년 사라졌지만, 노래 속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다. 40~50대보다 60~70대에게 더 익숙한 술이다.

우리말을 붙인 ‘길벗’

④  진로 ‘길벗 로얄’
④ 진로 ‘길벗 로얄’
당시에는 이름부터 독특한 술이 많았다. 진로의 ‘길벗’과 해태의 ‘드슈’가 대표적이다. 국세청이 시판 허가 조건으로 우리말 이름을 요구하면서 공모를 통해 탄생한 이름이다. 두 제품은 베리나인과 함께 위스키 원액 25% 시대를 열었다. 길벗은 ‘길벗 로얄’로 발전했고, 1977년 출시된 드슈는 700mL 6948원, 360mL 3650원에 팔렸지만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인삼 넣어 해외 겨냥 ‘진생’

해외 시장을 겨냥한 술도 있었다. 1970년대 정부가 주류 수출 실적에 따라 위스키 원액 수입을 허가하자 백화양조는 ‘진생 위스키’를 내놨다. 위스키 원액과 주정에 인삼 뿌리를 통째로 넣어 우려낸 술로, 주세법상 인삼주로 분류됐다. 진로의 ‘에릭사’도 비슷한 제품이었다. 시장 반응은 미미했지만 한국적 재료로 해외 시장을 공략하려고 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⑤  해태주조 ‘드슈’
⑤ 해태주조 ‘드슈’
이 술에는 공통점이 있다. 상당수가 위스키나 럼을 표방했지만 실제 원액 함량은 낮다는 것이다. 배경에는 당시의 높은 주세율이 있다. 정부는 1974년 위스키 주세율을 250%까지 높였고, 이듬해 200%로 낮췄다. 원액이 20% 이상이면 위스키로 분류돼 높은 세금을 물었지만, 20% 미만의 기타재제주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낮았다. 업체들이 원액을 19.9%만 넣은 술을 쏟아낸 이유다. 정부가 원액 기준을 25%, 다시 30%로 높이면서 ‘1급’과 ‘특급’이라는 등급도 등장했다. 하지만 특급 위스키조차 원액은 30% 남짓이었다. 나머지 대부분은 주정이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이름만 양주인 제품이 적지 않았던 셈이다.

그런 술들이 수십 년이 지나 다시 관심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의 맛이 뛰어나서라기보다 술에 얽힌 기억과 이야기가 살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캪틴큐의 부활은 오래된 브랜드가 오늘날의 콘텐츠와 만나 새로운 상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다음 복고 열풍의 주인공도 한때 흔하게 마시다가 어느새 사라진 술 가운데 있을지 모른다.

명욱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 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Wave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