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없이 지붕만 얹은 아만다리의 로비 / 사진. © 진세인
벽 없이 지붕만 얹은 아만다리의 로비 / 사진. © 진세인
아융강 협곡을 내려다보는 메인 풀. 1989년 발리에 처음 만들어진 인피니티 풀이다. / 사진. © 진세인
아융강 협곡을 내려다보는 메인 풀. 1989년 발리에 처음 만들어진 인피니티 풀이다. / 사진. © 진세인
럭셔리 리조트들은 침대가 아니라 이야기를 판다. 럭셔리 리조트 공간을 이용하는 수요자들에게 같은 바다, 같은 수영장, 같은 침구를 몇 배 값에 팔려면 이야기는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된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리조트마다 다르게 생겼다. 어떤 곳은 건축가가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 환상으로 짓고, 어떤 곳은 사라진 왕국을 다시 세우고, 어떤 곳은 땅에 이미 있던 것을 그대로 둔다. 직접 묵어본 리조트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보려 한다. 첫 번째는 발리 우붓의 아만다리다. 최상급 럭셔리 리조트 ‘아만’의 두 번째 리조트이기도 하다.
로비 앞 길. 행렬이 지나는 자리 위로 지붕을 잘라 하늘을 열어두었다. 리조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의례의 길. 로비 옆에서 시작해 129개의 계단으로 협곡 아래까지 이어진다. / 사진. © 진세인
로비 앞 길. 행렬이 지나는 자리 위로 지붕을 잘라 하늘을 열어두었다. 리조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의례의 길. 로비 옆에서 시작해 129개의 계단으로 협곡 아래까지 이어진다. / 사진. © 진세인
아만다리에는 로비를 가로지르는 길이 하나 있다. 폭 1m 남짓한 129개의 돌계단이 리조트 한가운데를 지나 협곡 아래로 내려가는데, 투숙객용 산책로가 아니라 케데와탄 마을 사람들이 6개월에 한 번씩 성수를 길으러 내려가는 의례의 길이다.
사당. 계단 끝의 샘 위에 선 사당 셋. 케데와탄 마을 사람들이 6개월마다 성수를 길으러 내려오는 곳이다. / 사진. © 진세인
사당. 계단 끝의 샘 위에 선 사당 셋. 케데와탄 마을 사람들이 6개월마다 성수를 길으러 내려오는 곳이다. / 사진. © 진세인
계단 끝에는 샘이 있고, 샘 위에는 사당 셋과 7세기에 새겨진 돌 호랑이가 있다. 전설은 이렇다. 5세기에 북인도에서 온 현자가 명상 중에 빛을 보았고, 그 빛을 따라와 닿은 곳이 이 샘이었다. 발리에서 처음 힌두교가 시작된 자리라고 전해지고, 그래서 마을 이름 케데와탄은 '신들의 자리', 리조트 이름인 아만다리는 '평화와 천상의 존재'라는 뜻이다.

1,500년 동안 행렬이 이 길을 지났고, 하룻밤에 수백만 원을 받는 이 리조트는 그 길을 막지 않았다. 건축가에게 길 위에 건물을 짓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고, 행렬이 지나는 자리 위로는 하늘이 열리도록 지붕을 잘라냈다. 아만다리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한다.
마을 길. 아만다리로 들어가는 마을 길. 문주도 진입로도 없이 이 길에서 바로 리조트로 들어선다. / 사진. © 진세인
마을 길. 아만다리로 들어가는 마을 길. 문주도 진입로도 없이 이 길에서 바로 리조트로 들어선다. / 사진. © 진세인
이 리조트는 마을 바깥의 땅에 세워진 게 아니라 발리의 한 마을 속에 들어와 있다. 그래서 입구가 없다시피 하다. 럭셔리 리조트라면 으레 세우는 거대한 문주도, 긴 진입로도 없이 마을 길에서 바로 들어선다. 안내를 받아 몇 걸음 걸으면 벽 없이 지붕만 얹은 로비가 나오는데, 발리 마을마다 있는 공동 공간 '완틸란', 마을 회의와 의례와 잔치가 열리는 그 집의 형식을 한 로비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완틸란 형식의 로비. 지붕 아래에 서면 협곡과 건너편 절벽이 한눈에 들어온다. / 사진. © 진세인
완틸란 형식의 로비. 지붕 아래에 서면 협곡과 건너편 절벽이 한눈에 들어온다. / 사진. © 진세인
그리고 그 지붕 아래에 서는 순간 아융강 협곡과 건너편 절벽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문을 크게 세우는 대신 풍경을 크게 세웠다.

