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양도·대여 소득에 대한 과세가 또다시 유예될 전망이다. 과세 시행일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예정대로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의견과 준비가 덜 됐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자 청와대가 유예로 가닥을 잡고 교통정리에 나선 것이다.
정부가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가상자산 소득 과세를 유예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가상자산 거래에 대한 정보 교환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빗썸라운지. 최혁 기자
정부가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가상자산 소득 과세를 유예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가상자산 거래에 대한 정보 교환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빗썸라운지. 최혁 기자

◇과세 시행 세 차례나 미뤘는데

정부는 당초 소득세법에 따라 가상자산 양도·대여로 발생하는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하고, 내년 1월 1일부터 과세할 계획이었다. 연간 250만원을 공제한 뒤 20% 소득세율로 분리 과세하는 방식이다.

가상자산 과세는 2020년 소득세법 개정으로 처음 제정됐다. 다만 과세 인프라 구축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 등에 따라 2022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2021년 여전히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시행을 2023년으로 미뤘고, 2022년 ‘테라·루나 사태’가 터지자 2025년으로 재차 연기했다. 2024년엔 금융투자소득세가 폐지되자 ‘왜 가상자산에만 세금을 매기냐’며 반발이 일었고, 과세 시행은 2027년으로 또다시 유예됐다.

정부는 과세 시행이 세 차례나 미뤄진 만큼 이번에는 예정대로 과세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또 미루면 조세 예측 가능성과 신뢰도를 떨어뜨릴 것으로 우려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에 따라 다른 투자 소득과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는 것도 정부가 시행을 주장한 이유다. 미국 일본 영국 독일 등 48개 국가가 가상자산에 세금을 매기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과세 인프라를 꾸준히 확충한 데다 시행 후 지속적으로 정비하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여당에서도 일부 의원은 같은 생각이었다.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2일 국정감사에서 “국회에서 여야 간 합의해 의결한 법률에 대해 다른 의견을 내면서 유예하는 건 대한민국의 기본을 흔드는 것”이라며 “이미 확정된 법을 흔들면 무엇을 믿고 국가를 운영할 수 있겠느냐”고 우려했다.

◇여론 반발에 또 물러설 듯

청와대가 과세 시행 추가 유예로 가닥을 잡은 표면적 이유는 국내 거래소를 이용하는 투자자와 미국 등 해외 거래소를 거친 투자자 간 과세 형평의 문제다. 내년부터 국제 협정에 따라 가상자산 정보를 국가 간 자동으로 교환하는 제도(CARF)가 시행되는데 미국은 2029년부터 참여한다는 것이 걸림돌이다. 당장 내년부터 2년간은 미국 거래소를 이용한 투자자의 과세 정보를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국내 거래소 이용자만 세금을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가상자산 거래 방식이 다양해진 것도 유예 이유로 꼽힌다. 양도 및 대여 중심의 과세 체계로는 스테이킹 보상, 탈중앙화금융(DeFi)을 통한 수익, 가상자산 간 교환 등 새로운 거래 구조를 반영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추가 유예의 진짜 이유는 여론 반발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지난 5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가상자산 과세 유예 또는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 올라왔고, 두 건 모두 5만 명 이상 동의를 얻어 국회 심사 요건을 충족했다. 특히 가상자산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청년층의 지지율 하락을 고려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최종 결론은 11월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 의원은 최근 앞다퉈 가상자산 과세 유예 또는 폐지 법안을 발의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2년 유예,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은 3년 유예 법안을 내놨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폐지 법안을 발의했다.

여당 기류도 바뀌었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22일 “(가상자산) 과세를 원칙대로 하려다가 최근 다양한 의견이 많아 집중 점검해보려 한다”며 “과세를 그대로 할 건지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 제도를 보완할 것인지 논의해 연내 결론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규/한재영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