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철도공단이 건설한 서해선 삽교고가에 열차가 힘차게 달리고 있다. /국가철도공단 제공
국가철도공단이 건설한 서해선 삽교고가에 열차가 힘차게 달리고 있다. /국가철도공단 제공
철도건설 설계심의에서 검은 봉투를 건넨 대가가 두 배로 커졌다. 기술형 입찰에서 참가 업체가 심의위원에게 금품을 건넨 사실이 드러나 법적으로 확정되면, 그 업체는 기존 위약금의 두 배를 내야 한다. 이를 신고한 사람에게는 포상금이 돌아간다. 국가철도공단이 지난달 개정한 청렴 신고포상제 가이드라인의 내용이다.

◇청렴시민감사관 제도 첫 도입

26일 국가철도공단에 따르면 위약금 상향은 공단이 올해 걸어 잠근 청렴 빗장의 하나일 뿐이다. 신고포상제의 감시망은 기술인평가서 평가(SOQ)까지 확대됐고, 퇴직자 전관예우의 고리를 끊기 위해 심의위원 구성도 손봤다. 외부 전문가가 심의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는 청렴시민감사관 제도도 새로 도입했다. 돈(신고포상)과 사람(위원 구성), 눈(외부 감시) 세 갈래로 비리가 파고들 틈을 막겠다는 것이다. 기술형 입찰은 가격뿐 아니라 업체가 낸 설계의 기술력을 심의위원이 평가해 낙찰자를 가린다. 심의위원의 평가가 수천억원짜리 국책사업의 낙찰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구조다. 정부도 지난 2023년 국민 안전 강화를 위한 건설 카르텔 혁파 방안의 하나로 억대 신고포상제를 추진했다. 공단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첫 번째 빗장은 돈이다. 비리를 저지르면 반드시 손해를 본다는 계산이 서도록 하는 장치다. 이번 개정으로 기술형 입찰에서 비리가 적발된 업체의 위약금은 설계금액의 5%에서 10%로 두 배로 뛰었다. 신고자는 비리 업체에서 받아낸 위약금에서 소송비 등 실제 비용을 뺀 금액의 최대 50%를 포상금으로 받는다. 국민권익위원회 운영지침상 부패신고 보상금 지급한도가 3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수준이다. 포상금에는 세금이 한 푼도 들어가지 않고, 비리 업체에서 받아낸 위약금이 그대로 재원이 된다.

두 번째 빗장은 사람이다. 비리는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싹튼다. 건설엔지니어링 종심제에서는 일부 공단 내부위원이 심사에 반복적으로 참여하면서 퇴직자 또는 특정 업체와 연결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같은 얼굴이 심사석에 거듭 앉다 보면 이른바 전관예우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공단은 칼끝을 내부로 돌렸다. 지난해 4월 KTX 개통 22주년을 맞아 국토교통부, 한국철도공사, SR, 한국철도기술연구원과 연 청렴결의대회에서 종심제 위원 구성 개편안을 내놨다. 종심제 내부위원 참여 비율을 50%에서 30%로 낮추고, 제3기 종심제 위원을 꾸릴 때 기존 공단 소속 위원을 대거 교체하기로 했다. 빈자리는 전문성·공정성·성실성을 종합적으로 따져 채웠다.

개편은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았다. 공단은 국토교통부 주관 전관예우 근절 TF에서 도출한 과제를 토대로 지난 5월 전관예우 근절 종합대책을 세웠다. 사람을 바꿔 유착의 통로를 좁히고, 돈으로 비리의 대가를 키우는 두 대책이 한 방향으로 맞물린 셈이다.

세 번째 빗장은 눈이다. 공단은 기술형 입찰과 용역 종심제 기술심의에 청렴시민감사관 제도를 도입했다. 교수·변호사 등 외부 전문가를 감사관으로 위촉해, 독립적인 지위에서 심의위원회 전 과정을 감시·평가하도록 했다. 우리끼리의 심의에 바깥의 시선을 들여와 부패를 미리 막겠다는 것이다. 이는 심의위원에게는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긴장감을, 입찰 업체에는 공정한 경쟁에 대한 믿음을 주는 장치다.

◇처벌을 넘어 예방으로

돈으로 비리의 값을 올리고, 사람을 바꿔 유착의 통로를 좁히고, 외부의 눈으로 심의의 창을 열었다. 공단의 청렴 행보는 비리가 생긴 뒤 벌주는 데 그치지 않고, 비리가 싹틀 토양 자체를 바꾸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수천억원대 국책사업을 다루는 공공기관이 가장 민감한 고리인 설계심의부터 손을 댔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정진혁 국가철도공단 이사장은 “청렴은 구호가 아니라 제도와 실천으로 증명해야 한다”며 “설계심의부터 조직 운영까지 비리가 발붙일 틈을 원천적으로 없애 국민이 믿고 맡길 수 있는 공단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대전=임호범 기자 lh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