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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진으로 그림 그리듯, AI로 논문 쓰는 시대
박종민 경희대 미디어학과 교수·前한국언론학회장
친구와 나는 자연스럽게 오래된 화제로 돌아갔다. 화가가 사진을 참고해 그림을 그리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사실 화가들이 광학기술의 도움을 받은 역사는 오래됐다. 17세기부터 일부 화가들은 렌즈를 통해 외부 풍경을 투사하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그림 작업에 활용했다. 사진술이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기계의 눈을 빌려 세상을 관찰한 셈이다. 소로야 역시 사진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사진가였던 장인의 영향이 컸고, 실제 사진을 회화의 참고자료로 활용하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묘한 일이다. 화가의 뛰어난 관찰력과 정교한 묘사 능력에 감탄하다가도, 그가 사진이나 광학기구를 활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딘가 허망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오늘날 학문과 글쓰기의 세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인공지능(AI)의 등장이다. 과거 연구자가 논문 한 편을 쓰기 위해서는 수많은 문헌을 찾아 읽고, 자료를 분석하고, 문장을 다듬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제 AI는 이런 작업을 단 몇 분 만에 처리한다.
이를 지켜보는 학자도 사진을 처음 접한 화가의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평생 갈고닦은 지적 능력의 일부를 기계가 대신한다는 사실은 편리하면서도 허무하다. 그러나 사진을 활용한다고 모두가 훌륭한 화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사진을 보더라도 무엇을 강조하고, 어떤 색채를 선택하며, 무엇을 생략할 것인지는 화가의 몫이다. 사진이 사물의 외형을 포착할 수는 있어도 그 사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는 결정하지 못한다.
AI를 활용한 논문 쓰기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연구할 가치가 있는 문제로 볼 것인지, 기존 설명에서 무엇을 의심할 것인지, 분석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는 여전히 연구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AI가 제시한 정보의 진위를 검증하고 연구 결과에 책임지는 일도 연구자의 몫이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능력을 없애기보다 인간에게 요구되는 능력의 중심을 이동시키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사진이 회화를 사라지게 하지 않았듯, AI도 학문적 사유 자체를 불필요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기술이 인간의 창작과 사고를 어디까지 대신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열린 질문이다. AI가 인간의 판단 영역까지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사진의 등장보다 훨씬 근본적인 변화일 수도 있다.
전시관을 나서며 다시 생각했다. 사진을 참고해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AI를 활용해 논문을 쓰는 학자. 두 사람 사이에는 한 세기가 넘는 시간적 거리가 있지만, 마주한 질문은 닮아 있다. 기계가 우리의 일을 대신할수록, 인간은 무엇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가. 어쩌면 이것이 기술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이 끊임없이 마주해야 할 세상의 이치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