이 리조트의 구상은 아만보다 먼저 있었다. 호주 건축가 피터 뮐러는 1970년부터 발리 고지대 마을의 형식을 그대로 옮긴 리조트를 생각하고 있었다. 1950년대 시드니 웨일비치의 주택들로 호주 유기적 건축의 대표 인물이 됐고, 발리에 살며 오베로이 발리를 지은 사람이다.

당시 우붓은 지금 같은 관광지가 아니었고, 해변을 두고 내륙으로 들어올 여행자가 있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답을 알고 있었지만, 같은 답을 가진 파트너를 만나기까지 거의 20년이 걸렸다.

1988년 푸켓에 아만푸리를 연 아드리안 제차가 두 번째 땅을 찾다가 그 구상을 알아봤고, 뮐러는 설계안을 8일 만에 그렸다. 20년을 생각한 사람의 8일이었다. 그는 설계자이면서 이 리조트의 창업 투자자 중 한 명이기도 했는데, 1988년 4월부터 1989년 10월까지 현장에 살면서 발리 건축과 졸업생들로 현장 사무소를 꾸렸고, 공사에 투입된 600명의 인부는 대부분 마을 사람이었다. 그중 250명이 여성이었다. 석공과 목각 장인은 주변 마을에서 왔고, 커튼과 침구의 직물도 현지에서 짰다. 마을의 사람들과 함께 이 리조트를 지은 것이다.
잔디 언덕과 담장. 계단식 논의 등고선을 그대로 살린 지형과 파라스 스톤 담장. 담장 안쪽이 객실이다. / 사진. © 진세인
잔디 언덕과 담장. 계단식 논의 등고선을 그대로 살린 지형과 파라스 스톤 담장. 담장 안쪽이 객실이다. / 사진. © 진세인
뮐러는 호텔을 마을처럼 꾸미는 게 아니라 마을의 규칙으로 호텔을 지었다. 개관 당시 한 건축 전문지는 그가 개별 방갈로의 집합 대신 담장이 늘어선 골목이 있는 호텔 마을을 원했다고 기록했다. 발리 마을의 규칙은 담장이다. 집은 담장으로 둘러싸이고, 담장에는 게이트가 하나 있고, 게이트를 지나면 마당이 있고, 마당 안에 건물이 흩어져 있다. 그는 이 단위를 그대로 객실로 삼았다. 완틸란 로비에서 안산암 자갈길이 골목처럼 갈라져 나가고, 길 양쪽에 파라스 스톤 담장이 서 있고, 담장마다 석조 게이트가 하나씩 뚫려 있는데 그 안쪽이 객실이다.
논 테라스 한 단의 윤곽을 따라 굽은 메인 풀. / 사진. © 진세인
논 테라스 한 단의 윤곽을 따라 굽은 메인 풀. / 사진. © 진세인
리조트가 자리한 부지는 계단식 논이었고, 뮐러는 그 등고선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써서 건물이 아래 논에서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메인 풀도 테라스 한 단의 윤곽을 따라 굽어 있다. 발리 최초의 인피니티 풀이다.
담장 내부, 3면이 열리는 알랑알랑 지붕을 얹은 복층 풀 스위트. 1층은 거실, 2층은 침실이다. / 사진. © 진세인
담장 내부, 3면이 열리는 알랑알랑 지붕을 얹은 복층 풀 스위트. 1층은 거실, 2층은 침실이다. / 사진. © 진세인
개관 당시 객실은 28채, 그중 16채가 복층이었고, 지금은 서른 채가 서로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놓여 있다. 객실의 비례는 멩위의 타만 아윤 사원 옆에 있는 작은 마을 회관에서 가져왔고, 영리함은 담장 내부에서 자유롭게 자연을 향해 열린 세 면을 여닫는 미닫이에 있었다. 뮐러의 아내 캐롤과 우붓에 살던 화가 사이먼이 만든 스크린, 일본식 미닫이창, 그리고 담장. 발리의 비례와 일본의 개구부와 마을의 담이 한 채 안에서 만난다.

