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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생각과 실행 사이가 가까워졌다
김승연 넥스트증권 대표
요즘은 그 문턱이 눈에 띄게 낮아졌다. 원하는 기능을 인공지능(AI)에 말로 설명하면 코드를 짜 주고, 실행해 본 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다시 고칠 수 있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몰라도 간단한 프로그램은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요즘 흔히 말하는 ‘바이브 코딩’이다. 기술을 몰라 미뤄 둔 아이디어를 직접 시험해 볼 길이 열린 것이다. 만드는 일이 쉬워진 만큼, 더 많은 사람의 생각이 실제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게 됐다.
무언가를 만들고 전하는 문턱이 낮아지면서 생긴 변화는 과거에도 존재했다. 15세기 유럽에서 책은 비싸고 귀했다. 대부분 손으로 원고를 베껴 써야 했기 때문이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확산하면서 같은 내용을 담은 책을 여러 권 찍어 낼 수 있게 됐고, 지식과 생각도 더 널리 전해졌다.
바이브 코딩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보인다. 소프트웨어는 금융과 유통, 제조, 의료 등 거의 모든 산업을 움직이지만, 직접 개발하는 능력은 오랫동안 개발자의 영역이었다.
AI가 그 경계를 조금씩 허물고 있다. 프로그램은 실행해 보면 작동하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고, 문제가 생기면 고쳐 다시 실행하면 된다. 만들고, 써 보고, 고치는 과정이 빠르게 반복된다. 그렇다고 개발자가 필요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완성도 높은 서비스를 만드는 일은 여전히 개발자의 몫이다. 다만 현장의 문제를 잘 아는 사람도 아이디어를 직접 구현해 가능성을 시험할 수 있게 됐다.
증권업에서도 고객의 불편을 가장 잘 아는 사람과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사람이 늘 같지는 않다. 예전에는 “이런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는 데 그쳤다면, 이제는 작은 형태로나마 직접 만들어 쓸 만한지 확인할 수 있다. 넥스트증권도 구성원이 각자의 반복 업무에서 해결할 문제를 찾고, AI로 필요한 도구를 직접 만들어 보는 교육을 하고 있다. 나는 이런 경험이 쌓여야 AI가 조직의 일하는 방식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선 글들에서는 AI가 반도체에서 출발해 생명과 투자, 우주까지 여러 영역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살펴봤다. 이번 변화는 조금 다르다. AI가 무엇을 바꾸는지를 넘어, 누가 그 변화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지까지 바꾸고 있다.
인쇄술이 더 많은 사람에게 지식을 접하고 생각을 나눌 기회를 열어줬다면, AI는 더 많은 사람에게 작은 것부터 직접 만들어 보고 고쳐나가며 구체화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생각과 실행 사이가 가까워진 지금, ‘만들 수 있을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구의 어떤 문제를 해결할까’를 물을 때다.