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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정부가 첫 로봇 구매자가 돼야 하는 이유
강기원 한국로봇융합연구원장
로봇 연구개발 현장에서 기술의 사업화 과정을 지켜보며 절실하게 체감하는 어려움은 연구개발과 시장 사이의 간극이다. 정부 지원으로 어렵게 시제품 개발에 성공해도, 공공과 민간 수요처는 성능과 실적이 충분히 검증된 제품을 요구한다. 첫 번째 구매자가 없으니 기업은 현장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렵고, 데이터가 부족해 성능 개선도 쉽지 않다. 성능과 납품 실적이 부족해 구매에서 제외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중국의 로봇 육성 정책은 이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중국은 공공조달과 도입 지원을 병행해 로봇의 초기 시장 형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베이징시는 ‘첫 시험·첫 사용(首試首用)’정책을 통해 11개 분야 134개 현장에서 혁신 로봇의 초기 적용과 성능 개선을 지원했다. 중국 정부는 공원과 정원박물관에 사용할 청소·순찰 로봇 104대의 구매를 지원했다. 베이징 경제기술개발구는 시범사업을 통해 도입기관과 로봇기업에 구매비용의 20~30%를 지원하고, 임차료와 휴머노이드 로봇 보험료 일부를 보조했다. 기업의 연구개발 지원뿐 아니라 로봇 수요기관의 비용과 위험까지 함께 분담한 것이다.
중국의 사례처럼 기술개발과 현장 개방, 초기 도입과 성능 개선을 하나의 과정으로 연결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도 ‘누가 먼저 사용하고, 그 경험을 어떻게 다음 제품에 반영할까’를 정책의 중요한 과제로 다뤄야 한다.
물론 정부가 첫 번째 구매자가 된다는 것이 초기 제품의 문제를 눈감아 주거나 특정 기업의 제품을 조건 없이 사줘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명확한 안전기준과 중단기준을 마련하고 여러 기업이 참여하는 경쟁 구조와 투명한 평가체계도 갖춰야 한다.
구매 계약에는 제품 납품뿐 아니라 유지관리와 운영자 교육, 소프트웨어 갱신, 데이터 분석과 성능 재검증까지 포함해야 한다. 구매 담당자가 합리적인 결정에 나설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하다. 정해진 절차와 안전기준을 지켰음에도 발생한 기술적 시행착오까지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면 첫 구매에 나서기 어렵다. 실증과정에서 성능미달과 부실관리·특혜를 구분하는 책임 기준도 중요하다.
실증 경험은 산업 전체의 학습 자산으로 축적해야 한다. 개인정보와 기업의 지식재산은 보호하되, 공통적인 고장 유형과 안전 대응 절차, 성능평가 방법은 공유해야 한다. 연구기관은 현장의 요구를 기술적 과제로 구체화하고, 성능과 안전성을 객관적으로 검증하며 기업의 개선을 지원한다.
정책의 성패는 첫 구매가 아니라 그다음 구매에서 드러난다. 성과가 확인된 제품은 후속 구매와 민간시장 확산으로 연결하고, 효과가 부족한 사업은 개선하거나 중단해야 한다. 첫 구매의 목적은 지속가능한 다음 구매를 유도하는 데 있다.
로봇은 현장에서 완성된다. 오늘의 공공구매가 현장 데이터를 만들고, 그 데이터가 더 안전하고 유용한 로봇을 생산하며, 다시 민간시장과 수출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시작해야 할 때다. 정부의 전략적 첫 구매가 대한민국 로봇산업을 추종자에서 선도자로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