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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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조직이다 보니 과거에는 데이터도 보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AI) 등 지금 겪고 있는 변화의 폭이 워낙 큰 만큼, 앞으로는 과거 데이터에만 매몰되기보다 미래 변화를 적극적으로 전망하고 선제적으로 통화정책을 펼쳐야 할 상황이 많이 올 것입니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실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온 박종우 부총재보가 이임식을 끝으로 30년8개월간의 한은 생활을 마무리했다. 1996년 입행한 박 부총재보는 2013년부터 통화정책 핵심 보직을 두루 거치며 통화정책국 정책총괄팀장, 금융시장국장, 통화정책 담당 부총재보를 차례로 역임한 대표적 ‘통화정책통’이다.

박 부총재보는 이날 한은에서 이임사에서 “은행의 지원으로 유학을 떠나 학업을 마치고 아내를 만나 46세에 늦둥이 딸을 얻어 ‘딸바보 아빠’가 되기까지 한은은 내게 참 많은 것을 준 곳”이라고 돌아봤다.

30여 년의 한은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세 가지 순간으로 그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2021년 선제적 기준금리 인상 △2024년 말 비상계엄 사태 당시 시장 안정화 조치를 꼽았다.
그는 먼저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임시 금통위를 열어 기준금리를 대폭 인하하고 금융지원책을 마련했던 과정을 언급하며 “미증유의 위기 속에서 기획재정부·금융당국과 한은 사이에 정책 공조에 대한 컨센서스가 형성됐고, 결과적으로 좋은 전례를 만들었다”고 돌아봤다.

특히 박 부총재보는 2021년 8월 주요국 중 가장 먼저 단행한 기준금리 인상을 두고 “30년 은행 생활을 하면서 ‘밥값은 했구나’라고 느끼는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 국제기구에서도 우려를 표명하고 미국 중앙은행(Fed) 등도 우리와 반대 방향의 커뮤니케이션을 하던 상황이라 결정이 쉽지 않았다”면서도 “2020년 말부터 내부 검토를 거쳐 2021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인상을 준비해 선제적으로 대응한 결과, 다른 나라보다 금리를 적게 올리면서도 인플레이션을 빨리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금리 인상 결정 직전 주말의 비화도 공개했다. 박 부총재보는 “금통위 전주 토요일 오후 4시께 당시 이주열 총재님께서 마지막까지 고심하시다가 전화를 주셔서 ‘실무진 판단이 맞는 것 같다, 해야겠다’며 금통위원 설득과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잘 준비하라고 하셨던 순간이 생생하다”며 “그때 첫 단추를 잘 끼운 덕분에 한은이 이후 ‘올해의 중앙은행상’도 수상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데이터 넘어 선제적 통화정책 펼쳐야"…'통화정책통' 박종우 한은 부총재보 퇴임
마지막 장면으로는 비상계엄 사태를 꼽았다. 그는 “입행 후 24시간 꼬박 밤을 새워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고 초 단위로 기억이 생생하다”며 “2020년 코로나19 위기 대응 경험이 큰 자산이 돼 하루 만에 금융시장국장, 통화정책국장 등이 전광석화처럼 시장안정화 방안을 마련하고 전례 없는 라디오·유튜브 출연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시장을 안정시켰다”고 평가했다.

박 부총재보는 후배들에게 급변하는 경제 환경에 맞춘 ‘능동적 변화’를 당부했다. 그는 “AI 확산 등 과거에 보지 못했던 숫자와 급격한 경제 변화를 마주하고 있는데,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와 통화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며 “판단은 신중해야겠지만 과거의 틀을 넘어 앞으로 다가올 변화를 적극적으로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정책을 수행해 달라”고 주문했다.

신현송 한은 총재는 이날 이임식에 참석해 박 부총재보가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통화정책과 금융시장 대응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고인플레이션 국면, 미국 관세 정책과 비상계엄 사태, 최근의 AI 투자 붐에 이르기까지 전례 없는 충격이 이어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면서도 과감한 정책 판단이 요구됐다”며 “어려운 고비마다 금융통화위원회의 판단을 든든하게 뒷받침해 온 집행부의 중심에 박 부총재보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신 총재는 이어 “비은행 금융기관을 공개시장운영 대상에 포함시키고 무위험지표금리(KOFR) 활성화를 본격 추진하는 등 긴 안목에서 통화정책 운영 체계를 발전시키는 데도 힘썼다”며 “경제 지표의 이면을 읽어내는 뛰어난 직관과 성찰, 소신 있는 판단과 추진력은 정책 결정에 큰 힘이 됐다”고 강조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