필자가 묵은 집의 이름은 복층 구조의 아스마라였다. 인도네시아어로 사랑이라는 뜻이고, 산스크리트의 스마라, 사랑의 신 카마에서 온 말이다. 게이트를 지나면 담장이 마당을 두르고 그 마당에 수영장과 복층 집이 나란히 있다.
 아스마라 스위트의 거실. 세 면의 미닫이를 열면 마당과 하나로 이어진다. / 사진. © 진세인
아스마라 스위트의 거실. 세 면의 미닫이를 열면 마당과 하나로 이어진다. / 사진. © 진세인
 아스마라 스위트의 테라스. 담 너머로 논과 협곡이 보인다. / 사진. © 진세인
아스마라 스위트의 테라스. 담 너머로 논과 협곡이 보인다. / 사진. © 진세인
아래층은 거실, 위층은 침실이라 평면 자체는 단순한데, 아침에 미닫이를 다 열면 실내와 마당의 경계가 사라지고 담 밖의 아름다운 논과 협곡이 실내로 쏟아지는 듯 하다.

같은 금액대의 발리 신축 럭셔리 리조트의 빌라들과 비교하면 조금은 소박한 집이지만, 규모를 벗어나 잘 계획된 평면 구성 덕에 낡아 보이지 않는다.

담장이 있어서 세면의 문을 모두 열면 드넓은 마당이 온전한 내 것이 되고, 담장 바깥의 골목과 마을과 의례의 길은 남의 것으로 남는다. 안팎이 분명하니 바깥의 이야기를 굳이 지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뮐러가 의례의 길을 막지 않을 수 있었던 데에는 관대함보다 담장이라는 장치의 덕이 컸을 것이고, 그 장치가 길과 객실을 동시에 존재할 수 있게 한다.
티크와 코코넛 목재로 짠 침실. 천장과 벽에 카마산 회화가 걸려 있다. / 사진. © 진세인
티크와 코코넛 목재로 짠 침실. 천장과 벽에 카마산 회화가 걸려 있다. / 사진. © 진세인
재료는 전부 이 섬에서 났다. 담장과 벽은 발리 강가에서 캐는 화산 응회암 파라스. 무르고 가공이 쉬워 발리 사원 조각의 기본 재료인데, 아만다리는 이 돌에 이끼가 끼도록 내버려두었다. 지붕은 대나무 뼈대 위에 알랑알랑 억새를 여러 겹 얹었고, 구조와 실내는 인도네시아 티크와 코코넛 목재, 욕실은 티크와 자바산 대리석이다. 가구는 호주 디자이너 네빌 마시의 디자인이지만 현지 공방이 만들었고, 발리의 석조와 목각 전통에서 형태를 가져왔다. 또 객실에 TV가 없다. 발리 가정집을 그대로 옮긴다는 설계 의도 때문이다.
대나무 서까래와 티크 벽. 객실에 TV는 없다. / 사진. © 진세인
대나무 서까래와 티크 벽. 객실에 TV는 없다. / 사진. © 진세인
지금은 발리 어느 리조트에서나 보는 코코넛 목재 기둥, 카마산 회화 걸개, 객실에 놓인 사원용 사롱이 모두 여기서 처음 나왔다.

새 리조트는 돈으로 재료를 살 수 있어도 재료가 보낸 시간은 살 수 없다. 37년 동안 이끼가 자란 담장, 모서리가 둥글어진 대리석, 손때 묻은 티크 난간. 아만다리에서 가장 비싼 것은 추가된 것이 아니라 그대로 시간 속에 누적되어 남겨진 것들이다.

머무는 동안 가장 오래 남은 건 건축보다 장면들이었다. 마을 아이들이 리조트 안에서 자연스럽게 놀다가 연못가 파빌리온에 앉아 대나무 실로폰 린딕을 두드리고, 다른 날에는 또다른 자리에서 발리 전통 무용 수업을 하고 있었다. 투숙객을 위한 공연이 아니라 마을 아이들의 방과 후 교실이 리조트 안에서 열리는 것이고, 이 리조트가 생길 때부터 춤을 배운 아이들이 지금은 자기 아이들을 보낸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의례의 길을 따라 협곡으로 내려가는 길. 리조트 담장을 벗어나면 야자수 숲 사이로 흙길이 이어진다. / 사진. © 진세인
직원의 안내를 받아 의례의 길을 따라 협곡으로 내려가는 길. 리조트 담장을 벗어나면 야자수 숲 사이로 흙길이 이어진다. / 사진. © 진세인
어느 아침에는 그 의례의 길을 직접 걸어 내려갔다. 로비 옆 돌계단을 따라 협곡 쪽으로 내려가면 리조트의 담장은 금세 뒤로 물러나고, 야자수 숲 사이로 좁은 흙길이 이어진다. 그 길에서 만나는 건 투숙객보다 마을 사람들이었다. 밭일을 가는 사람, 사당에 올릴 제물을 손에 든 사람과 인사를 나누며 걷다 보면, 어디까지가 리조트이고 어디부터가 마을인지 경계를 짚기 어려워진다. 길 끝에서 주황색 천을 두른 사당과 샘을 만났을 때, 매일 지나던 로비의 계단이 이곳까지 이어져 있었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손님이 없는 시간의 로비. 직원 대부분이 케데와탄 마을 사람이다. / 사진. © 진세인
손님이 없는 시간의 로비. 직원 대부분이 케데와탄 마을 사람이다. / 사진. © 진세인
리조트로 돌아오면 직원들은 손님이 없는 틈에 자기들끼리 편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직원 대부분이 케데와탄 마을 사람이고 개관 때부터 일한 이들이 아직 있으니, 이 사람들에게 이곳은 직장이기 전에 자기 마을이다. 그래서 리조트 안에 있어도 호텔에 있다는 느낌보다 누군가의 마을에 잠시 들어와 쉬고 있다는 감각이 먼저 다가온다. 그 느슨함 속에서도 객실은 내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어김없이 정리되어 있었고, 필요한 게 있을때면 미소지으며 직원이 다가온다. 마을의 호젓함과 호텔의 정밀함이 같은 담장 안에서 돌아간다. 오후 네 시가 되면 리조트에 마을 사람들이 발리 전통 디저트를 들고 와 애프터눈티를 제공한다. 이 리조트를 지은 사람들이 지금 이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고, 리조트는 그 마을의 생활권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
오후의 메인 풀 데크. / 사진. © 진세인
오후의 메인 풀 데크. / 사진. © 진세인
뮐러는 2023년 95세로 세상을 떠났다. 아만에서 그가 설계한 곳은 이 한 곳뿐인데, 그 한 곳이 이후 모든 아만의 원형이 됐다. 작고, 낮고, 비어 있고, 땅의 규칙을 따르는 것. 개관 직후 한 건축 전문지는 이곳이 '발리 리조트 개발의 미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썼고, 그 예측은 맞았다. 아만다리는 이후 후발 주자들에게 둘러싸였고, 객실 설비만 비교하면 이제 가장 화려한 곳은 아니다. 그런데도 발리에서 가장 비싼 밤을 파는 리조트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서른 채 안팎의 밀도를 37년 동안 지켜온 섬세한 운영의 결정이 그걸 가능하게 한다.

리조트마다 이야기가 있다면, 아만다리의 이야기는 어떻게, 또 무엇을 지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남겨 두었느냐의 이야기다. 길을 막지 않았고, 마을을 옮기지 않았고, 이끼를 닦지 않았다.

그 세 가지 하지 않음이 37년 뒤에 이 섬에서 가장 비싼 밤이 됐다. 로비를 가로지르는 그 돌계단은 오늘도 열려 있다. 흰옷을 입은 마을 사람들이 제물을 머리에 이고 투숙객 사이를 지나, 1,500년 전 빛이 떨어졌다는 샘으로 내려간다. 리조트가 연출해 만든 장면이 아니라 막지 않아서 남은 장면이고, 그 장면 하나가 이 리조트의 서사가 되고 납득이 가는 가격표가 된다.
아만다리(Amandari)

위치: 인도네시아 발리 기아냐르군 우붓 케데와탄(Jl. Raya Kedewatan)
교통: 응우라라이 국제공항에서 차로 약 1시간 30분, 우붓 중심가에서 15분
개관: 1989년 10월 (아만 리조트의 두 번째 리조트)
건축: 피터 뮐러(Peter Muller, 1927~2023) | 조경: 메이드 위자야 | 가구: 네빌 마시
시설: 협곡 가장자리 32m 메인 풀, 레스토랑·바, 스파, 테니스 코트, 도서관, 매일 오후 마을 아이들의 발리 무용·린딕 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